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세계의 '뉴스 허브'될 서울, 준비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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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0-12-2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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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최근 미국의 정론지 워싱턴 포스트가 서울을 아시아 뉴스 허브로 선정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미국의 밤 시간에 발생하는 세계의 긴급 뉴스들을 영국의 런던과 서울의 뉴스룸이 맡아서 취재 보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약 10명의 기자와 에디터가 서울에 상주하게 되는데, 현재 이들을 모집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홍콩에 있던 아시아 본부의 일부를 내년에 서울로 옮기겠다고 발표한 바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바야흐로 서울이 아시아 뉴스의 중심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 한국이 아시아의 금융이나 물류 허브가 되려고 시도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한 바가 있지만 이번에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이 국제 뉴스의 허브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한국과 관련한 보도가 많아져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높아질 것이다. 양뿐 아니라 질에서도 차이가 나게 된다. 한국 관련 소식을 인접한 도쿄나 홍콩 등에서 상주하는 기자들이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신속한 취재 보도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올바른 상황을 전 세계에 신속하게 전달했을 때,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훨씬 개선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들 국제 언론이 한국으로 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워싱턴 포스트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아직 하고 있지 않지만 뉴욕타임스는 이를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주변 도쿄나 싱가포르보다 독립된 언론이 있고 외국 기업에 친화적인 점을 들었다. 도쿄는 오랫동안 국제 언론, 특히 미국 언론이 아시아의 중심으로 여겨왔지만 한국이 이를 추월한 것이다. 싱가포르 역시 다국적 기업이 선호하는 도시지만 한국에는 미치지 못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이 아시아 최고라는 점도 작용했다. 전통적으로 언론이 자유로운 홍콩이 과거 국제 언론사를 많이 유치했지만, 최근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켜 홍콩의 언론을 억압한 것도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거기다가 국제 언론의 입장에서 한국은 갈수록 다양한 뉴스가 풍부해지는 국가이다. 과거에는 단순한 남북 분단의 기사나 부정, 부패 혹은 반정부 데모 등 부정적인 뉴스가 주를 이루었으나 이는 최근 들어 크게 변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의 대중 문화 관련 뉴스는 끊임없이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최근 BTS 등 K-팝 스타들의 활약이나 기생충의 아카데미 영화 최우수 상 수상 등 한국 관련 뉴스는 점차 밝고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 기업 및 경제 뉴스도 풍부하다. 최근 들어 다소 악화되고 있지만 금년 초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 등도 국제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바이러스 사태 와중에도 성공적으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나 프로 야구 개막 등은 신선한 국제 뉴스로 주목 받은 바 있다. 한국 뉴스가 증가하자 서울에 상주하는 외신 기자의 수도 최근 계속 늘고 있다. 현재 서울외신기자클럽에 등록된 외신 기자 수는 100여개 회사 290여명에 달한다. 2년 전에 비해 약 8%가 증가했다.

한국 정부도 국제적인 언론사의 서울 유치를 위해 막후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특별 작업을 해온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부터 외국 언론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 왔다. 국내 언론에는 거의 허용하지 않는 대통령 독점 인터뷰를 외신에는 벌써 10여 차례나 허용한 바 있다. 문체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 등 정부 기관은 외신에 취재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거기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 보인다.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 시절 국내 언론이 철저하게 통제받는 상황에서 반체제 민주인사들은 자신들의 민주 투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외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바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단식 투쟁이나 김대중 대통령의 가택 연금 등 많은 뉴스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되었고, 이는 결국 한국 민주화에 도움을 준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한국의 진보 정권은 대체적으로 외신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고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이번 국제 언론사 서울 유치의 한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제 언론이 마냥 한국이나 한국 정부에 호의적일 것으로 믿는다면 이는 착각이다. 벌써 이러한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대북 전단 금지법이 좋은 예이다. 미국 등 주요국 정부에서는 이것이 표현의 자유에 반한다는 점을 들어 비판의 공세를 높이고 있고,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국제 언론을 통해서 증폭되고 있다. 한국이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인사들이 대북 전단으로 인해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외국 언론이 볼 때 이는 궁색한 변명이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념에 치우친 정치인이나 네티즌들이 시도하는 간접적인 언론 통제이다. 법이나 규제를 통한 직접적인 언론 통제는 이제 한국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인터넷 상에서 인신 공격 등을 통해 반대 진영 언론을 공격하는 경우는 날로 심화하고 있다. 불만이 있는 기자에 대한 신상 털기를 통해서 언론인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위는 한국의 언론 자유를 크게 침해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언론사의 한 서울 주재 특파원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보도를 했다가 크게 곤욕을 치른 경우가 있다. 집권 민주당의 대변인이 그의 신상을 공개해서 비판했고 이는 인터넷 상 집단 공격으로 이어졌다. 한국이 진정한 아시아의 뉴스 허브가 되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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