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쏟아지는 규제…기업에도, 소비자에도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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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양성모·이재훈·장문기 기자
입력 2021-04-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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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소법 확대에 판매 혼선·스마트 기기 먹통

  • 시장위축 등 부담 불완전판매 되레 늘수도

  • 포장재 검사 의무화 비용 소비자 전가 우려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를 쏟아내는 와중에 국내 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소비자 권익을 보장한다는 명분이지만, 정작 소비자들마저 불편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지나친 규제가 기업경영을 위축시키고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업종을 불문하고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라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기업들이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낡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통장 하나 만드는 데 1시간이나··· 불완전판매 종용하는 100% 배상안
 

지난달 25일 서울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에 STM(스마트 텔러 머신) 입출금 통장 신규 서비스의 한시적 중단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가장 최근의 규제 사례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다. 지난달 25일 금소법 시행 이후 은행 일선 영업점에선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금소법은 일부 금융상품에만 적용했던 '6대 판매규제'가 모든 금융상품을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수백쪽에 달하는 약관과 계약서, 상품 설명서를 일일이 고객에게 교부하고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입출금 통장 하나를 만드는 데 1시간 넘게 대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점포 감축을 보완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보급했던 스마트 디바이스들도 금소법이 시행된 뒤 '먹통' 상태다. KB국민은행은 'STM(스마트텔러머신)'을 통한 입출금 통장 가입 서비스를 이달 말까지 중단한다. 우리은행 또한 스마트 키오스크를 통한 예금과 펀드의 신규 판매, 신용카드 신규 발급 등 일부 기능을 한시적으로 막고,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재개한다.

'꺾기' 관행을 잡겠다고 만든 규제도 골치다. 금소법은 대출을 빌미로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대출 전후 1개월 이내에 차주를 대상으로 펀드, 금전신탁 등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대출을 받기 위해 이미 가입한 펀드나 보험을 해지해야 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항변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유례없는 100% 배상안이 나오면서 기업과 투자자 간 소송전이 더욱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리스크 부담에 따른 시장 위축과 이익 확대에 매몰돼 불완전 판매를 종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6일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NH투자증권이 판매한 옵티머스펀드 관련 분쟁조정 신청 2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결정한 부분이다. 현재 금융투자업계는 NH투자증권이 제시했던 다자배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NH투자증권이 분조위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아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법적 분쟁이 시작되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70대 이상이 전체의 29%에 달하는 투자자들에게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지나친 금융소비자 보호는 불완전 판매를 종용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상품판매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줄어든 수익을 늘리기 위해 자회사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포장재 교체비용만 수천억원··· 소비자 전가 우려

식품 및 화장품 제조업계에서는 포장재 사전 검사와 표시를 의무화하는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의 부작용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개정안은 모든 제품의 포장재에 대해 전문기관에 사전 검사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품 포장지마다 포장 재질, 포장공간 비율, 포장 횟수, 검사일, 전문검사기관명 등을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식품제조업을 비롯한 화장품, 문구, 완구업계 등은 이 개정안으로 인해 추가로 부담해야 할 규제 비용만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재 환경부가 업계 반발을 감안해 법안 수정을 검토하고 있지만, 유통업계에선 ‘포장재 사전 검사’와 ‘표시 의무화’라는 큰 틀을 유지할 경우 아무런 대책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화장품업계는 국내에 유통되는 23만개 품목과 관련해 2만개 업체가 부담하게 될 검사 비용만 290억원, 포장재 교체 비용만 11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2만6000여개 품목을 생산하는 건강기능식품업계 역시 추가 부담만 3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화장품업체 대표는 "정부가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형국"이라며 "포장재 교체 비용으로 회사 수익을 다 날려버릴 위기"라고 하소연했다. 늘어난 생산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도 높다.

산업계에서는 기존에 있던 규제가 개선되지 않아 새로운 사업이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 사례가 거의 없었던 소비자 단체 소송이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낸다.

실제로 최근 기업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소비자단체를 비롯한 각종 시민단체로부터 사업과 관련한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무분별한 소송을 막던 장벽이 없어지고 바로 소송으로 진행되면 소송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재계 관계자도 “개인의 생명, 재산상의 피해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영속, 재산권 또한 중요한 만큼 기업의 희생을 전제로 해선 안 된다”며 “기업들에 대한 소송이 남발하며 소송천국이 될 우려가 있고 기업하기 힘든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아주경제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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