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 '카더라 바이러스' 음모론이 지배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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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편집인
입력 2020-12-1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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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K자형 경제불평등’ 더 확대될 위험 차단해야

  • 음모론은 경제불평등을 자양분삼아 확산...코로나보다 무서운 인포데믹..

  • 백신 불신 선진국으로 갈수록 높아

 

[이용웅 아주경제 편집인]




“빌 게이츠가 백신으로 떼돈을 벌려고 바이러스를 일부러 퍼뜨렸고, 이 백신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칩을 이식해 통제할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공식적인 백신 접종을 앞두고 근거 없는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인포데믹(infodemic)'이 백신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경고했다. 인포데믹이란 잘못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급속히 퍼져 혼란을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어쨌든 코로나19가 등장한 지 343일 만에 영국에서 지난 8일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 14일에는 뉴욕시 퀸스에 있는 롱아일랜드 주이시병원의 중환자실 간호사 샌드라 린지가 미국에서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하지만 코로나 백신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코로나가 실질적으로 종식되기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만 해도 연일 900명 안팎의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내년 2~3월 중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백신 개발을 열정적으로 지원해온 빌 게이츠는 2022년쯤 코로나 종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초 코로나가 본격화된 것을 생각해 보면 종식까지 길면 3년은 걸릴 것이라는 진단이다.

빌 게이츠의 예언(?)대로 된다고 쳐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사망자를 낸 스페인독감이 1918년 처음 생겨나 2년 만인 1920년에 종식된 것을 보면 코로나는 상당히 생명력이 긴 것이다.

여름 이전만 해도 한국은 신천지 사태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모범 방역국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사석에서 기자와 만나 “외국에서 우리나라 방역 시스템에 대한 문의가 많이 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물론이다. 우리나라 경험을 전해주면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자기들은 우리나라처럼 개인들을 일일이 추적하기 어렵다면서 난색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인들의 시각에서는 개인 동선을 일일이 추적하는 한국적 시스템 도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문용식 한국정보화진흥원장은 다른 자리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자 “서구 선진국들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때문에 우리나라의 방역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그네들은 사실 IT 기반이 우리나라보다 뒤처져 있어 코로나를 일일이 추적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마스크를 버릴 자유” 운운하는 시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 개인의 동선을 일일이 추적하는 한국형 방역의 도입을 막는 원인을 IT 기술력 부족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인식 뒤에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브러더’의 존재,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공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서구 사회 깊숙이 침투한 ‘음모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정부의 노력을 무력화시키면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서구사회 특유의 ‘음모론’이 아직 우리 사회를 지배하지 못했기 때문에 ‘K방역’이 국민 신뢰 속에서 효과를 발휘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물론 지금은 K방역 실효성이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기막힌 일이기는 하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정부를 믿지 않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이번 코로나 사태로 확인할 수 있다.

음모론 확대하는 다큐 ‘홀드업’에 환호하는 프랑스 대중

전례 없이 미국을 두동강낸 지난 대선을 두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을 분열시킨 가장 큰 요인으로 '광적인 음모론'과 '진실의 쇠퇴(truth decay)'를 꼽았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세계경제포럼이 공동으로 지난달 주요 15개국에서 백신을 맞을 의향이 있는 사람의 비율을 조사했는데 아주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서구 선진국으로 갈수록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응답이 높았다.

인도(87%), 중국(85%)은 물론 영국(79%) 등에서 80%를 전후해서 백신을 맞겠다는 대답이 나왔는데 독일(67%), 미국(64%)은 백신을 맞겠다는 대답이 뚝 떨어진다. 프랑스는 54%로 아예 절반 가까운 국민이 백신을 거부하고 있다. 프랑스만 해도 코로나로 이미 5만4000여명이 생명을 잃었지만 국민들은 코로나만큼이나 백신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프랑스가 이처럼 백신에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은 다큐 ‘홀드업(Hold Up)'의 영향도 큰 것으로 보인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저널리스트, 사진작가인 피에르 바르네리아가 만든 2시간 43분짜리 이 다큐영화는 지난 11월 11일 세상에 나오자마자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었다. 프랑스 정부는 음모론적 프로파간다 영화라며 비난을 퍼부어댔다.
가령 이런 대목 때문이다.

