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기재부 재정건전성 논리의 '불건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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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입력 2021-01-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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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



재난재정을 둘러싼 정부여당 내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거친 말투로 공허한 내용을 대신하려는 1980년대의 미숙한 버릇도 간혹 보이지만 논란의 흐름은 그동안 야당과의 차별화나 대통령과의 친소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당내 여러 분파들의 노선 차이를 점차 분명히 해주고 있다. 당내 주류는 경제정책을 대체로 기획재정부에 맡겨놓은 상태였다. 코로나19 재난국면에서도 이 입장은 ‘선별적 지원’이나 ‘필요한 곳에 두텁게’ 한다는 표현으로 요약되었다. 다만 선거국면에 이르러서는 여당 정치인과 기재부 관료의 태생적 차이가 정책에 투영되면서 정부여당 내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반면에 비주류는 처음부터 기재부의 ‘재정건전성’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보편주의’와 ‘확장적 재정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와 무관하게 코로나19와 같은 재난국면에서는 정부가 소비를 진작시키는 정책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부여당 내 논란은 (정책)이론적으로 본다면 신자유주의와 케인스주의의 갈등이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전략에 가장 큰 걸림돌은 처음부터 기재부였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에 반대하면서 청와대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사임했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기재부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는 한국개발연구원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비학술적인 ‘청부’보고서를 발표했다. 퇴임하면서 야당에 입당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그를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영입하려는 여당 일각의 움직임은 정치적, 정책적 무감각과 무정견을 보여줄 뿐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여당의 ‘개혁적’ 정체성에 상반되는 기조를 선택한 데에도 기재부의 역할이 컸다. 기재부의 정책에는 ‘경제’와 ‘시장’으로 포장된 (대)기업지원정책은 차고 넘치지만 ‘사람 중심’의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동차 특소세 면제에 이어 가전제품 구입에 대한 10% 환급 등 기업에 대한 지원은 알아서 베푸는 데 반해 취약계층을 포함한 ‘사람’을 위한 직접적인 재난지원금 지급은 금기로 여겨진다. 기재부가 1차 재난지원금의 보편적 지급에 마지막까지 서명하지 않았고 ‘관제 기부’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지원금 혜택을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재난지원금의 보편적 지급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소비자인 ‘사람’을 향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여당 내에 ‘호통’ 말고 기재부를 견제할 논리와 정책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21대 국회가 구성되고 열린 여당의 첫 번째 최고위원회의에서 주류 위원들이 21대 국회의 장기전략이나 비전을 제안하기는커녕 당내 비주류를 견제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실망스러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주류의 코로나19 재난 대책이 재정부담을 이유로 ‘선별주의’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고용부담을 이유로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최저임금인상을 억제했던 과오를 반복할 우려가 크다. ‘보편주의’의 부작용이 있다면 부작용대로 치유해야지 보편주의를 포기하고 선별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아이디어 빈곤이다. 최근 여당 주류가 기재부에게 가하는 압박은 정책적 차이라기보다는 선거를 앞둔 정치인과 선거가 없는 관료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의 신자유주의적 ‘재정건전성’ 논리는 지금은 경제위기가 아니니 건전재정을 견지하고 적자재정은 언젠가 경제위기가 닥치면 선택하자는 주장이다. 대단히 위험할 뿐만 아니라 자기모순으로 가득 찬 주장이다. 이 주장은 1930년대 대공황국면에서 경제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중시켰던 미국 후버정부의 균형재정정책과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정부들이 앞다투어 천문학적인 적자재정을 편성하는 이유도 바로 확장적 재정정책이 없으면 경기회복도 지연될 뿐만 아니라 결국 더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 때문이다. 미국 폴 크루그먼 교수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바이든 행정부에게 “정부의 역량(power)을 신뢰할 것”을 조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욱이 기재부의 ‘재정건전성’ 논리는 자기모순이다. 코로나19 발발 이전부터 기재부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재정의 조기집행을 관행처럼 시행하고 있었다. 이 관점을 중장기적으로 연장하는 논리가 바로 대담한 적자재정을 편성하여 미래의 재정수입을 앞당겨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경기가 호전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독일처럼 국가채무비율을 낮추는 정책전환을 도모할 수 있다. 국가채무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은 정부지출이 투자나 소비를 증대시켜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결국 세수증대를 가져온다는 동태적 사실을 간과하는 무지한 억지이다. 그리고 크루그먼이 “공화당의 지원을 기대하지마라”고 미국 민주당에게 건넨 조언이 아니더라도 기재부가 야당의 재정건전성 동조에 고무된다면 현 정부의 실패밖에 정권재탈환의 기회를 찾을 수 없는 야당을 돕는 결과가 될 것이다.

기재부의 신자유주의 논리는 ‘진보’를 자임하는 여당 주류도 무의식중에 체화하고 있다. 여당 분파들이나 대선주자들 사이의 과당경쟁이 정책오류를 초래할 위험이 매우 큰 상황이다. ‘선택과 집중’, ‘선별주의’, ‘핀셋대책’과 같은 그럴듯한 표현들에 숨겨진 반(反)인간주의적 본질을 타파하지 않으면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 ①항)를 가지므로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②항)는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길은 갈수록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판 재난자본주의는 여당에게 ‘야만과 계몽’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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