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할 거라는 확신"…이승원 감독과 '세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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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1-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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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자매' 이승원 감독[사진=리틀빅픽쳐스 제공]

이 영화는 공포 영화다. 영화 '세 자매' 이승원 감독과 만난 자리. 그가 대뜸 털어놓았다. 시사회 직후 울며불며 극장을 나섰던 일화까지 곁들이며 군데군데 우리의 삶과 닿아있는 부분들을 함께 짚어보기도 했다.

영화 '세 자매'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세 자매가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의 매듭을 풀며 폭발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소심한 첫째 희숙(김선영 분), 매사 완벽하고 싶은 가식덩어리 둘째 미연(문소리 분),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유분방한 막내 미옥(장윤주 분)은 각각 실타래처럼 엉킨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삶은 어디서부터 엉켜있던 걸까? 가정 폭력 속에서 자라온 세 자매는 어린 시절 받은 깊은 상처로 감정을 제대로 풀 줄도 모른다. 이승원 감독은 세 자매를 통해 곪은 것을 찌르고 터트리는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이 과정이 괴롭게 느껴졌던 건 모두 한 번쯤은 희숙이거나, 미연이거나, 미옥이였기 때문이다. 세 자매의 삶이 마치 우리 가족이거나 혹은 내 이웃의 삶처럼 느껴졌으니까.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사과받았다면 이들은 조금 나아졌을까? 아주경제는 영화의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은 이승원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만난 이승원 감독의 일문일답

이승원 감독이 메가폰을, 배우 김선영 문소리 장윤주가 주연을 맡았다[사진=영화 '세자매' 스틸컷]


영화가 공포 영화처럼 느껴지더라. 주변 반응은 어땠나?
- 기자님 말대로 감정적으로 세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았다.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닌것 같은데 세게 느껴지셨던 모양이다. 예컨대 살인마나 영화적으로 가능한 일들은 '영화'로 보시지만,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고 찌르는 느낌은 '다큐멘터리'처럼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저는 공감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놓인다. 그럴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 똑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이 영화를 보고 한 가지씩 느끼는 부분이 있을 거다.

영화의 탄생기에 관해 알려달라
- 2015년 영화 '소통과 거짓말'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폐막식 파티에서 문소리 배우와 만나게 되었는데, 무작정 "시나리오를 드려도 되겠냐. 연락처를 달라"고 했었다. 이후 두 번째 영화 '해피뻐스데이'를 찍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문소리 배우를 또 만나게 됐다. 그때는 김선영(이승원 감독과 김선영은 함께 극단 나베에 소속되어있으며 부부 사이다.) 씨와 친분이 생긴 상태라서 조금 더 편안하게 말씀드릴 수 있었다. 세 자매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고 바로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를 구성하고 만들기까지 4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문소리 배우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함께 시나리오를 수정해나갔다고
- 재밌는 작업이었다. 이제까지 (작업할 때) 혼자 해결해왔던 타입이라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방향을 잡아본 적이 없다. 공동 작업에 항상 목말라 있었기 때문에 문소리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다. 시나리오 초고를 드리고, 방향성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견을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굉장한 시너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큰 그림에 관해 이야기했다. 고치고, 바꾸고, 받아들여 주는 과정을 함께 겪었다.

세 배우로 하여금 캐릭터들도 변화한 점이 있다고 하던데
- 문소리 배우와 친한 사이가 된 뒤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니다. 그저 술자리 몇 번, 대화 몇 마디 나눈 사이다. 그 가운데서 그분에게 느껴지는 것들을 미연에게 담아내려고 한 거다. 첫째 희숙은 김선영 배우로 염두에 둔 건 아니었는데, 둘째 미연은 꼭 문소리 배우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안 좋은 모습을 보고 캐릭터에 녹여낸 게 아니라 성향, 생각, 철학,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겠다는 짐작들이 미연이라는 캐릭터로 나온 것이다.

