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과학의 시선] 제6의 대멸종 임박說과 '나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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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입력 2021-03-1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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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기후 변화 위기를 다룬 영화를 너무 많이 봤고, 다큐도 많았다. ‘투모로우’(2004년) ‘불편한 진실’(2006년) ‘산호초를 따라서’(2017년) ‘우리의 지구’(2019년)…. 기후 위기라는 토픽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익숙해져서, 우리는 무덤덤하다. 그렇게 크게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 기후 변화는 영화의 흥행을 위한 소재가 된 느낌이고, 다큐는 일부 기후 운동가를 유명 인사로 만들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다가오는 위험’을 SF로 생각한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당장에 닥칠 폭풍우가 아니고 걱정할 게 없고,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라고 본다. 그들의 마음은 다가오는 서울시장 선거와 부산시장 선거에서 누가 이길까에 온통 가 있다.

음~. 문제는 이대로 우리는 괜찮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우리는 ‘경고’를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후 변화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시민의 행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기후 변화 경고’는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오고 있어요’라는 잘못된 경고와 비슷한 결과로 향하고 있다. 사람들이 ‘늑대’가 온다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미국 예일대학교에 가면 피바디(Peabody)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피바디 박물관은 화석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화석이 많기로는 뉴욕의 미국 자연사박물관, 시카고의 필즈 박물관이 더하다. 피바디 자연사박물관이 독특한 건, 가장 아름다운 고생물학 벽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점 중 하나는 파충류 진화관에 있는 ‘파충류 시대’이고, 다른 하나는 포유류 진화관에 있는 ‘포유류 시대’라는 벽화다. 작품들은 대작이어서, 가령 '포유류 시대'는 18.3m×1.7m다. 작품에 들인 공력은 완성까지 걸린 시간에서도 확인된다. 파충류 시대는 4년 반(1943~1947년)에 걸쳐서, 포유류 시대‘는 6년간(1961~1967년) 작업을 했다(<새로운 생명의 역사> 책에서 인용).

‘파충류 시대’ 그림은 고생대 데본기의 어두운 늪지에서 시작하여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 저편 뒤로 멀리 있는 화산들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장면으로 끝난다. 실제로 시베리아 화산이 뿜어낸 이산화탄소로 인해 급격한 지구 온난화가 왔고, 중생대 생태계는 짧은 시간 안에 끝장 났다. ‘포유류 시대’ 벽화는 밀림에서 시작한다. 6500만년 전 공룡이 거꾸러지자 숨을 좀 돌리게 된 포유류의 조상인 키 작은 네발 짐승이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고 있다. 그리고 그 포유류 시대 벽화의 끝 장면은 지금은 사라진 매머드들이 장식한다.

‘파충류 시대’, ‘포유류 시대’는 생명의 역사에 단절이 있음을 알린다. 파충류에 앞서서는 양서류의 시대가, 양서류에 앞서서는 어류의 시대가 있었다. 생명이 한 시대를 가로질러 다음 시대까지 나아가기는 힘들었다. 중간에 있었던 재앙 때문이다. 동식물 생태계를 싹 밀어버리고, 거의 빈 서판으로 만들어버린 환경 재앙이 발생했다. 그 주범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이산화탄소다. 지금까지 생명의 역사에서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고 흔히 말한다. 5번의 대멸종 중 4번은 주범이 이산화탄소다. 나머지 한 번은 지구 밖에서 날아온 소행성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생명이 등장하기 전에도 지구 환경은 요동쳤다.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 가설은 지금으로부터 6억5000만년 전 이전에 몇 차례 지구가 온통 얼음으로 뒤덮였다라고 주장한다. 적도까지 꽁꽁 얼어붙었다는 게 <새로운 생명의 역사>의 저자 중 한 명인 조 커슈빙크 캘리포니아공대 지구물리학 교수가 1992년에 내놓은 가설이다.

이런 주장을 접하면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지구 기후는 요동치는구나, 생태계는 속수무책이고”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온화한 지구 기후가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겠구나 였다. 그러면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야 괜찮겠지만, 나의 후손은 어떨까 라고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건 공연한 생각이었다. 급격한 기후 변화는 먼 미래 일이 아니었다. 지구 생태계는 탄소의 자연스런 순환에 따라 이뤄지는 대재앙이 아니더라고, 인간의 손에 의해 망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걸 지금 사람들은 ‘제6의 대멸종’이라고 부르고 있다.

6번째 멸종이 일어나 인류가 멸종한다면 어떨까? 고생대 뒤에 중생대가 열렸고, 중생대 공룡이 멸종한 뒤에 포유류가 빈 자리를 메꿨듯이, 새로운 생명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비운 생태계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 이 생명체는 그리고, 신생대는 왜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았을까를 연구할 것이다. 기후가 요동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가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나온 농담반 진담반 얘기가 ‘닭들이 뭔가 사고를 쳤다‘는 가설이다.

