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미일 정상회담이 주는 함의.. 기후변화. 공급망 재조정 로드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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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입력 2021-05-04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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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지난 4월 16일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최초의 대면 정상회담이라는 점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스가 총리는 코로나 대응 실패로 인한 인기하락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였다. 특히 정상회담을 통해 추가적으로 백신을 확보했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일본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게 평가하는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 좀 더 정상회담의 핵심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에게 부담이 되는 많은 것들이 발견된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미일 정상회담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다루어진 주요 분야는 기후변화, 공급망 재구축, 아시아 역내 안보, 그리고 코로나 공동대응의 네 분야이다. 미국은 이제까지 기후변화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나라였다. 전 세계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트럼프 전 대통령 때는 파리협약에서도 탈퇴했었다. 그러던 미국이 갑자기 환경주의 국가로 변신하면서 전 세계에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미일 정상회의에서도 미국은 일본에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상향을 요구했고 일본은 이에 부응하여 ‘13년 대비 26% 감축을 46%로 대폭 상향조정하였다. 경제산업성은 39% 이상의 감축은 어렵다는 입장이었으나 추가적으로 7% 감축이 더해졌다. 경제산업장관은 최근 7%의 추가감축 달성을 위한 방책을 몇 가지 제시했는데 그 중에는 철강생산량의 감축도 포함된다. 기존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국의 공급망 재구축 정책은 탈중국 정책이 그 핵심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2월부터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네 가지 분야의 공급망 위험성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아직 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공급망 재구축의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구축하고 중국과는 공급망 축소 또는 분리를 도모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5G 등 통신망, 반도체, 바이오기술, AI, 양자과학, 민생우주 등 첨단분야를 중심으로 공급망의 상호의존성을 높여가는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아직 양자협력의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이들 분야에서 중국과의 거래관계를 단절하도록 미국의 요구가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반도체 제조장치의 수출, 희토류 조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긴밀하게 형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종래의 공급망 구조를 얼마나 재조정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나아가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역내안보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 사안은 중국이 내정간섭이라고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에 “양안(兩岸)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대만해협에서의 미중 간 군사적 균형이 중국으로 기울면서 미국은 일본의 동참을 요구했을 것이고 일본은 부담을 느끼면서도 이를 수용했을 것이다.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일본은 군사적 개입까지 요구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를 수용하였다. 나아가 미국은 인권탄압을 이유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홍콩 및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인권상황을 비판하면서 일본도 미국처럼 중국에 경제제재를 가하길 요구받았을 수 있다. 일본은 국내법이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금융제재 등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나 일본 내에서는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관련 대응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백신접종 확대, 방역물자의 생산확대, WHO 개혁 등에서 협력하기로 하였다. 통상분야에서의 협력도 두드러진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디지털 무역과 관련한 국제적인 규범을 정비하자는 점,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통상정책을 활용하자는 점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통적인 WTO 체제를 활용하지만 양자 간 협상이나 G7 등 일부 국가그룹이 중심이 된 국제적 협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도 비쳐지고 있다. 특히 중국을 타깃으로 한 이른바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기 위해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 국가들 간의 클럽이 형성되어 갈 가능성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읽혀진다. 그 동안 세계의 자유무역체제를 지탱해 왔던 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체제가 약화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가진다. 먼저 미국은 기후변화, 노동,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우리에게도 많은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대폭적으로 강화하였고 석탄발전소 수출에 대한 금융적 지원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나아가 철강산업 등 배출량이 많은 산업의 구조조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우리에게도 기후변화 분야에서 구체적인 목표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로드맵을 요구할 수 있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과 희생을 감수할 용의가 있는가?

공급망 재구축과 관련한 요구에 대해서도 준비가 필요하다. 반도체, 배터리, 5G 등 차세대 산업에서 중국과의 공급망 재조정, 미국 중심의 공급망 형성을 요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첨단산업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반도체, 희토류와 관련한 내용은 아직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 일본은 미국과의 협력을 원하지만 동시에 동아시아 공급망의 안정적 발전을 원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동일한 입장이다. 미국의 대중국 공급망 재조정 요구가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미국으로의 대규모 투자요구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제조업 거점으로서의 동아시아에 대해 얼마나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할 용의가 있는가? 디지털 무역 규범, 기후변화와 통상정책의 연계, 불공정 무역관행의 시정을 통한 공정한 세계무역질서의 유지를 위해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국가들 간의 합종연횡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국제 클럽들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관여할 의사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된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전환기에 있는 세계질서 속에서 우리의 좌표를 찾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긴요하다. 이러한 성찰이 없이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이라든지 임시방편의 의사결정으로 일관한다면 우리는 주변국들로부터 이상한 나라라고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결코 국익에 부합되지 않을 것이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經濟學硏究科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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