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택배 노동자 죽음…국무, 조정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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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11-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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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무조정실→정책융복합센터 탈바꿈 해야

  • ‘애자일’한, 상상&크리에이티브 사람과 조직 필요


세상만사, 대부분은 점·선·면으로 연결돼 있다.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무관해 보이는 일도 결국은 닿게 된다. 그 연결의 씨줄과 날줄을 어떻게 짜고, 고르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 국가의 미래가 달라진다. 서로 다른 이해 충돌이 일어나는 나랏일(國務)을 조정(調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려 한다. 우리 모두 연관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문제를 풀기 위해.

◆미디어의 장벽 허물기··· 정부는?
전통 언론사(레거시 미디어)의 뉴스 담당 부서(신문은 편집국, 방송은 보도국)는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체육(이른바 정경사국문체) 등으로 나뉜다. 좋은 뉴스와 콘텐츠를 잘 만들고 빠르게 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도리어 그게 조직 간 장벽이 돼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잘 돌아가는 편집국이나 보도국은 각 부서별 장벽을 넘어 점·선·면의 연결고리를 찾아 양질의 뉴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콘텐츠를 생산한다.

더 나아가 신문과 방송을 넘어, 부서를 고정하지 않고 조직과 사람을 레고 블록처럼 떼었다 붙인다. 융·복합(하이브리드·hybrid)을 통해 창의적인(크리에이티브·creative) 결과물을 내놓는 미디어 시대다.

언론이 이럴진대, 하물며 나랏일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터. 모든 국가의 정부 부처 역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구분된다. 잘되는 나라는 그 영역 간 장벽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융·복합 정책을 만들고 시행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더 안전하고 윤택하게 살 수 있으니까.

◆대통령의 융·복합 아이디어··· 그 아쉬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울산을 찾았다.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 ‘미래 모빌리티 산업’ 현장에서 한국판 뉴딜의 주요 업종인 친환경 미래자동차를 직접 확인했다. “전기·수소차에 20조 투자”를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고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택배 기사를 언급한 응급구조용 드론. [사진=유니스트 제공]

유독 눈길을 끌었던 대통령의 언행은 울산 공장 다음 일정에서 나왔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에서 응급구조 드론 모형을 볼 때다. 문 대통령은 이 드론에 대해 자세히 묻고는 “최대한 이런 연구가 많이 되면 사람을 구조할 때뿐만 아니라 요즘 택배 기사들이 고생을 많이 하는데 이런 데에 택배 물건을 담아서···”라고 했다.

택배 노동자들이 연일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나온 대통령의 이 아이디어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주위에 있던 관계자들이 “멋진 아이디어”라며 박수를 쳤다고 한다.

대통령이 이런 융·복합 아이디어를 낸 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뜬금없이 불쑥 내놓고 박수 받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가 실제로 국정에 구현될 수 있도록 사람, 조직, 시스템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자주 ‘정책의 상상력’을 말한다. 그렇다면 청와대와 정부 조직에 그런 상상력을 갖춘 인재가 있는지, 인재를 담을 그릇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또 그런 상상력으로 일하는 시스템을 갖췄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대통령이 말한 택배 노동자 사망을 예로 들어보자.

◆택배 노동 해결엔 융·복합적 정책 접근
드론 활용은 신기술을 통해 택배 노동자 사망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문제의 해결책(솔루션)을 찾기 위한 융·복합적 접근은 더 많이, 여러 차원에서 있다.

주무부처는 고용노동부로, 이미 위기 대응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여기에 경제분야 최고 책임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별도로 나섰다. 김용범 차관은 지난 6일 “택배 종사자 과로 방지 및 건강보호 대책을 내년 2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3년 전에는 물류업종 관할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택배서비스 발전방안’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를 막을 다양한 방법이 담겼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부처별 단독 플레이다. 

최근 3년 14명의 택배 노동자들이 숨졌다. 입법, 법 개정을 못한 국회 탓이라고? 관련된 정부 부처들이 협업, 업무를 조율·조정해 동원 가능한 행정 조치를 취했다면 죽음을 최대한 막을 수 있었을 게다.

택배 노동자 사망 방지 대책은 위 세 부처 외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법무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맞물린 범정부적인 과제다.

과로사, 불공정 논쟁은 물론 택배상자에 손잡이 구멍을 내는 것도, 아파트 단지에 무인 택배함을 설치하는 것도 여러 부처의 일이 다 얽히고 설켜 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드론 같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등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는 정보기술(IT) 영역도 있다.

