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깊은 산중 겨울호수의 낭만...한우고장서 찾은 숨은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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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횡성(강원)=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0-12-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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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성호를 끼고 걷는 둘레길.관동옛길 아찔한 루지 체험장

  • 아름다운 풍광 지닌 태기산 전망대.40년 전통의 안흥찐빵

횡성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네이버페이 횡성산림휴양농원펜션 꼭대기에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수도권을 지나 강원도로 향하는 길목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여행지가 있다. 강원 횡성이다. 행여 "떠오르는 것은 한우뿐"이라고 응수한다면 "횡성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일침해 주리라. 
소박한 고장이지만, 장쾌한 풍광을 자랑하는 태기산부터 고요한 호수길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경관을 품은 횡성은 매력이 철철 흘러넘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최근에는 폐도로를 활기찬 '루지 체험장'으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재차 격상한 탓에 여행은 다시 멈춰버렸지만, 그래도 여행의 추억은 나를 또다시 이곳 '횡성'으로 이끌었다. 마음 한편이 벅차올랐다. 아마도 머지않아 떠나게 될 그 날을 염원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천천히 걸으며 사색에 잠기다

평소 산행은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둘레길을 걷는 것은 퍽 좋아한다. 천천히 걸으며 마주하는 풍광이 삭막한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고, 상쾌한 공기가 시름을 쓸어내리기 때문이다. "그 고장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면 걸어야 한다"고 얘기한 혹자의 말에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횡성에서는 '걷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산중에 둘러싸인 고장 횡성에서 걷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 정말 훌륭한 걷기 길이 있다네. 이왕 횡성에 왔으니, 이 길을 한번 걸어봐야 하지 않겠어?" 지인이 속삭였다. 

"이 산중에 걷기 길이라면 난 포기하겠어"라고 응수했지만, "함께 걸으면 횡성 한우를 대접하겠다"는 지인의 꾐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횡성 호수길. '횡성, 이 산중에 호수가 있다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 놀라웠다. 

1999년까지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지만, 2000년 횡성댐이 완공되면서 인공호수인 횡성호가 탄생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태기산과 청태산, 운무산 등이 감싼 횡성은 횡성호를 만났고, 그 주변에 횡성호수길이 조성되며 아름다움이 배가 됐다.

횡성호수길은 6개 코스로 이뤄졌다. 인공호수지만 둘레는 31.5㎞에 달한다. 그중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코스는 5구간 가족길(A코스 4.5㎞, B코스 4.5㎞)이다. 유일한 원점 회귀 코스인 데다 호수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많은 여행객이 이곳을 찾는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맨 후 본격 걷기에 나섰다. 6개 구간 중 5구간을 걷기로 했다. 해당 구간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망향의 동산'으로 향했다. 망향의 동산은 횡성호가 생길 때 수몰된 마을(5개 마을, 258가구) 주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조성했다. 파란 하늘과 맑은 풍경에 서서 이 이야기를 들으니 애달픈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 입구에 위치한 전시관에서는 수몰된 마을과 실향민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다고 한다. 

길은 대체로 평탄했다. 밟을 때마다 바스락 부서지는 낙엽 소리와 푸른 하늘을 오롯이 품은 잔잔한 호수의 풍경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호수에 투영된 햇살은 더없이 빛났다. 호수길은 고즈넉했지만, 이 길에 스민 아름다움의 향기는 가슴속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천천히 걸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시간, 우리가 마신 공기의 달콤함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훌륭했다. 

"한우를 먹은 것보다 더 값졌어. 이 길을 걷길 잘한 것 같아."
 

횡성군은 폐도로를 '루지 체험장'으로 만들었다.[사진=지엔씨21 제공]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내달리다

호수길을 걷고 나온 우리는 조금은 '역동적'인 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여행의 마무리는 뭐니 뭐니해도 신나는 체험이 아니겠는가.

횡성 루지 체험장으로 향했다. 루지 체험장이야 최근에는 전국 곳곳에서 쉽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곳 루지 체험장은 특별했다. 서울과 강릉을 오가던 국도 42호선 '전재~우천면 오원리' 구간의 기존 도로를 활용한 덕이다.

