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수학자라면, 붓다는 물리학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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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언론인,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입력 2020-10-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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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홀’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인 로저 펜로즈.

  • 그의 우주론은 ‘순환우주론’으로 힌두교, 불교의 우주관도 상통.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2020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로저 펜로즈는 교양과학서를 많이 썼다. 동시대 영국을 대표하는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못지않게 책을 냈다. 한국에도 단독 저서가 5종 소개되어 있다. 수리물리학계의 대가가 연구에 바쁜 짬을 내어 일반인을 위해 책을 썼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건 블랙홀 관련 연구(1965년)다. 블랙홀이 존재하느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1915년)이후 논란이었는데, 펜로즈의 1965년 연구는 50년 된 논란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펜로즈를 특징짓는 건, 그게 다가 아니다. 그는 독특한 상상력을 자랑하는 물리학계의 이단자라는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의식에 대한 연구와, 우주론에 관한 연구가 그런 흐름에 있다. 이 두 분야에서의 펜로즈 연구는 물리학계 주요 흐름에서는 벗어나있는 소수 견해에 속한다. 그가 쓴 교양과학서는 바로 이 두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펜로즈는 정작 자신의 가장 유명한 연구인 블랙홀 관련한 교양서는 쓰지 않았다.

의식은 어떻게 출현하는가와,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연구하는 우주론은 빅퀘스천에 속한다. 빅퀘스천은 쉽게 답을 구할 수 없는 거대한 질문들이다. ‘생명은 어떻게 출현했나’ ‘왜 아무 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나’ ‘우주에는 다른 지적 생명체가 있나’가 그런 질문에 속한다.

펜로즈의 ‘의식의 물리학’에 관한 연구는 ‘황제의 새마음’과 ‘마음의 그림자’라는 두 권의 책에서 접할 수 있다. 펜로즈 교양과학서 목록을 잠깐 보면, 발행연도 순으로 보아 ‘황제의 새 마음’(1989년), ‘마음의 그림자’(1994년), ‘실체로 가는 길’(2004년), ‘시간의 순환’(2010년), ‘유행, 신조 그리고 공상’(2016년) 순이다. 그러니까 그의 교양과학서 중에는 의식 관련 책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나온 걸 알 수 있다.

펜로즈의 책에는 수식이 나온다. 호킹이 베스트셀러였던 ‘시간의 역사’에서 수식을 쓰지 않은 것과 다르다. 호킹은 수식 하나 쓸 때마다 잠재적인 독자의 절반이 떨어져 나간다는 출판사의 말을 수용했다. 하지만 펜로즈는 “수학 공식을 두려워하는 독자라면, 불쌍한 수식을 이해하기보다는 음미하는 수준으로 잠시 들여다본 후 다음 문장으로 서둘러 넘어가기 바란다. 얼마 후에 자신이 좀 붙으면, 그냥 지나갔던 수식으로 돌아와 거기에 담긴 독특한 특성들을 이해하려 해 보기 바란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수식이 나오기에 그가 쓴 교양물리학 책은 난도에 있어 최고봉이다.

‘황제의 새 마음’은 의식의 물리학적 기반을 탐구했다. 이 책은 큰 관심을 끌었다. 책은 ‘컴퓨터도 마음을 소유할 수 있는가’로부터 시작해 알고리즘, 튜링 검사, 실체(Reality)를 표현하는 언어로서 수학을 거쳐 ‘마음의 물리학’을 논한다. 펜로즈의 핵심 주장은 “사람의 생각이 아주 복잡한 컴퓨터의 행동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는 현재 철학계가 널리 받아들이는 관점을 반박”하는 것이었다. 요즘 언어로 표현하면 인공지능이 향후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질 거라는 주장을 논박한 것이다.

이로부터 5년 뒤에 내놓은 책 ‘마음의 그림자’에서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펜로즈는 두뇌 활동과 양자역학을 연결시켜, 사람의 뇌가 양자컴퓨터라고 주장했다. 신경세포의 세포골격을 이루는 구조체는 미세소관(Microtubule)이라고 한다. 펜로즈는 미세소관 내부에서 양자 결맞음(Quantum Coherence) 현상이 일어나며, 의식의 출현은 미세소관과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펜로즈의 ‘양자컴퓨터 두뇌‘ 주장은 미국 MIT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Tegmark)에 의해 2000년 논박되었다. 테그마크는 미소세관에서 양자 결맞음이 유지되는 시간을 계산을 해봤으나 너무 짧은 걸로 나왔다며, “우리 두뇌는 양자 컴퓨터로 작동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책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에 관련 내용). 펜로즈는 이를 반박했으나, 테그마크 논문 이후 펜로즈의 ‘의식의 물리학 연구‘는 외면받기 시작했다.

펜로즈의 또 다른 이단적인 연구인 ‘우주론’을 보자. 그의 우주론은 ‘순환우주론’이다. ‘등각순환우주론’(Conformal Cyclic Cosmology)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우주가 탄생과 죽음을 영원히 반복한다는 게 순환우주론이다. 동양은 순환우주론에 익숙하나, 펜로즈가 속한 다르다. 서양문화권은 단선적인 우주관을 갖고 있다. 우주에는 시작이 있고, 말세라는 종말이 있으며, 그걸로 끝이라고 믿는다. 서양 종교인 기독교의 우주관이 그걸 보여준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고, 시간이 지나 우주의 마지막 날이 오면 신이 최후의 심판을 할 거라고 한다.