그런데 별 관심을 보이는 곳은 없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먹고 노는 공무원을 탓하기 전에 일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거다. 그럼 여러 부처가 관련된 일을 조정하고 역할을 나눠주는 일을 어디서 누가 하나.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종합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결국 또 청와대다. 청와대는 국정 전반의 컨트롤 타워이긴 하지만 국정을 조정하는 부처가 엄연히 존재한다.
 

[국무조정실 홈페이지 첫 화면 사진=홈페이지 캡처]

◆장관급 국무조정실의 몫··· 반면교사 박영준
우리 정부 부처에는 매우 그럴듯한 조직이 있다. 국무조정실이다. 1973년 박정희 정부 때 만들어진 행정조정실을 모태로 한다. 말 그대로 정부 부처 간 정책 조정을 하는 곳이다.

서석준, 이규성, 심대평, 강봉균, 이기호, 이영탁, 김진표, 한덕수, 권태신, 임종룡, 김동연, 추경호, 홍남기(현 부총리) 등 기라성 같은 경제 관료들이 거쳤다. 1급-차관 자리였다가 1998년 김대중 정부 들어 장관급(초대 정해주 실장)으로 격상됐다.

현행 '국무조정실과 그 소속기관 직제에 관한 법률' 제3조에 그 직무를 규정했다.

“국무조정실은 국무총리를 보좌하고, 각 중앙행정기관의 지휘·감독, 정책의 조정, 사회위험·갈등의 관리, 정부업무평가, 규제개혁 및 국무총리가 특별히 지시하는 사항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일으킨 ‘부하 논쟁’이 무의미한 건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국무조정실은 ‘중앙행정기관의 지휘·감독, 정책의 조정 등의 사무를 관장하는’ 막강한 부서이다. 이 권한을 십분 활용한 정권의 실세가 딱 한 명 있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그것도 장관급인 실장이 아니라 차관급인 국무차장을 지낸 박영준씨다. 그는 MB정부 최고 전성기 2년간 모든 부처를 종횡무진 오가며 정책을 주물렀다. 호가호위(狐假虎威)했다. 국무조정실이 그런 곳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놀랐다.

그러나 그때만 반짝, 실상은 국무총리 보좌기구에 불과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국무조정실과 총리비서실은 한 몸이다. 국무를 조정하는 역할? 인터넷 포털에 ‘국무조정실 컨트롤타워’를 검색어로 입력해보라. 얼마나 많은 공허한 자료가 쏟아져 나오는지. ○○○하겠다는 내용만 가득, 이후 실제로 이뤄진 정책 실행력(퍼포먼스), 결과는 찾기 쉽지 않다.
 

[2020년 11월 현재 국무조정실 직제표]


◆상상을 현실로··· 융·복합정책센터로의 재탄생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상상력은 청와대는 물론 일선 모든 부처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그렇지만 그런 상상력과 창의성을 가진 ‘정부미’(과거에 공무원을 낮춰 부르던 말)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관료들의 사랑방'이라는 비판을 받는 국무조정실의 문을 외부로 활짝 열고, 재기발랄한 공무원들을 국무조정실에 한데 모아 보면 어떨까.

요즘 경영 트렌드인 ‘애자일(agile)'스럽게 말이다. 틀에 박힌 조직과 인사 시스템에서 벗어나 특정 이슈에 대해 발 빠르게 조직을 만들었다 없앨 수 있는 레고 블록처럼. 업무에 따라 능동적·유기적으로 변신하는 애자일한 정부 부처는 상상력의 산실이 될 수 있다.

국무조정실장은 대대로 경제 관료 출신이 했지만 앞으로는 하이브리드, 융복합, 크리에이티브한 외부 인사가 더 어울릴 거다. 축구로 말하면 공격과 수비, 어디든 마음껏 그라운드를 누비는 리베로 같은 포지션이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고 창의책임자(CCO·Chief Creative Officer)라는 자리를 새로 만들고 디자이너 출신인 루크 동커볼케(Luc Donckerwolke) 부사장을 영입했다. 현대차를 떠났던 그가 창의력을 발휘, 마음껏 상상을 펼치는 마당을 펼쳐주니 다시 돌아온 것이다.  

국무조정실이 대한민국 정부 정책 융·복합센터로 탈바꿈하는, 장관급 실장이 국정 코디네이터·CCO 역할을 하는 머지않은 미래를 그려 본다.

그 밑그림은 창의 전문가 김경일 아주대 교수가 쓴 책 제목 그대로다.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상황의 힘" 택배 노동자 사망 대책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 조정이 필수불가결한 이 시대, 지금이 바로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때, 그 상황이다. 상황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미 있는 창의성을 꺼내는 사람이 절실하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못하면 국무조정실을 맡고 있는 정세균 총리가 그 힘을 꺼내야 한다. 그래야 미래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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