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처 잃은 단기자금 급증…'실물경제 돈맥경화' 진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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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입력 2021-04-0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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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빠진 자산시장·불확실성 증가 투자 관망

  • 은행 요구불예금 월간 회전율 20회 밑돌아

  • 금융시장 불안정야기·경제상황 악화 우려

역대 최대 규모의 돈이 풀리고 있지만 정작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는다.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데다 지난해 유동성을 흡수했던 자산시장의 힘이 빠지면서, 경제주체들은 여유자금을 은행에 쌓아놓는 모양새다. 이 같은 흐름이 장기화할 경우 화폐 유통 속도가 떨어져 실물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올해 들어 시중에 풀린 돈은 사상 처음으로 3200조원을 돌파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시중 통화량은 광의통화(M2) 기준 3223조4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41조8000억원이 늘어났다. 2001년 12월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폭의 증가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 등과 단기 금융상품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통화량 지표다. 기업에서 24조원이 늘었고, 가계 및 비영리단체(4조7000억원), 기타금융기관(4조5000억원), 기타 부문(1조2000억원)까지 모든 경제주체에서 M2가 늘었다.
시중 통화량 사상 최초 3200조··· 단기자금 증가세 가팔라

시중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는 올해 더욱 빨라진 모양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15조2000억원(10.1%)이 늘어났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이 10%대에 접어든 것은 2009년 10월 이후 11년 3개월 만이다.

특히 단기자금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한 자금을 의미하는 협의통화(M1)는 지난 1월 기준 1184조9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24조1000억원이 늘어났다. 작년 동월(945조1000억원)과 비교하면 25.4% 증가한 수치다. 전체 통화량에 비해 단기자금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가파른 셈이다.

문제는 돈이 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돈맥경화의 대표적인 지표로 꼽히는 요구불예금 회전율에서 수치로도 나타난다.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상품으로, 회전율이 낮을수록 경제주체들이 자금을 은행에 예치해둔 채 꺼내 쓰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지난해 8월 15.5회로 최저 기록을 경신한 뒤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월별 기준으로 20회 이상을 기록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 같은 추세는 통계가 작성된 이후 처음이다. 올해 1월 회전율 역시 16.5회로 20회를 밑돌았다. 올해 들어서만 50조원 가까이 불어난 요구불예금이 은행 금고 속에서만 잠자고 있는 것이다.
 
"경제 불확실성 증가로 단기 부동화··· 금융 불안정 야기할 수도"

단기자금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돈이 시중에 돌지 않는 단기부동화 현상의 원인으로는 경제 불확실성의 증가가 꼽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반적인 금리가 하향 조정돼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투자처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금들이 묶여 있는 상황"이라며 "자산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는 등 미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유동성 형태로 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유동성이 단기자금 위주로 흘러갈 경우,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는 자금의 장기적 운용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실물경제로 유입되는 자금이 줄어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통화당국 역시 이러한 추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단기자금 수요가 늘어난 데 대해 급팽창한 시중유동성이 저금리 상황에서 단기화되면서 수익 추구를 위해 자산시장 등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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