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욱순이 ​사냥법 가르치는 이유는? "韓 골프 미래 위해"

안산=이동훈 기자입력 : 2021-03-03 00:00
골프채 내려놓고 안산서 후학 양성 매년 유소년 1000명 골프 꿈 키워

페어웨이를 바라보는 강욱순[사진=KPGA]


대회장에서 본 강욱순(55)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능숙한 사냥꾼'이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코스를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 산길을 닦아온 사냥꾼처럼 산 너머 눈에 보이지 않는 코스를 공략한다. 그는 골프 고글을 애용한다. 도박사들은 주로 새까만 선글라스 등으로 눈을 가린다. 블러핑(상대를 속이기 위한 허풍)을 시도할 때 자신의 마음을 읽히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강욱순은 다르다. 그는 자신의 눈을 드러내고, 사냥에 임한다. 그만의 '정공법'이다.

지난달 27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강욱순골프아카데미로 향했다. 2017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그를 만나기 위해서다. 강욱순골프아카데미는 그저 골프 연습장이 아닌, 골프 멀티 플렉스에 가까울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도착해서 그와 전화연결을 시도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 "파3 코스로 오시지요"였다.

주차하고 도착한 그곳은 단순한 파3 코스가 아닌, 공략과 집중을 요하는 홀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곳에는 앞 팀의 홀 아웃을 기다리는 그의 제자들이 있었다. 대회장을 '정공법'으로 누비던 그는 역시나 눈이 살짝 보이는 고글을 쓰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제자들을 바라보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제자들을 향한 진실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잘 치고 있어"라고 따듯한 말을 건넨다. 그린으로 향하는 제자들의 입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그는 사무실로 걸어가면서 시설을 소개했다. 1층에는 로비와 TPI 라운지, 골프숍 등이 자리했다. 2층으로 올라서니 시화호와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불어오는 바람까지도 상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시화호를 향해 남녀노소 가림없이 스윙을 이어갔다. 지나가면서도 '자리 잘 잡았네'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앉자마자 반월공단에 자리 잡은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2008년 이 사업을 따냈다. 당시 대회(조니워커 블루라벨 오픈)에 출전 중이었다. 2라운드 끝나고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우승했다. '겹경사'로 기억한다"며 "그러나 짓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민간투자사업(BTO)으로 진행된 최초의 민간투자법에 의한 생활체육시설이다. 당시 중앙 정부에서 제동을 걸었다. 함께 꾸려나가기로 했던 사람도 떠나가고 시장이 세 번 바뀔 때까지 혼자 버텨서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고(故) 이건희 회장님 밑에 있을 때 이 그림을 그렸다. 회장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온전히 후학 양성을 위해서다. 일반적인 골프 연습장이 아닌 교육 시스템을 도입했다. 덕분에 매년 1000명의 유소년을 발굴하고 있다. 그 수는 올해까지 약 4000명"이라고 덧붙였다.
 

강욱순골프아카데미 전경[사진=강욱순골프아카데미 제공]

강욱순골프아카데미 파3 코스[사진=강욱순골프아카데미 제공]


이곳은 120타석의 골프 연습장, 파3 9홀, 강의실, 실내교육장, 실외 연습장(퍼팅그린, 벙커, 어프로치 등)과 실내 수영장, 체력단련장, 사우나, 공공 체육시설 등으로 구성됐다. 이 안에서 매년 1000명의 학생이 골프에 대한 꿈을 키운다.

더 퍼스트 티 코리아, 스내그 골프, TPI 등의 교육장 및 대회장으로 사용되고 성인들을 위한 아카데미와 레슨도 이뤄진다. 

1989년 프로로 전향한 강욱순은 프로 통산 18승을 거두었다. 아시안투어와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다. 메이저 대회는 2회 우승(선수권대회, 매경오픈)했다.

특이한 케이스다. 선수들은 주로 일본이나 미국으로 눈길을 돌리지만, 그는 아시안투어와 한국을 주 무대로 삼았다. 이에 대해 강욱순은 "당시에는 한국 선수들이 일본으로 많이 갔지만, 아시안투어로도 많이 진출했다. 1996년과 1998년에 오더 오브 메리트(상금랭킹 1위)를 기록했다. 코스가 나와 잘 맞았다. 아시안투어에서 우승하다 보니, 일본과 유럽을 건너뛰고 미국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국 2부투어에서 6개월 정도 뛰었고,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음식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아침부터 빵이다. 스태프 두 명(요리사, 캐디)을 데려가려다가 캐디만 나와 함께하게 됐다. 남자 캐디라서 요리가 쉽지 않았다. 코스는 잘 맞았는데 결국 돌아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어떤 대회가 기억에 남는지'를 물었다. 그가 들려준 추억 속의 대회는 총 세 가지다. 

첫째는 2000년 매경오픈이다. 당시 그는 두 번째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잠시 생각하던 강욱순은 "킴 펠튼(호주)과 접전을 펼쳤다. 그는 몸이 좋고, 공을 잘 쳤다. 매경오픈은 특별한 대회다. 코스 난도가 높고, 갤러리가 워낙 많다. 다른 대회와 긴장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1996년 알프레드 던힐 마스터스다. 당시 강욱순은 '독일 병정' 베른하르트 랑거(독일)와 접전을 펼쳤다. 이에 대해 그는 "랑거와 자주 맞붙었다. 당시 그에게 패배했다. 그때가 가장 아쉬움에 남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역사로 남은 2001년 SK텔레콤 오픈이다. 당시 강욱순은 7차 연장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기록을 세웠지만, 트로피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위창수(49)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는 "사이먼 예이츠(영국)가 5차전에서 탈락하고, 위창수와 둘이 남았다. 위창수는 신인이나 다름없었다. 연장전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많이 떨었다. 내 눈에 그런 게 보이면 안 되는데 보였다. 마음이 약해졌다. 강해져야 했는데 동정심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정공법'을 좋아하는 사냥꾼이 사냥감을 보고 눈물을 흘린 대목이다. 그런 그에게 다시 투어를 뛸 것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지난해에는 시니어투어 몇 개 대회에 출전했었다. 올해부터는 출전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제는 사업가로서 유소년 발굴과 아카데미 등에 집중하겠다. 그 외에도 할 일이 많다. 해설(제네시스 오픈, GS칼텍스 매경오픈)과 방송 출연도 있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사냥보다 사냥하는 법을 가르친다. 제2 그리고 제3의 강욱순을 위해서다. 그런 그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환한 미소와 함께 짧은 말을 남겼다. "한국 골프의 미래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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