조선시대 서울 강릉을 오가던 유일한 관동옛길(국도42호선)은 교통이 발달하고 터널이 생기면서 폐쇄됐고, 그대로 방치돼 왔다. 자칫 없어질 수 있었지만, 횡성군은 이곳을 루지체험장으로 정비했다. 별도의 개발행위도 없었다. 친환경적으로 개발한 사업의 좋은 사례가 됐다. 도로를 그대로 활용하다 보니 스릴감이 배가 됐다. 울퉁불퉁 정비되지 않은 도로가 달리는 내내 재미를 안겼다. 

2.4㎞의 길이. 단일코스로는 세계 최장이다. 인위적으로 S자 코스를 조성한 것이 아니라 실제 도로를 이용해 조성한 코스기 때문에 직접 운전하는 짜릿함을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루지 체험장에서 표를 산 후 셔틀버스를 타고 전재 고개 정상에 도착했다. 안전모를 착용하고 비장한 각오와 함께 루지에 앉았다. 몇 번 체험했지만, 루지는 체험할 때마다 왠지 긴장된다. 루지 작동과 관련한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 신호를 받아 바로 출발했다. 

천천히 출발한 루지는 이내 가속이 붙었고, 차디찬 바람을 가로지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급기야 눈동자에 스쳤고,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눈에 뵈는 것이 없어졌다. '큰일이다. 루지 핸들에서 손을 떼면 안 되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한쪽 눈만 겨우 뜨고 천천히 운전을 했다. 누가 보면 '나한테 왜 윙크를 하지?'라며 의아해했겠지만, 다행히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가속으로 인한 충돌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커브 구간 곳곳에 안전 펜스를 설치해 놨는데, 그날만큼은 이 펜스가 걸림돌이 된 것처럼 야속하기만 했다. 

트릭아트와 동화나라 구간을 지나 내리막길에 접어드니 속도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가속 구간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절대 무서워서 줄인 것이 아니다.

눈물이 멈추고, 이제 자신감이 붙어 속도를 내려고 하니 루지 체험이 끝이 났다. 루지에서 내리는 내내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곳에 다시 올 이유가 생겼다. 제대로 즐기지 못한 이 다이내믹한 체험을 하러 조만간 이곳을 다시 찾아오리라.
 

태기산에서 바라본 일몰[사진=기수정 기자]

#횡성 여행의 매력은 무한대

횡성에는 호수길과 루지체험 외에도 여행 매력이 흘러넘친다.

해발 1261m의 태기산 전망대는 일몰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산 능선을 따라 늘어선 풍력발전기 20기가 풍광에 정점을 찍는다. 발전기 옆 개설된 임도를 따라 승용차를 타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다.

안흥찐빵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산 팥을 무쇠솥에 삶아서 인공감미료 없이 소를 만들고, 막걸리로 발효시킨 밀가루로 빵을 만든 다음 하루 동안 숙성해 쪄낸 찐빵은 달지 않으면서 쫄깃하다.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면사무소앞안흥찐빵과 심순녀안흥찐빵이 원조다. 둘은 자매 사이라고. 

1982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풍수원 성당'은 한국에서 4번째, 강원도에선 처음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서울 중구 약현성당과 모습을 꼭 빼닮았다.

'안드레아 앓이'와 '수애앓이'를 탄생시킨 2000년대 초반 드라마 '러브레터'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횡성호수길 5구간 '가족길'은 호수를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이다. [사진=기수정 기자]

횡성호수길 5구간 '가족길'은 호수를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이다. [사진=기수정 기자]

횡성호수길 5구간 '가족길'은 호수를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이다. [사진=기수정 기자]

태기산 정상에서는 풍력발전단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횡성의 명물 안흥찐빵[사진=기수정 기자]

루지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체험객[사진=기수정 기자]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과 빼닮은 횡성 풍수원 성당[사진=기수정 기자]

풍수원 성당을 오르는 계단에서 마주한 산타 조형물[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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