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 유감(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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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입력 2020-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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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골퍼 여러분 쳇바퀴 잘 굴리고 계십니까. 참 유감스럽습니다."

쳇바퀴를 돌고 있는 사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의 일개 골퍼로서 참 유감스러운 세상이다. 골프장에 도착하면 절로 한숨이 난다. 천정부지로 솟는 골프장 이용료(그린피)와 카트 사용료(카트비), 캐디피 때문이다.

라커룸 키를 받고,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면 빨리 나오라는 독촉이 시작된다. 카트를 타고 18홀을 도는 동안에도 '빨리, 빨리'다. 캐디는 말은 안 해도 흘기는 눈으로 눈치를 준다. 눈칫밥을 '꾸역꾸역' 넘긴다. 가져온 음식을 먹었더니 "음식 가져와서 여기서 드시면 안 돼요"라는 지적까지 한다. 

30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목동의 채찍에 몰이 당하는 소처럼 잔디밭을 뛰어다닌다. 경기가 끝나고 캐디는 "4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빨리 치셔야 한다"고 타박을 준다.

올해 10월 평균 회원권 가격은 1억5000만원 선. 회원이라고 다를 바 없다. 늦은 밤 골프장 부킹을 위해서 눈을 켜고 모니터를 바라봐야 한다. 잠시라도 늦으면 예외는 없다. 원하는 시간에 예약이 되질 않았다. 골프장을 방문해서 담당자를 만나려 해도 만나 주지 않는다. "전화로 하세요. 찾아오지 마시고요."

그야말로 유감이다. 우리는 어쩌면 골프장이 만들어 놓은 쳇바퀴 속에서 사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골퍼 여러분 쳇바퀴 잘 굴리고 계십니까. 참 유감스럽습니다."

◆대한민국 골퍼는 소몰이 당하는 '소'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 골프장 내장객이 대폭 증가했다. 감염병 탓에 하늘길이 막히면서 야외인 골프장이 '청정 지역'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골프 붐이 일었다. 이름하여 '골프 신드롬(Golf Syndrome)'. 이러한 상황에서 그린피, 캐디피, 카트비는 '따상'을 노리는 엔터사 주식처럼 올랐다. 대중 골프장의 가격도 더는 '대중적'이라 부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린피가 25만~30만원인 골프장이 수두룩하게 생겼다. 카트피는 13만원, 캐디피는 15만원까지 치솟았다.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비싼 골프장을 기준으로 1인 37만원까지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다.

"4인 148만원을 줄게"라고 외쳐도 부킹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골프장은 인산인해다. 카트를 타고 나가는 사람의 수와 카트에 탑승하는 사람의 수가 비슷할 정도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말이다. 이때다 싶은 골프장들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겠다'는 마음으로 돈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값을 올렸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비용을 낸 골퍼들은 그린을 밟자마자 소몰이를 당한다. 캐디도 귀에 걸친 무전기를 통해 캐디 마스터에게 압박을 당한다. 결국 캐디들은 "빨리, 빨리"를 외칠 수밖에 없다. 한 팀이라도 더 받아야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골퍼는 생각한다. 내가 왜 37만원이라는 돈을 내고 소몰이를 당해야 하는가. 그래도 큰 대안은 없다. 한 곳만이 아닌 많은 골프장이 단체로 비용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한 사람이 이야기한다. "골프를 싸게 치고 싶으면 회원권에 투자해 보는 것은 어때"라고 말이다.

◆대한민국 골퍼는 회원권을 갖고 있어도 '봉'

국내 회원권 평균 가격은 약 1억5000만원. 남부권보다 중부권이 더 비싼 건 당연하다. 골퍼 B씨네 회사는 서울 강남구에서 가까운 A골프장의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골프장의 회원 수는 약 800명.

추석 연휴였던 지난 9월 30일 밤 11시부터 10월 1일 새벽 1시까지, B씨는 모니터를 지켜봤다.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하려던 것이 아니다. 골프장 부킹 때문이다. 두 달 뒤인 11월 예약이 자정에 열리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 좋은 시간대를 모두 빼앗겼다. 다음 날 중요한 미팅이 있는 시간대로 변경하기 위해 골프장에 전화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다.

결국 골프장의 회원 담당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나섰지만, 프론트에 있는 직원은 "찾아오지 마시고, 전화로 하세요. 못 만납니다"라며 차갑게 응대했다. 

며칠 후 B씨는 다시 골프장에 전화를 걸었다. 해당 시간 부킹이 가능하냐 물었더니 "가능합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어서 그 직원은 "그린피는 20만원입니다." 결국 내가 원했던 시간은 비싼 그린피를 받는 비회원을 위해 남겨져 있었다.

B씨는 느꼈다. 회원권이 있어도 비싼 그린피를 받아야 해서 비회원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1980년대 중반 개그맨 부부가 개그 프로그램에서 퍼뜨린 유행어가 떠올랐다. '난 봉이야~' 결국 회원은 '봉'이었다.
 