그런 서양 문화의 시선으로 보면 순환우주론을 펴는 펜로즈는 이단적이다. 펜로즈의 ‘등각순환우주론’은 그의 책 ‘시간의 순환’(2010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2004년 책인 ‘실체로 가는 길’은 그와 관련한 예비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2016년 책 ‘유행, 신조 그리고 공상’에도 ‘등각순환우주론’이 둥장한다.

펜로즈는 ‘순환우주론’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통보받은 뒤 영국 신문 텔레그라프와 만났을 때 이 주장을 또 폈다. 텔레그라프 10월 6일자 온라인 기사를 보면 제목이 이렇다. “빅뱅 이전에 우주가 존재했다. 오늘날도 그걸 관측할 수 있다고 노벨상 수상자가 말하다”(An earlier universe existed before the Big Bang, and can still be observed today, says Nobel winner‘).

펜로즈의 순환우주론 연구에 가장 관심을 보인 건 인도 언론이다. 인도 언론이 ‘순환우주론’에 관심을 보인 건 힌두교의 우주관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인도인 10억 명 이상이 믿고 있는 힌두교는 순환우주관을 갖고 있고, 이 우주관에 따르면 각 우주의 길이는 43억 2000만년이다.(인터넷사전 ‘위키피디어’ 자료). 인도 전통은 상상할 수 없이 긴 시간을 우주의 나이로 제시했고, 놀랍게도 현대 우주론이 말하는 138억 년의 우주 역사에 가장 근접했다고 자부할지 모르겠다.

불교는 인도의 힌두교 전통에서 탄생했다. 불교 우주관도 힌두교와 비슷하다. 순환우주관을 갖고 있으며, 억겁(億劫)이라는 긴 시간을 말한다. 때문에 불교의 우주관은 현대 물리학과 매우 흡사하게 보인다. 한국 불교계 일각이 붓다를 놀라운 물리학자라고 생각하는 건 그 때문이다.

붓다의 존재론 또한 현대 물리학자 일부의 설명과 흡사하다. 붓다는 존재는 다른 존재와 인연으로 존재하고 또 사라진다는 연기론(緣起論)을 말했다. 물리학의 표현으로 하면 상호작용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이자,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불자들의 가슴을 뛰게 한 바 있다.

“입자들의 위치는 모든 순간 기술되지 않고 오직 특정 순간의 위치만 기술된다. 입자들이 다른 무언가와 상호작용하는 순간에만 기술할 수 있다...전자는 항상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할 때에만 존재한다. 다른 무언가와 충돌할 때에 어떤 장소에서 물질화한다.”(‘보이는 건 실재가 아니다’ 책)

책에는 좀 더 철학적인 문장도 있다. “실재는 대상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흐름이다. 우리는 이런 가변성에 경계를 지음으로써 실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바다의 파도를 생각해 보라. 파도 하나는 어디에서 끝나나. 어디에서 시작하나? 누가 말할 수 있는가? 하지만 파도는 실재다...살아있는 체계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형성하며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특별한 체계이다.”

현대 물리학자의 말인지, 붓다가 기원전 6세기 갠지스 강변에서 한 이야기인지 얼핏 잘 구분이 안 되는 문장이다. 자연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잘 기술된다. 그래서 ‘신은 수학자인가?’ 하는 말이 나왔다. 순환우주론이 맞다면, 그걸 말한 고타마 붓다는 물리학자였나? 하는 말도 나올 법하다.

펜로즈가 노벨상을 받은 뒤에 순환우주론 주장을 한 것에 대해 미국의 한 과학 작가(물리학 박사)는 ‘이제, 그런 주장은 그만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미국 격주간지 포브스에 쓴 기사에서 그는 ”노벨물리학상까지 받은 사람이 그런 주장을 하면 안 된다“면서 과거 탁월한 물리학자임에도 이단적인 우주론을 주장하는 바람에 노벨상에서 배제된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주론 분야의 연구는 누가 맞는지는 판정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소수설이라고 쉽게 내칠 수는 없다. 블랙홀 이론이나, 빅뱅우주론도 소수설로 시작했다. 두 이론 모두 아인슈타인이라는 거물의 비토를 극복하고 살아남았다. 펜로즈는 저서 ‘시간의 순환’ 서문에서 자신의 주장을 “이단적이지만 기초가 굳건한 기하학적 물리학적 발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이 틀리더라도, 우주론학자의 상상력을 넓히는 효과는 분명 있지 않을까 싶다.

로저 펜로즈는 1931년생이니 올해 만 89세다. 2000년에 태어난 늦둥이 아들 맥스를 두고 있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펜로즈 옹의 노벨상 수상을 멀리에서 축하하며, 양아버지 이름을 붙인 늦둥이 아들과 오래 행복하길 기원한다.
 

[로저 펜로즈: 사진출처: 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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