애초 김선영은 어떤 배역을 염두에 뒀던 건가?
- 처음에는 김선영이 막내 역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첫째를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게 김선영 배우다. 제게 직언하고 필요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뜻밖에 '희숙의 마음을 알 거 같다'라고 했다. 또 '첫째 역을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라고도 했다. 이후 문소리 배우가 '희숙 역을 선영이가 하면 어떻겠냐'라고 하더라. 여러 사람이 희숙 역을 김선영이 하면 좋겠다고 추천하니 '가능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령대가 바뀐 셈이다
- 그렇다. 막내 캐릭터도 톡톡 튀는 느낌으로…. 자칫 영화가 어둡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배우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저도 막내 역할로 하여금 분위기가 밝아지기를 바랐다.

영화 '세 자매' 이승원 감독[사진=리틀빅픽쳐스 제공]


부부가 함께 일을 한다는 건 어떤가? 문소리 배우의 말로는 현장에서 꽤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던데
- 현장에서는 다툴 만한 일이 없었다. 이미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견을 다 줄여놓았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시나리오와 인물에 관해 알고 있고, 고민하며, 내게 말해주었던 사람이다. 선영 씨는 제 글과 연출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던 시절에도 우리 둘은 서로를 굳게 믿어주었다. 그 힘이 크고, 세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디서부터였나?
-2004년 첫 단편영화 '모순'으로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김)선영 씨를 만났고 그 인연을 계기로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다. 알고 지낸 지는 10년 정도 됐다. 결혼하고 극단에 있으면서 저는 연출을 맡고, 선영 씨는 극단 대표직과 배우들 연기 디렉터로 지냈다. 선영 씨를 통해 배우와 감독은 어떻게 만나야 하고 그들의 연기를 어떤 시선으로 가져야 하는지 배웠다. 그 역시 저를 만나 연기가 깊어졌다고 이야기해 준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세 자매는 각각 우리가 가진 아프거나, 못되거나, 우스운 면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세 자매를 구성할 때, 감독님의 면면들을 담아내기도 했나?
- 저의 모습도 있다. 저는 우리 어머니의 영향을 받고 자라왔다. 어머니의 입체적인 모습들에서 인물들이 반영되는 거 같다. 셋째, 둘째, 첫째의 모습 중 하나가 있을 수도 있고.

캐릭터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들이 인상 깊었다. 스스로를 해하거나, 소리 없이 분노하거나, 온몸으로 드러내며 분개하거나. 각각 성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들의 분노, 어떤 폭력을 직접 목격하는 것도 딸들이었는데
- 어릴 적 트라우마가 지금의 성격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그 기억은 내게 남아있고 나의 아이들에게 비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이들이 '그러고 싶지 않다' '극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서로 느끼고 공유할 수 있도록 연출하고 싶었다. '피해를 받았으니, 나는 이렇게 사지 않겠어'라고 선언해버리면 오히려 감독이 비약하고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되어버리지 않겠나.

영화 '세자매' 속 희숙(김선영 분)[사진=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를 보며, '부모님이 내게 사과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고민해보았다. 이승원 감독은 '사과' 받았다면, 어떤 점이 달라졌을 거라고 보고 있나?
-부모님을 조금 더 의지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늘 그의 힘든 삶을 지켜봐야 했다. 안정된 바운더리가 아닌 불안한 공간과 마음을 가지고 자라왔다. 그가 허덕이며 사는 모습이 이해되더라. 어머니가 강인하고 억척스러웠다면 저도 그의 그늘 안에서 편안하게 자라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모습은 항상 제가 추구하는 이야기거나 반영되곤 한다. 어머니 이전의 삶을 보기도 하고. 그런 것이 제 안에 남아있는 것 같다.

'세 자매'가 올해를 여는 첫 한국 영화가 되었다
- 그런 식의 의미는 가지고 싶지 않았는데. 하하하. 저도 모르게 '세 자매'에 많은 의미가 생기는 것 같다. 어렵게 투자받았고, 어렵게 제작되었으며 코로나19로 촬영할 때도 고생이 많았다. 개봉 역시 그렇지 않나. 항상 '세 자매'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버텨온 것 같다. 그럼에도 무사히 개봉하지 않았나. 관객 분들도 영화를 보고 희망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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