"누구를 위한 깃대인가."[사진=게티이미지뱅크]

◆회원도 골프장에서는 마음대로 밥을 먹을 수 없는 '노비'

지난 2009년 있었던 일이다. 이 역시도 A골프장에 대한 이야기다. 골프장 회원인 골퍼들이 싸 온 음식을 먹다가 '벌점'을 받았다.

벌점을 받으면 일정 기간 골프장 부킹이 불가능했기에, 해당 골퍼들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그들의 주장은 이랬다. "그늘집에서 시중보다 평균 3배 이상 비싼 음식을 팔고 있어서, 음료수나 초콜릿 등 가벼운 음식을 가져왔다. 그런데 그걸 본 골프장에서 부킹을 금지했다"고 했다.

이는 음식도 가져오지 말고, 골프장에서 파는 것만 먹으라는 골프장의 '갑질'이다. 사실 이 조항은 많은 골프장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공정위는 "골프장 사업주들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이용객의 권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1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A골프장은 외부 음식물 반입을 허용했다. 그러나 대구에 위치한 D골프장 등 대다수 골프장은 여전히 외부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D골프장 홈페이지에는 '우리 클럽에서는 외부음식물 반입을 금하고 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이 게재돼 있다. 긴 사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은 전혀 없었다.
 

'외부음식물 반입금지'[사진=D골프장 홈페이지 발췌]


◆골프장은 갑이 만든 '쳇바퀴', 굴리는 건 을인 '골퍼'들

대한민국에서 골퍼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소몰이를 당한다. 어렵사리 회원권을 사도 수강 신청과 귀향길 기차표 예매처럼 모니터에서 수도 없이 키보드의 F5(새로 고침)를 눌러야만 겨우 예약할 수 있다.

회원 담당자를 만나려 해도 만날 수 없다. 찾아오지 말고 전화로 하란다. 좋은 시간은 모두 비싼 그린피를 내는 골퍼들의 몫이다. 밥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우리는 '노비'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골프장이 만들어 놓은 '쳇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골퍼다.

악랄하고 악질적인 쳇바퀴가 과연 왜 만들어졌을까. 이는 바로 정부의 안일한 탁상행정 때문이다. 2000년 정부는 '골프 대중화'를 외쳤다. 문제는 말만 대중화지, 골프장 사주들의 배만 불리는 데 일조했다.

세금은 감면하는데, 골프장 이용료는 오히려 올라갔다. 신기한 일이다. 카트비는 렌터카를 빌리는 돈보다 비싸다. 원가는 훨씬 싼데 말이다. 캐디피는 어떠한가. 10만원부터 쭉쭉 성장하더니 15만원 선이 됐다.

대중 골프장이 회원제 골프장보다 비싼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금액을 올려도 내장객은 넘치니 '배짱'이 두둑해졌다.

사람들은 물가를 비교할 때 전 세계에 체인점을 보유하고 있는 햄버거 전문점이나, 커피 전문점의 한 메뉴를 기준으로 한다. 2014년 한 프렌차이즈 커피숍의 커피 가격이 뉴욕에서 판매하는 가격의 두 배여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럼 골프 물가는 어떨까. 각 국가에서 가장 유명한 골프 부킹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인해 봤다. 미국은 Golf Now(골프 나우), 일본은 GDO(골프 다이제스트 온라인), 중국은 BaiGolf(바이 골프)를 통해 진행했다. 장소는 각 국가 도심 근처로 하고 날짜는 주말(일요일)인 10월 25일로 잡았다.

골프나우로 '미국 캘리포니아'를 검색해서 나온 가장 비싼 골프장은 아이언 밸리 골프 클럽이다. 카트비를 포함해 79달러(약 9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 GDO로 '일본 도쿄'를 검색했다. 소부 컨트리클럽이 나왔다. 같은 기간 내에 비용은 9800엔(약 11만원)으로 2인 플레이가 가능하고, 세금과 카트비가 포함됐다. BaiGolf로 '중국 북경'을 검색했다. 400~1400위안까지 다양했다. 평균은 900위안(약 15만원)이다. 평균가를 기록한 골프장은 북경에서 가까운 동방천성골프장이다.

현재 수도권 골프장의 일요일 평균가는 약 25만원 선이다. 이는 미국의 2.7배, 일본의 2.2배, 중국의 1.6배에 달한다.

최근 청와대에서 운영하는 '국민청원'에는 두 건의 청원이 올라왔다. 두 건 모두 골프장 이용료가 비싸다는 것. 당시 청원을 본 사람들은 두 갈래로 의견이 나뉘었다. '청원이 타당하다'는 입장과 '청원은 힘들고,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말이다. 그러나 공통분모는 하나다. 국내 골프장의 이용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 이제 사람들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내뱉기 시작했다.

공정위의 조사는 시작 단계다. 정부의 탁상행정인 '골프 대중화'의 개선도 시급하다. 사주만 배부르게 할 것이 아니라, 골퍼들에게도 대중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자체의 대중 골프장 조사도 필요한 시점이다. 세금 감면을 받아 놓고 누가 편법을 쓰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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