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코로나는 인류 역사 전환의 큰 분수령, ‘아시아 시대’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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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입력 2021-01-2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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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인류가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수차례 팬데믹은 세계 역사의 큰 전환을 만드는 모멘텀을 제공했다. 서기 235년에 창궐하여 50년간 성행했던 홍역·장티푸스·천연두 역병은 로마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져왔다. 14세기 중반 유럽에서 발생한 페스트(흑사병)는 당시 유럽 인구의 약 1/3(전 세계 인구의 최소 7500만, 최대 2억 명)을 사망케함으로써 중세 봉건 체제가 무너지고 르네상스가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중에 발병한 스페인 독감은 약 5000만 명의 인명을 앗아가면서 전쟁의 종식을 불러왔다. 진원지가 미국이었지만 스페인이 누명을 덮어썼고, 오히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글로벌 패권을 물려받았다. 전쟁보다 전염병이 인류 역사에 더 큰 변화를 촉발한 것이 입증된다.

코로나19 발발 1년을 넘어선 현재 전 세계 확진자 수가 1억 명에 근접하고 있으며, 사망자 수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미국의 경우 사망자가 40만 명을 추월하면서 2차 대전 기간 전사한 미군 수를 능가하고 있다.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지만 올해 말까지 상황이 지속한다고 본다면 희생자의 수는 최대 배로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 팬데믹의 확산 범위를 보면 과거 사례보다 훨씬 광범위하지만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다. 의료 인프라, 과학 기술, 개인위생 등 전염병에 대처하는 인류의 지혜가 월등히 나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팬데믹이 지구촌에 미치는 파급력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세계를 만들려는 시도와 이를 통해 새로운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움직임들이 거칠다.

위기 이후 으레 나타나는 현상 혹은 질서를 ‘뉴(넥스트)노멀’이라고 한다. 결과가 공평하지 않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면서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다. 현명한 개인은 일상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약삭빠른 기업은 불확실한 미래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을 찾으려고 고심한다. 위기 뒤에 기회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선점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그중에서 얼리버드들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판에서 게임체인저가 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합종연횡이 봇물을 잇는다. 경쟁은 치열하지만, 판세를 보면 승부의 예측이 가능할 정도로 뛰는 쪽과 기는 쪽의 명암이 확실하게 구분되고 있기도 하다.

더 큰 틀에서 코로나 이후 국가 간의 힘의 균형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과거와 같이 역사의 큰 전환이 만들어질 것인가에 초점이 모인다. 벌써 19세기는 유럽, 20세기는 미국,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설익은 예측이 나와 시선을 끈다. 초유의 팬데믹을 겪으면서 미국과 유럽의 방역이 실패하고 아시아의 리더십이 성공하면서 생겨나고 있는 목소리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계의 경제·정치·문화와 관련한 힘의 무게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주장이 꽤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그 중심축이 중국이 될 것인지, 아니면 아시아권 전체가 될 것인지를 두고 촉각이 곤두세워진다. 이를 두고 세계 각국의 줄다리기가 한동안 계속될 것 같은 기운이 다양하게 감지된다.

힘의 중심축에 중국이 서는 것과 미국 영향력 아래의 환(環)태평양 구도 간 공방 예상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이런 분위기가 한층 가팔라질 것이라는 행동들이 곳곳에서 돌출되고 있다. 우선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탈피하여 운신의 폭을 넓히려고 한다. 올 6월 G7 회의를 앞두고 의장국으로써 한국·호주·인도 등 아시아권 3개국 정상을 게스트 국가 형태로 초청하여 이목이 쏠린다. 이른바 G10 회의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부터 중국·러시아·브라질 등 신흥국들을 대거 포함하여 거의 매년 개최되고 있는 G20 정상 회의와는 별개다. 한때 일본의 반대로 한국의 G7 회의 참가가 불투명하였지만, 최근 서방 선진국들의 입장이 급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분히 중국을 경계하기 위한 포석으로 아시아로 움직이는 힘의 이너서클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교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또 하나 관심 가는 것은 미국 불참으로 반쪽짜리 경제공동체로 2008년 말 출범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향후 변화다. 이의 대항마로 작년 11월 15개국이 서명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는 연내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RCEP와 TPP의 차이점은 극명하다. 전자가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일본, ASEAN 10개국, 호주·뉴질랜드 등 역내 국가(인도는 막판 불참)들이 회원국이다. 반면 TPP는 태평양을 끼고 있는 미주 대륙 국가까지 포함하여 있는 11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일본 주도로 캐나다·멕시코·칠레 등이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결국, 두 공동체 간의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것이다. 미국이 TPP에 합류하고, 아시아에 붙으려는 미주 국가들이 늘어나면 균형추가 TPP로 옮겨갈 공산이 크다.

이처럼 미주는 물론이고 유럽, 중동, 심지어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노골적으로 아시아와 가까워지려고 한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중심축이 아시아에 있고, 그쪽에 실익이 크다는 점을 익히 잘 안다. 패권 국가인 미국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아시아로의 급격한 힘의 이동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환태평양 국가를 묶으려고 시도한다. 이 힘의 중심에 중국이 서는 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막 출범한 바이든 호(號)가 밖으로 동맹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RCEP와 일대일로(一帶一路) 등 중국의 대외 영향력을 집요하게 약화하려 할 것이다. 앞으로 10년간 이 공방이 치열해질 것이며,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기회이면서도 부담되는 도전의 장(場)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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