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박신혜·전종서 '콜', 극장에서 봤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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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0-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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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스틸컷, 영숙 역의 배우 전종서. [사진=넷플릭스 제공]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최씨네 리뷰>는 필자가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까지 녹여낸 영화 리뷰 코너다. 관객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편안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넷플릭스며 홈시네마 열풍이 불고 있는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말이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게 제일 재밌다.

큰 스크린 속 드넓은 풍광에 압도되거나 작은 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질 때도 있고 느린 호흡을 가진 영화의 흐름을 읽어내기도 한다. 영화는 큰 스크린과 빵빵한 음향을 가진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걸 전제로 제작되기 때문에 인물의 연기나 연출들이 섬세하게 그려지는 편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점들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체질적으로 집중력이 부족하고 끈기가 없는 나는 좌석에 앉아 강제로 두 시간 동안 영화를 관람하게 하여야 완주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관이 아닌 집안에서 영화를 보는 게 더 힘들었다. 남들 다하는 드라마 정주행이나 영화 관람도 배로 시간이 드니 더 설명할 것도 없겠다.

이런 내게 넷플릭스 영화, 그것도 스크리너를 보고 '일'을 하라니. 정신이 아득해질 만한 일이었다. 러닝타임 4시간짜리 영화를 보라는 말보다 위협적이다. 넷플릭스 '시청 중인 콘텐츠' 목록만 봐도 내가 어떤 타입의 시청자인지 알 수 있는데 오프닝과 등장인물만 보고 꺼버린 콘텐츠가 수두룩하며 말귀도 잘 못 알아들어서 한국영화도 자막을 켜고 본다. 일시 정지는 왜 이리 쉬운지. 딴짓하느라 러닝타임이 정말 배로 늘어난다. 몰입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포기는 남들보다 빠른 전형적인 '집중력 부족'인 거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사회 풍경도 바뀌었고 '집중력 부족'이더라도 일을 위해서라면 스크리너(개봉 전 스트리밍·파일 공유 등으로 먼저 영화를 관람하는 시스템)로 영화 보는 것도 익숙해져야 했다. 특히 최근 한국영화가 대거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하면서 시사회는 물론 인터뷰도 온라인으로 대체하게 됐다.
 

영화 '콜' 서연 역의 배우 박신혜. [사진=넷플릭스 제공]


영화 '콜'(감독 이충현)도 27일 공개를 앞두고 스크리너로 먼저 만나게 됐다. 외부 유출 위험이 있어서 여러 절차(휴대폰 인증까지 한다)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이 조금 낯설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기가 빨렸다. 게다가 넷플릭스 스크리너는 시간제한이 있어서 여유 부렸다가는 기사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판이었다. '지구인들아 나에게 기를 조금만 나눠줘!'

그리고 해냈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영화 엔딩 크레딧이 흐르고 있었다. '헐, 시간 내에 다 봤다!' 어디 가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다. 실은 영화가 가진 몰입도 덕이었다.

어린 시절 화재 사고로 아버지(박호산 분)를 잃은 서연(박신혜 분). 어머니마저 병을 얻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 서연은 모든 사건의 원인이 어머니(김성령 분)에게 있다고 생각해 그를 원망한다.

서연은 아버지의 산소를 돌보기 위해 오랜만에 고향 집을 찾는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집에 있던 낡은 전화기를 연결한 그는 우연히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고 인생이 바뀐다.

자신을 스물여덟 살 영숙(전종서 분)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어머니(이엘 분)에게 학대를 받고 있다며 서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단순한 장난 전화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절규가 너무도 섬뜩하다. 계속해서 걸려오는 전화가 수상했던 서연은 집안 곳곳을 뒤져 낡은 일기장을 찾아낸다. 일기장의 주인은 다름 아닌 영숙. 두 사람은 20년의 세월을 넘어 소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연은 영숙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과거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진다. 마음을 나눈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까지 들여다보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영숙은 서연의 '미래'를 바꿀 방법을 떠올린다. 서연이 알려준 정보를 토대로 화재 사건을 막아 아버지를 구하는 것이다. 영숙 때문에 과거가 바뀌었고 서연의 현재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 다시 아버지와 재회하게 된 것이다. 서연은 영숙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그는 과거 뉴스를 통해 영숙이 학대로 인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소식을 알린다. 영숙은 서연의 도움으로 죽음을 모면하고, 그간 누리지 못한 '자유'를 만끽한다. 하지만 영숙을 돕고자 했던 서연의 선택은 엄청난 비극을 불러온다. 서연이 막을 수 없는 과거들은 현재를 송두리째 흔든다.

전화기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사건을 해결하는 타임 워프 소재는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설정이다. 영화 '동감' 드라마 '시그널' 등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다뤄왔던 소재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은 이 익숙함을 한 번 더 비틀어 걷잡을 수 없는 공포를 불러온다. 서로 상처를 들여다보고 위로하던 두 인물이 한순간 엇갈리게 되는 과정이나 서로의 선택이 불러오는 비극, '과거' 영숙으로 위협받는 '미래' 서연의 모습은 짐작할 수 없어 더욱 두렵다.
 

영화 '콜' 27일 공개. [사진=넷플릭스 제공]


단편 영화 '몸값'으로 주목받은 신예 이충현 감독은 기존 상업 영화에서 만난 '타임 워프'라는 소재를 비틀고 깨치며 새로운 소재처럼 내놓았다.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인물, 결말까지 상업 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요소로 빼곡하다.

등장인물의 내면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상황은 예측할 수 없이 흐른다. 두 인물 간 팽팽한 긴장감은 영화 전반에 흐르며 관객들을 순식간에 몰입시킨다. 등장인물의 서사나 사건 진행에 있어 많은 설명을 부여하지 않는다. 불친절하다는 인상이 들 수 있겠지만, 영화의 리듬감을 살리고 두 여성 캐릭터에게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극 중 가수 서태지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잇는 매개로 쓰인다. 긴 설명 없이도 시대를 실감할 수 있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에서 서태지의 음악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인물의 심리 변화도 읽을 수 있게끔 한다. '기생충' 양진모 편집감독, 달파란 음악감독의 감각적인 편집과 음악이 영화의 구성을 더욱더 차지게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칭찬을 강조하고 반복해도 아깝지 않다. 데뷔 이래 가장 강렬한 연기에 도전했다는 박신혜는 그간 보여주었던 캐릭터보다 한발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서연이 느끼는 심층적인 불안감과 공포를 공감할 수 있게끔 표현해냈다.

전종서는 영숙으로 '버닝'을 지웠다. 개인적으로 '버닝' 속 전종서는 신선하긴 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고 생각해 이번 작품 역시 강렬함보다는 신선함, 그가 해석하는 연쇄살인마의 이미지가 궁금했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니 그의 얼굴이 너무도 강렬해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한국영화에서 신물 나게 그려온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는 캐릭터를 짜릿하게 뒤집었고 여자 배우가 그 역할을 맡았을 때 다른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해냈다. 영화 '콜' 이후, 한국영화에 많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7일 넷플릭스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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