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군홧발에 짓밟힌 '미얀마의 봄'... 쿠데타 핑계는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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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용 기자
입력 2021-02-0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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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 군부, 총선 불복 쿠데타 감행... 문민정부 5년 만에 무너져

  •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포함한 민주화 세력 체포, 국민들 반발

  • 민주화 세력과 불안정한 동거 끝내려는 군부, 문민통제 안 되는 권력집단의 문제점 드러내

  • 바이든 정부는 미얀마 제재 시사... 외교 역량 첫 시험대 올라

"군부가 국민이 뽑은 정부에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폭행을 당한 기분입니다. 미얀마가 이제 나는 법을 배우는데, 군부가 날개를 부러뜨린 겁니다." - 시추툰 미얀마 대학생


민주화를 이루려는 '미얀마(버마)의 봄'이 5년 만에 군홧발에 짓밟혔다.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당하게 선출된 정부를 무너뜨리고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구금한 것이다. 명분은 부정선거이나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이루지 못한 국가의 비극이다.

2일 로이터·AF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는 지난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해산하고 아웅산 수치(75) 미얀마 국가고문(총리)을 다시 가택 연금했다.

수치 고문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끌고 있다. 자녀 국적(영국) 문제로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을 뿐 실질적으로 미얀마 국가수반으로 여겨지고 있다. 수치 고문은 군부에 가택 연금되며 국민에게 "쿠데타를 거부하고 항의시위를 벌이라"고 호소했다.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벌인 표면적인 이유는 부정선거다. 지난해 11월 진행한 총선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군부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군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미얀마 권력이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에 이양됐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군부는 미얀마 수도 네티도와 최대 도시 양곤에 군 병력을 배치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기 위해 인터넷, 전화선을 차단했다. 국영 TV와 라디오는 '기술적인 문제'로 송출을 중단한다고 밝혔으며, 은행 등 주요 공공 서비스도 모두 문을 닫았다.

당초 미얀마는 2월 1일 첫 의회를 소집하고 문민정부 2기를 출범할 계획이었으나, 군부의 쿠데타로 취소됐다. 묘 뉜 NLD 대변인은 AFP통신과 통화에서 수치 고문, 윈 민 대통령 등 정부 고위인사가 군부에 의해 구금됐다는 사실을 전하며 자신도 곧 구금될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김한상 기자, rang64@ajunews.com]

민주화 세력과 동거 끝내고 다시 독재 시작하려는 미얀마 군부

"군부가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정권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 조 민 툰 미얀마 군부 대변인(소장)


이번 쿠데타는 군부가 부정선거를 핑계로 수치 고문을 포함한 민주화 세력과 '불안정한 동거'를 끝내고 미얀마에 다시 권위주의(독재) 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쿠데타의 원인은 작년 11월 8일 치러진 미얀마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치 고문이 이끄는 NLD는 지난 2015년 총선에 압승해 1962년 네윈 쿠데타 이후 53년 동안 지속된 군사 정권을 끝내고 문민정부 1기 시대를 열었다. 이어 작년 11월 총선에서도 전체 의석의 83.2%를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민주화에 대한 미얀마 국민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반면 군부가 결성한 제1 야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선출 의석의 7%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미얀마 상·하원 의석 중 25%는 선거 없이 군부에 자동 배정된다. 지난 2008년 군부가 민간에 권력을 이양하기 전에 제정한 헌법에 담겨 있는 독소 조항이다.

하지만 전체 의석에서 군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86%에서 작년 30%로 급감했다. 미얀마는 행정 수반인 대통령과 부통령을 의회가 뽑기 때문에 다수당의 권한이 강하다. 미얀마 정국에서 군부의 영향력은 그만큼 감소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군부는 지속해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총선을 무효로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들은 선거 직후 유권자 명부가 860만명가량 실제와 차이가 있다며 지속해서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달 26일에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를 요구하며 쿠데타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에 유엔과 현지 외교관들이 공동성명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자 군부는 지난달 30일 "헌법을 준수하겠다"며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 군부는 헌법 준수를 표명한 지 이틀 만에 쿠데타를 일으키며 미얀마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사진=연합뉴스 제공]

독재자로 떠오른 흘라잉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

"국가 위기 등 특정 상황에선 헌법이 폐지될 수도 있다." -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


이번 쿠데타로 흘라잉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은 입법·사법·행정뿐만 아니라 군대까지 가진 미얀마의 새 독재자로 거듭났다. 그는 미얀마 사관학교 출신으로 1977년 군 복무를 시작해 2011년부터 11년 동안 군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미얀마의 실력자 중 한 명이었던 흘라잉은 군인 출신 첫 민선 대통령이었던 테인 세인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그는 미얀마 정치에서 군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16년부터 정치에 관여하는 행보를 보여줬다. 하지만 2017년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강제 추방하며 유엔으로부터 인종 청소를 하는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2019년 미국 정부의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군부는 "1년간 비상사태가 끝난 후 다시 총선을 실시해 신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년간 비상사태 기간에 헌법을 고쳐 군부에 배당되는 의회 의석을 확대거나,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는 방식으로 군부의 영향력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군부는 쿠데타 당일부터 영구 집권을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수치 고문이 이끌던 문민정부의 장·차관 24명을 보직 해임하고 대신 군부 출신 국방·외무부 장관 11명을 새로 임명했다.

군부가 이렇게 독재를 향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일 수 있는 이유로는 1962년부터 지속된 오랜 군부 독재로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이 꼽힌다.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은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아닌 군부가 직접 뽑는다. 군 통수권, 군 인사권, 국경경비 등 군 관련 3개 부처 장관 임명권도 군부가 갖고 있다. 문민정부 내부에서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던 셈이다.

