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백신 부족 아우성"…지재권 면제로 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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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05-1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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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백신 지재권 면제 지지했지만 일각에선 한계 지적

  • 제약 전문가 "백신 레시피 얻더라도 안전성 관련 품질 우려"

  • 화이자 CEO는 지재권 면제에 반기 "원재료 쟁탈전 촉발 우려"

  • 백신 원료 수출 통제하는 미국 DPA부터 손대야 한다는 비판도 나와

중국에서 제조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기다리는 파키스탄 사람들. [사진=AFP·연합뉴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백신 공급 부족 사태 이후 중국과 러시아가 자국 백신을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백신 외교'로 영향력을 키우자 미국이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지재권) 면제 카드를 꺼냈다. 백신 지재권은 특정 제약사가 보유한 백신 기술 특허로, 백신 지재권이 면제되면 다른 나라들도 백신 성분과 제조 공정, 임상 시험 정보 등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즉 모든 나라가 자체적으로 백신 생산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재권 면제가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 품질 등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11일 로이터·AF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재권 면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백신 생산 역량을 갖춘 국가들이 복제 백신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도록 제약사들의 '백신 레시피'를 공유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백신 지재권이 면제된다면 백신 위탁생산시설을 보유한 한국도 백신 복제약을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도쿄올림픽 출전 호주 선수단. [사진=AFP·연합뉴스]

지난달 말부터 개발도상국에서 코로나19 확신이 심각해지고 백신이 일부 부유한 국가를 위주로 공급되는 상황에 대해 전 세계적인 비판이 가중되자, 바이든 정부가 이러한 해결책을 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 의료 활동가인 엘렌 호엔은 "여러 제조업체가 지재권 면제를 통해 백신 생산에 참여하게 된다면 백신 생산량이 크게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재권 면제가 백신 생산량을 늘리는 만능키는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마스 쿠에니 국제약업단체연합회(IFPMA) 이사는 백신 제조를 케이크에 비유하며 "가장 사랑스러운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메리 베리(요리사겸 음식 작가)에게 레시피를 얻더라도 그의 케이크를 똑같이 따라 하는 건 행운에 맡겨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백신 제조법이라고 할 수 있는 특허를 손에 쥐더라도 제조 공정이 까다로워 높은 백신 품질기준에 미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로빈 제이콥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법학부 교수도 "백신 지재권이 면제되더라도 다른 제조업체가 곧바로 백신을 만들기는 어려워 보인다. 백신이 다른 약물보다 제조하기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FT에 따르면, 존슨앤드존슨이 파트너사 1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직 10곳만 백신 생산 능력을 갖춘 것으로 조사됐다.
 

화이자 백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제약사인 화이자도 지재권 보호 면제 조치에 반기를 들었다.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지재권이 면제되면 세계 각국 제약사가 너도나도 백신 생산에 뛰어들면서 화이자처럼 풍부한 노하우를 갖춘 기존 기업들의 원재료 공급망에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또한 우리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원재료에 대한 쟁탈전도 촉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백신 제조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기업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원재료를 찾아다니면 모든 안전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불라 CEO에 따르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은 19개국에서 공수한 280가지 물질과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백신 생산량을 늘리려면 백신 지재권보다 미국의 국방물자생산법(DPA)부터 손을 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DPA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수물자 보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만든 법으로, 미국은 전시에나 쓰는 이 법을 통해 백신 제조에 필요한 원료와 설비 수출을 통제해 왔다.

이런 백신 수출규제로 미국은 백신을 풍부하게 보유할 수 있었지만, 세계 최대 백신 공장이라고 불리는 인도는 백신 생산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인도는 미국에서 37개 핵심 원료를 받지 못하면 공장 가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도 미국이 백신 수출규제를 푸는 게 우선이라며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특허가 우선순위가 아니다. 미국에 백신뿐 아니라 백신 원료 수출 금지도 중단할 것을 분명히 요구한다. 이것이 (백신) 생산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미국의 지재권 면제에 대해 "만약 특허권을 제공하고 품질이 더 통제되지 않는다면 나는 기회보다 위험성이 더 클 것이라고 본다"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지재권 면제 현실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백신 대량 생산과 배포를 실현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 많기 때문이다. 먼저 세계무역기구(WTO) 164개 회원국이 지재권 면제에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한다.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안 된다. 현재 미국은 지지 의견을 냈지만, '제약 강국'인 영국과 일본, 스위스 등은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지재권에 대한 공개 범위와 책임 소재, 이익 배분 등의 조정 절차가 필요해 최소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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