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J의 미래] 파멸자인가 구세주인가…"日 금융사회주의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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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1-04-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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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패닉을 딛고 세계 경제가 회복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미국 경제성장률이 나날이 상향 조정되면서 글로벌 경제도 동반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진다. 전례 없는 감염병 재난에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풀었던 중앙은행들은 이제 슬슬 속도 조절에 나서는 모양새다.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2023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시장금리의 들썩임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일 일본은행(BOJ)이 이른바 '스텔스 긴축'에 나서 관심을 모았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통화완화정책을 폈던 BOJ였기에 시장의 관심은 컸다. 핵심은 장기금리에 변동폭을 현행 ±0.2%에서 ±0.25%로 소폭 확대하는 것과 연간 6조엔에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하한을 줄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연간 ETF 매수 상한은 12조엔으로 유지해 하한을 없앤 것이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


이는 곧 일본 주식시장에 대한 일본은행 개입을 줄이겠다는 의지로 읽히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제 일본 주식시장의 고래가 되어버린 BOJ가 빠져나간다면, 시장의 급락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닛케이평균지수는 19일 당일에만 1.41%, 다음 거래일인 22일에는 2.07% 하락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미국 증시 변동 등 외부적 요인은 있었지만, BOJ의 방향도 시장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BOJ가 주식시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라는 분석이 나오자,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BOJ 총재는 완화적 정책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구로다 총재는 30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BOJ)는 (ETF) 구매를 종료하거나 보유 자산을 빼낼 계획이 전혀 없다"면서 "유연하고 민첩한 방식으로 ETF를 계속 구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금융시장 안정화와 기업의 자금 조달 지원을 위해서는 BOJ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8년간 이어지고 있는 구로다식 공격적 완화정책의 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출구가 점차 멀어지는 상황에서 BOJ가 자산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현 상황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일본 경제의 활력이 오히려 더 사라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NHK 캡처]

 
'금융사회주의' 언제까지 계속되나?

세계적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지난해 4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남자(구로다 총재) 때문에 일본 경제는 파멸할 것”이라고 독설을 내뱉은 바 있다. 시중에 돈만  풀었을 뿐 실질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비판이다. 2013년 취임한 구로다 총재는 아베노믹스를 위해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정책은 모두 동원하며 경제 부양에 나섰다. 디플레이션의 구원투수로 BOJ가 나서 무엇이든 하겠다는 자세였다. 그러나 통념을 벗어나는 파격적 부양에도 일본 인플레이션은 목표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일본은행의 경기부양 목표는 더욱 멀어졌다. 

일본은행은 더욱 강력한 완화로 맞섰지만, 구로다식 돈풀기가 일본 경제의 난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금융사회주의만 강화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많은 다른 중앙은행과 같이 일본은행도 공격적으로 채권 시장에 개입했다. 국채의 절반 이상을 일본은행이 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일본은행은 이른바 상장지수펀드(ETF)의 최대 보유자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 시장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도대체 BOJ는 언제 팔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BOJ는 올해 들어 ETF 매입을 더 확대했다. 지난 3월 BOJ는 12조엔에 달하는 일본 ETF를 매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당초 연간 목표치의 2배에 달하는 것이다. 이후 속도는 다소 느려졌으며, 당초 예상보다는 구매 규모가 줄었다.

그럼에도 2020년 말 BOJ는 일본 주식시장의 최대 '고래'로 등극했다. 세계 최대 연금펀드인 GPIF의 투자 규모도 앞질러버린 것이다. GPIF의 경우 지난해 9월 말까지 최대 보유분을 기준으로 할 때, 11월 기준으로 일본 증시 내 투자금이 44조8000억엔이라고 NLI는 집계했다.
 
구로다 총재는 자산 디플레이션을 막고, 일본 주식시장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ETF를 지속적으로 사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주식시장이 이제 바닥에서 3배 이상 상승한 지금, 오히려 일본은행의 주식 보유가 시장의 잠재력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채의 경우 만기를 기다리면 되지만 ETF는 다르다. 언젠가는 팔아야 한다. 

헤지펀드 위즈덤트리 재팬의 제스퍼 콜 대표는 "일본은행의 ETF 정책은 일본 정부의 다른 금융정책 목표 달성에도 장애물이 된다"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투자자들의 자본 관리, 그리고 도쿄를 혁신적인 금융 중심으로 만드는 것은 일본 정부가 목표로 삼아왔던 것들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소유 구조가 핵심인데, 일본은행은 주요 기업들의 지분을 상당 부분 소유하게 되면서 이 같은 목표 달성이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콜 대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조치가 오히려 민간 자산운용사들을 안일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면서 "자유시장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통화당국과 금융감독 기관이 긴밀한 협업을 통해 자산시장을 점차 민간으로 옮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직 디플레 우려··· "일본은행만 부자가 됐다"
일본은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았다. 연율로 11%를 넘는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는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에 따른 기저효과였다. 올해 1분기는 코로나19 제3파의 여파와 일본정부의 비상사태 선언으로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재정확대 정책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또한 BOJ 금융정책 측면에서 이러한 경기부양책의 효과를 감쇄할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지나치게 낮은 금리로 지방은행 등 금융기관의 경영이 악화되고 있는 것 등은 일본은행의 또 다른 골치다.

BOJ는 29일 공개한, 지난 3월 18~19일 열린 통화정책회의 의사록 요약본에서 일본 내 소비자물가(CPI)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유럽과 달리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더 크다고 설명했다. BOJ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이들 국가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의 위험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강력한 완화와 부양 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강화한 것이다.

한편, 구로다 총재는 경제가 개선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상승률(근원 CPI 기준)에 대해서도 2% 목표를 바꾸지 않고 이어가면서 시간이 걸려도 목표를 이뤄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편, 일본의 2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작년 동월 대비 0.4% 하락했다. 지난 1월의 0.6% 하락보다는 낙폭이 줄었다. 가격 변동성이 큰 신선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 지표인 근원 CPI는 BOJ가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지표로, 작년 동월 대비 0.2% 상승해 전달 0.1% 상승보다 상승폭을 소폭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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