[아주 돋보기] 한 명이라도 제대로 '간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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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 기자
입력 2021-05-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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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인구 1000명당 간호 인력 6.9명...OECD 평균 밑돌아

  • 간호사 극심한 인력난 호소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환자 돌봐"

  • 간호정책과 신설 등 대책 마련했지만..."간호 인력 법제화 절실"

국제 간호사의 날인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건강권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등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전면확대와 인력기준 상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년 5월 12일은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탄생일이자 ‘국제 간호사의 날’이다. 과거 나이팅게일이 전쟁터에서 간호사를 위한 의료제도 개혁을 외쳤던 것처럼 오늘날 간호사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과의 전쟁 속에서 인력난 등 고충을 호소하고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중이다.

12일 민주노총 산하 의료연대본부는 “그동안 희생과 헌신만 강요받으며 자리를 지키길 요구받아왔다. 이제는 간호사들이 직접 나서서 병원을 바꿔나가는 투쟁을 진행해 나갈 것이다. 간호사 한 명이 돌보는 환자 수를 줄여서 환자도 안전한 좋은 병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간호사들이 요구하는 가장 큰 변화는 ‘인력 확충’이다. 구체적으로는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인력 기준 상향 및 전면 확대’, ‘코로나19 병동 중증도별 인력 기준 마련’ 등이다.

종합병원에 근무 중인 한 간호사는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쓴 호소문을 통해 “이 순간에도 간호사들은 열악한 현실에 한숨과 무기력함으로 현장을 떠난다. 물 먹을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을 참으면서 일해도 결국 환자에게 학교에서 배운 간호를 다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환자 건강에도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실제로 국내 간호사 인력은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OECD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 인구 1000명당 간호 인력(간호사·간호조무사) 수는 6.9명으로, OECD 평균인 9명보다 낮다. 독일(12.9명), 일본(11.3명), 미국(11.7명)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인력 부족은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이어졌다. 한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간호사 A씨는 “간호사 1명당 환자 20~40명을 보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이런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되니 의료 질은 당연히 하락한다. 쉬는 날이라도 콜을 받으면 근무에 투입되는 일이 생겨 휴일 보장도 안 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른 간호사 B씨는 “병원에 있는 10시간 중 화장실 가는 횟수는 밥 먹으러 갈 때 한 번뿐이다. 30분 내외로 밥 먹고 다시 환자를 보기 시작해도 기본 1시간 정도는 추가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 인원이 없다 보니 일하는 시간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과 인력난은 악순환 고리로 연결됐다. 2019년 기준 간호사 면허 등록자 41만4983명 중 활동 간호사는 21만5293명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병원간호사회가 발표한 ‘병원 간호 인력 배치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신규 간호사 사직률은 2017년 42.7%, 2018년 45.5%, 2019년 44.5%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 지 1년도 안 돼 이직을 선택하는 간호사가 10명 중 4명 이상인 셈이다.

이날 이향춘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많다 보니 근무시간 내에 할 수가 없어 근무시간 전후로 너무 많은 업무를 한다. 교대근무, 야간근무, 경직된 조직 문화도 사직의 이유다”고 말했다. 앞서 간호사 B씨 역시 “간호사 인력이 부족한데 충원은 안 되고 근무 강도와 비교해 급여가 적으니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10일 오전 광주 북구 예방접종센터에서 화이자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진행 중인 의료진들이 잠시 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정부와 국회도 간호사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 49명은 간호 인력의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이 담긴 ‘간호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부족한 인력 속에서 고된 업무와 부실한 처우에 시달리며 상대적 박탈감도 심한 간호 인력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46년 만에 간호전담부서인 간호정책과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간호정책과는 △간호 인력 수급정책의 수립·조정 △간호 인력의 양성·관리 △근무환경·처우 개선 △법령의 제·개정에 관한 사항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운영 △간호사·조산사·간호조무사의 보수교육·면허신고 관련 업무 등을 맡을 예정이다.

또한 정부와 교육계는 간호 인력 양성을 위해 간호학과를 증설하는 등 입학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대한간호협회는 교육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원만 확대할 경우 현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휴 간호사만 양산한다는 이유로 해당 방안에 대해 반대를 표한 바 있다.

이미 시행 중인 ‘간호등급제’(간호관리료 차등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간호등급제란 국민이 질 높은 간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간호 인력 확보 수준에 따라 입원료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다. 김유석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간호사를 많이 둘 여력이 되는 대학 병원이나 큰 병원일수록 유리한 제도다. 의료법에 나온 환자 최소 기준이 바뀌지 않고 간호사만 늘어나면 임금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영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은 “병상은 의지만 있다면 언제라도 지을 수 있지만, 경험 많은 간호사는 금방 만들어지지 않는다. 간호사 부족은 이윤 중심의 시장 의료체제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간호 인력 법제화다”라고 주장했다.
 

[그래픽=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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