존 시프턴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국장은 "수십 년 동안 미얀마를 통치한 군사정부는 권력에서 한 발짝도 멀어진 적이 없다. 그들은 문민정부의 통치에 복종한 적이 없으며, 이번 쿠데타는 그러한 미얀마의 현실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군부 인사들과 회의하는 미얀마 대통령 대행. 민 스웨(중앙) 미얀마 대통령 대행이 1일(현지시간) 수도 네피도의 대통령궁에서 민 아훙 흘라잉(왼쪽에서 세 번째) 최고사령관 등 국방·안보위원회 소속 군부 인사들과 함께 회의하고 있다. 군부는 이날 새벽 쿠데타를 일으켜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입법·사법·행정 전권을 장악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민주화의 시계는 되돌릴 수 없어... 국민 저항 요청한 민주화 세력

"군부의 쿠데타는 미얀마를 다시 독재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이를 거부하고 항의시위를 벌여주십시오." -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군부의 쿠데타로 미얀마의 문민정부를 이끈 수치 고문은 다시 가택 연금에 들어갔다. 미얀마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외동딸인 수치 고문은 오랜 외국 생활 끝에 1988년 귀국,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다. 국부의 딸을 직접적으로 해코지할 수 없었던 군부는 그를 가택 연금하고 미얀마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다.

수치 고문은 1989년 군사정부의 탄압으로 첫 가택 연금 조치를 당했다. 1995년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6년 만에 가택 연금에서 풀려났지만, 2000년 9월 2차 연금조치로 양곤 밖으로의 여행을 금지당했다.

2002년 5월 미얀마 군사정부를 이끄는 국가평화발전협의회(SPDC)가 그의 가택 연금을 해제했지만, 미얀마 군부는 NLD 지지자와 친 군정 지지자들 사이에 유혈 충돌이 발생하자 2003년 5월 수치 고문을 다시 구금했다. 이로 인해 수치 고문은 1989년 이후 몇 년의 휴지기를 포함해 2010년 석방까지 총 15년을 가택 연금 상태로 지냈다.

하지만 군부의 협박 속에서도 수치 고문은 "진짜 감옥은 두려움"이라고 강조하며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그 공로로 1991년 가택 연금 상태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군부가 군정을 표면적으로 포기한 후 수치 고문은 NLD를 이끌며 문민정부 설립을 주도했다. 2015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국가고문 겸 외교장관에 취임했다. 대통령만 아닐 뿐 국제 사회는 그를 미얀마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여겼다.

하지만 집권 이후 친 군부 행보를 보이며 국제 사회의 실망을 자아내기도 했다. 수치 고문은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인종 청소 범죄를 취재한 기자를 비난하면서 국제 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고, 군 권력을 줄이고 불안한 권력 나눠 갖기를 끝내야 한다는 당과 시민 사회의 요구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군부가 언제든지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상황에서 문민정부를 지키기 위해 군부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치 고문 관련 미얀마 시민의 지지율은 80%에 달했고, 이를 토대로 작년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두며 정치에서 군부의 영향력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었다.

 

'미얀마 쿠데타' 브리핑하는 미 백악관 대변인.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키 대변인은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 사태에 대해 동맹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제공]


 
미얀마 제재 카드 만지작거리는 미국... 외교 정책 시험대 올라

"미얀마 쿠데타는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다. 무력이 국민의 뜻 위에 군림해선 안 되고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도 없다.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즉각 검토하겠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군부의 쿠데타에 국제 사회는 일제히 경악했다. 유엔, 미국 등 국제사회는 군부의 쿠데타를 비판하고, 수치 고문을 포함한 문민정부 인사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얀마 군부는 즉각적인 권력 포기, 억류자 석방을 해야 한다"며 "미국은 미얀마 국민의 편에 설 것"임을 강조했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도 "우리는 미얀마 민주주의 제도에 강력한 지지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며 미얀마 군부를 향해 "현 상황이 철회되지 않으면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긴급회의를 소집해 이번 군부 쿠데타 사태에 관한 논의를 진행한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수치 고문에 대한 미얀마 군부의 가택 연금을 강력히 비판했다. 유엔은 군부에 체포된 모든 사람의 석방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은 미얀마를 지속해서 옛 이름인 '버마'라고 표현하며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주화 세력에 미얀마 정부의 정통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버마는 미얀마 전체 135개 민족 중 68% 비율을 차지하는 버마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988년 민주화 시위를 진압한 군부는 식민지 시절 서구 색채를 탈피해 민족 주체성을 강화한다는 핑계로 국가 이름을 미얀마로 바꿨다. 미얀마는 버마족에 대한 현지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에 수치 고문 등 미얀마 민주화 세력은 "군부가 정권 탈취 비판을 피하고자 허울좋은 명분을 댄 것"이라며 미얀마라는 이름을 거부했다. 미국을 포함한 상당수의 국가도 군사 정권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미얀마를 옛 이름인 버마로 표기했다.

다만 수치 고문이 풀려나고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후 미얀마라는 국호를 지속해서 사용함에 따라 미국 등 서방 국가도 미얀마와 버마를 서서히 함께 표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군부가 집권함에 따라 민주화 세력을 상징하는 버마라는 이름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언론은 미국이 미얀마에 대한 대대적인 제재를 할 경우 고립된 미얀마가 중국에 밀착할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미얀마 국민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얀마는 2018년부터 중국과 국경을 개방하고 댐 건설을 추진하며 상호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등 지속해서 친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대 중국 장벽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는 만큼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역량이 취임 후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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