"보건 정책의 문제는 두 가지 다른 논리에 의해 지배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한 가지는 병의 논리고, 또 하나는 건강의 논리다. 제약업계, 백신업계는 팔아야 한다는 논리로 움직인다. 약을 팔수록 더 많은 돈을 버는 그들은 병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즉, 그들은 약을 팔기 위해 병을 만든다. 또 다른 논리는 건강의 논리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고,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지 고민한다. 이 서로 모순된 생각이 부딪혀 갈등하는 상황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보건 위기의 모습이다." -아스트리드 스터켈거(제네바 의과대학, 글로벌헬스 연구소 교수)

코로나가 퍼지는 속도와 규모만큼이나 ‘광적인 음모론’도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해서 인류는 ‘코로나 팬데믹’과 ‘인포데믹’ 두 가지 적과 효율적으로 싸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정치 지도자들까지 음모론 확산에 기여하는 현실

사회학자 전상진은 <음모론의 시대>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음모론은 흔히 생각하듯 약자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음모론은 권력을 지닌 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정치 전략이 될 수 있다. 지지자 동원에 효과적이고 정적 공격에 유용하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하는 데 용이하기 때문에 특정 정파나 지위와 관계없이 현대 정치의 중요한 전략이자 자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음모론은 ‘민주적’이라 할 수 있다. 음모론은 (권력 비판을 위한) 약자의 무기가 될 수도, (권력 유지를 위한) 강자의 망치가 될 수도 있다.”

오바마가 미국사회를 옥죄고 있는 ‘광적인 음모론’의 주역으로 트럼프를 지목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 미국에 큐어넌이라는 집단이 있는데 이들은 미국 민주당과 연결된 비밀집단 ‘딥스테이트’가 정부를 통제하고 있으며, 이 비밀집단은 전부 소아성애자라고 주장한다. 큐어넌은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미국을 구하기 위해 이들과 맞서 싸운다는 음모론을 내세웠고, 트럼프는 이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에 맞장구를 쳐 “그네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에 감사한다”는 발언까지 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큐어넌은 아예 미국 민주당이 코로나를 뿌렸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은 최근 코로나의 발상지는 우한이 아니라 인도라고 주장해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미국 일각에서는 중국이 생화학무기 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코로나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는 형편이다. 러시아에서는 헤지펀드의 귀재 조지 소로스가 코로나를 퍼뜨려 황색인종을 말살하려 했다는 괴담이 공식매체에 버젓이 유통되기도 했었다.

음모론 경제불황과 결합하면 더 큰 재앙온다.

사실 밑으로부터의 ‘음모론’은 경제적 불평등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의 과실을 일부 특수집단이 독점하는 것처럼 보여진다면, ‘음모론’은 더욱 광적으로 확산되어 민주주의 그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슈퍼 부자들의 재산은 폭증세를 보이고 있다.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이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IPS)를 통해 집계한 미국 10억 달러 이상 부자 467명의 3월 18일부터 8월 5일까지의 재산 증가 현황을 보자. 이들의 재산은 총 2조4178억 달러에서 3조1496억 달러로 다섯 달 동안 무려 7318억 달러나 증가했다. 지금 그 규모가 훨씬 늘어났음은 불문가지다.

코로나가 처음 발병한 중국에서 부자들의 약진은 더 눈에 띈다. 미국 CNBC는 중국 내 부를 추적하는 후룬 리치 리스트(Hurun Rich List)를 인용, 중국에서는 최근 1년간 257명의 억만장자가 새로 탄생해 그 수가 총 878명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억만장자(億萬長者·billionaire)는 순자산이 10억 달러를 넘는 부자를 말한다. 

반면에 세계은행은 올해 말까지 1억명 정도가 극빈층으로 내몰려 세계 인구의 10%에 육박하는 7억여명이 극심한 빈곤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극빈층 인구는 그동안 계속 줄어왔지만, 코로나 등 영향으로 20여년 만에 증가 추세로 바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3분기에 1분위 가구 소득이 1.1% 감소할 때 5분위 가구는 2.9% 증가하면서 양극화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단기 대응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19로 더 벌어질 수 있는 (잘되는 분야의 그래프는 위로 가고 안되는 분야의 그래프는 밑으로 가는) K자형 경제적 불평등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막아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코로나 극복은 물론 코로나 이후 우리 사회를 어떻게 다시 정상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담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이 코로나 괴담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코로나 통제에 실패하고 부동산, 증시 등 자산시장이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폭등 상태가 지속된다면, 광범위한 ‘음모론’으로 무장한 ‘인포데믹’이 우리 사회를 엄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 그런 기미가 보이고 있다.

게다가 정부 지지도 역시 과반 아래로 내려간 지 한참이다. 정부 여당 입장에서는 다시 한번 정책 전반에 대한 검증과 함께 코로나 전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코로나에 대한 각종 억측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코로나 그 자체를 통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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