현재 인류는 닭을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고, 닭의 수는 인간보다 훨씬 많다. 어느 시점에 지구상에는 230억 마리의 닭이 있다. 그리고 전체 인류는 해마다 닭 650억 마리를 먹고 있다(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2019년 책 <우리가 날씨다>). 그러니 지구 도처에는 닭 뼈가 뒹굴고 있고, 생명의 역사가 단절돼 우리 시대를 후대의 어떤 존재가 표현하려할 때 ’닭의 시대‘라고 할 것이라는 농반 진반 주장이다.

닭 뼈가 지층에 많이 남은 건, 그걸 소비한 동물이 있었고 그 동물이 인간이라는 게 알려지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닭의 시대 즉 ’치킨세‘(Chickencene)가 아니라, ’인간세‘(Holocene)였다는 거 논란 끝에 밝혀질 거다. 또한 ’인간세‘ 이후의 지구과학자는 인간세 말의 대멸종의 원인 역시 대기 중 이산화탄소 과다로 인한 급격한 기후 변동이라는 점에서 이전 대멸종과 다를 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데 인간세에 앞선 대멸종들이 화산이 뿜어낸 이산화탄소가 원인이었다면, 인간세에 닥친 재앙은 인간 스스로가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문제였다는 것도 규명하게 된다. 인간세 말 지구 곳곳의 화산 활동을 보아도, 고생대말과 같은 대규모 분출이 보이질 않으니까. 결국 인류는 후대 생명체에 의해 탐욕스런 생명체로 평가받고, 생명의 역사에서 불명예스런 동물로 남을 거다.

예상되는 기후 격변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그러면 뭘 해야 하나? 정부나 기관이 해야 할 일은 있지만, 개인은 개인대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지구에 기후재앙이 닥칠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후대가 물을 때 내놓을 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세대가 막 살았던 사람들로 규정될 수는 없지 않은가?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자, 승용차 대신 공공교통수단을 이용하자, 탄소발자국을 줄이자 하는 얘기는 무수히 이미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행동 하지 않는다. 핵무기가 터져 지구에 핵 겨울이 온다고 했을 때는 공포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지구환경재앙 폭탄이 터지는 때를 향해 시계가 째깍대며 가고 있는데, 왜 우리는 남일이라고 생각할까?

나는 과학자를 만나 얘기 듣고, 과학책을 읽고, 과학 관련 글을 쓴다.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기후 위기를 느낀다. 지식을 새로 습득한 데 그치지 않고, 나 자신의 행동변화로 끌어내려고 한다. 그중 일부를 보면, ‘육식의 종말‘이 그 첫 번째다. 식구들과 주위에 ‘채식주의자’라고 선언했다. 전에는 서울 여의도 IFC 몰에 있는 스테이크 집에 가는 게 나를 위한 고가 소비의 하나였다. 그러나 더 이상 가지 않는다.

문어와 낙지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한때는 서울 서촌의 낙지집 단골이었으나, 그 집도 발걸음을 끊었다. 문어와 낙지가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다. 전골 냄비 안에서 삶기어 죽을 때는 큰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식구들의 동참을 얻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아내는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는 아이가 모처럼 집에 온다고 예고한 날이면, 쇠고기 스테이크를 준비하고, 영양 보충을 위해 사골을 불 위에서 몇 시간을 끓인다. 지인들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페이스북에는 불판 위에 올라가 있는 쇠고기 사진을 찍어올리는 게 자랑이고, 치킨집에서 치킨을 먹으며 나눈 우정을 널리 알리는 게 일이다. 고기 소비는 반 기후 행동인데도, 이들은 무신경하다.

1990년대 한국인은 대대적인 환경 보호 운동을 벌였고, 성공했다. 그때부터 재활용 문화가 자리 잡았고, 산업화 시대에 망가진 크고 작은 하천이 되살아났다. 그때 4대강과 샛강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사람들이 열성을 보였는지 기억이 생생하다. 1990년대의 환경 보호 운동 성공을 어떻게 하면 ‘기후 변화’에서도 재연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 행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건 무엇보다 뚜렷한 행동 목표를 만들어내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플라스틱 소비 줄이기, 승용차 타지 않고 대중교통 이용하기, 나무 심기, 재활용 등 기후행동 리스트는 길다. 리스트가 너무 길다는 게 기후변화 행동의 어려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에도 ‘기후변화 행동‘ 관련 시민 단체가 있으나, 이들 역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그걸 발견할 때까지 우선 나는 동물성 식품을 덜 먹기를 실천하고 있으려고 한다. 나중에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라는 매서운 질책을 후손들로부터 받게 될 때, 그 얘기라도 변명으로 댈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
 

[예일대 피바디자연사박물관의 '파충류 시대' 벽화 (이미지 출처: 스튜디오 조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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