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더 뛰어도 부족한데... 기업 발목잡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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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입력 2020-10-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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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회장]



세계경제사를 보면 국민이 잘 사는 강대국, 즉 부국부민을 이룬 나라는 예외 없이 기업이 흥한 나라들이다. 영국에서는 1760년경부터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헨리 코트의 제철산업, 리처드 아크라이크와 제임스 하그리브스의 방적산업 등 엄청나게 많은 혁신기업들이 일어나면서 산업혁명을 촉발시켰다. 그 때문에 각 분야의 대소기업들이 융성하면서 1850년대에는 영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면서 빅토리아 대호황을 구가했다. 명실공히 영국은 세계 제1의 선진국으로서 영국 파운드화는 1차대전경까지 세계의 기축통화로 군림해 왔다.

영국의 대호황은 자연스럽게 영국 이민자들이 건설한 미국으로 옮겨붙어 1870년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는 미국에서 신흥기업들이 줄 이어 탄생했다.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 등 석유산업, 앤드루 카네기의 유에스스틸 등 철강산업, 존 피어폰트 모건의 투자은행 제이피모건 등 금융산업, 존 피어폰트 모건과 토머스 에디슨의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전기산업, 코넬리어스 밴드빌트의 철도산업, 헨리 포드의 자동차산업 등 신흥기업들이 줄줄이 탄생해 미국은 영국을 이어 받아 세계 최강국으로 등장하면서 파운드화의 뒤를 이어 달러화 기축통화시대를 열었다. 근년에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세계적인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즐비하게 탄생하면서 미국경제의 선두자리를 유지시켜주고 있다.

1980년대 미국의 뒤를 이어 일본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등장하면서 일본이 강국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찍이 메이지유신으로 개화하고 청·일, 러·일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해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일본은 2차대전 전에는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아사노 등 5대 자이바쓰 (재벌)들이 등장해 강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2차대전에 패해 군수산업 발전의 싹을 자르기 위한 맥아더 사령관의 자이바쓰 해체에도 불구하고 게이레쓰(계열사)라고 하는 일본형 특유의 상호출자 기반의 기업집단을 형성해 도요타자동차, 마쓰시타전기, 소니, 신일본제철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다시 등장하면서 전후 일본을 세계적인 강국으로 이끌었다.

한국도 1970년대 중화학공업정책으로 육성된 대기업집단, 즉 재벌들이 한국경제를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 되던 세계 최빈곤국에서 3만 달러대의 선진국 문턱까지 도약시켰다. 자원·기술·재원 등 아무것도 없던, 그야말로 맨땅에서 일군 위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하이닉스, 롯데쇼핑, 포항제철과 조선업의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이 분야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한국에서 반재벌 정서에 편승해 한국형 대기업 재벌 중심의 성장전략보다 대만형 중소기업전략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오늘날 대만은 동남아 화교권과 중국본토라는, 한국에는 없는 엄청난 시장을 가지고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대로 아시아 네 마리 용 그룹의 맨 마지막에서 간신히 따라오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대만 1인당 국민소득은 2만4971달러로 한국(3만3434달러), 홍콩(4만8517달러), 싱가포르(6만4041달러)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TSMC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인 기업이 별로 없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비약적인 성장도 중국으로 몰려드는 세계 각국의 기업들과 중국기업들의 성장에 힘입은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은 세계 각국 기업들의 직접투자로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도 현재 2만6000여개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세계경제포럼에 의하면 2018년 제조업 생산 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8.4%로 단연 세계 1위다. 그 다음이 미국(16.6%), 일본(7.2%), 독일(5.8%), 한국(3.3%), 인도(3.0%), 이탈리아(2.3%), 프랑스(1.9%), 영국(1.8%) 순이다. 세계적인 중국 기업들의 면모를 간단히 살펴보면, 요즘 미국과 기술 해킹 문제로 분쟁의 중심에 있는 통신장비기업 화웨이, 가전기업 하이얼, 자동차기업 상하이치처, 둥펑치처, 조선기업 중궈촨버, 철강기업 상하이보우캉 등 즐비하다. 근년에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가 약칭 BATH로 불리며 미국의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약칭 GAFA와 세계 ICT시장에서 쟁패를 다투고 있다.

이처럼 기업이 흥해야 강국이 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양산되면서 국민들도 잘 살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들은 사면초가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의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근로자들과의 노사관계, 주주들과의 관계, 소비자들과의 관계에다 이 모든 관계를 규율하는 정부의 입법과 정책이 기본적은 큰 틀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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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사관계는 협력적이라기보다는 투쟁적 노사관계로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10%에 불과한 노조를 귀족노조라고 하겠는가. 5%에 불과한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도 거부한 채 장외투쟁을 다반사로 하고 있다. 설상가상 정부여당은 노조법을 개정해 해고자·실직자도 노조전임자가 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주주들과의 관계는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문제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소수주주권 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주주행동주의는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에 기여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기관투자가와 헤지펀드들이 가세하면서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고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거액의 단기시세차익을 챙기고 먹튀하는 추세가 확산되면서 장기투자를 통해 기업을 이루고자 하는 기업들에 큰 타격을 입혀 왔다. 드디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주주행동주의에 제동을 거는 규제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9월 23일 통과된 미국 규제개혁안은 소수주주들이 주주제안을 하려면 최소 1년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하고 소액투자자가 모여서 주주제안을 하려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주주제안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한국의 개정안은 이와는 정반대로 현재 6개월 이상인 주식보유기간을 없애 주식 매입 3일 후면 주주제안을 가능케 해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준비시간을 사실상 주지 않는 방향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한국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외국인 지분율이 급증하고 적대적 인수·합병이 허용되면서 타이거, 소버린 등 세계적인 기업사냥꾼 헤지펀드들이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며 투자액의 수십배에 달하는 수천억원씩(타이거 6300억원, 소버린 9500억원)을 챙기고 나가는 일이 발생하면서 기업경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와 같은 주주행동주의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장하성, 김상조 등이다. 이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정책실장을 연이어 맡으면서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 추진으로 기업지배구조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임, 대주주 3% 의결권 제한 등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제가 도입될 경우, 대주주는 투자는 하되 경영은 할 수 없게 되어 해고자·실직자 노조전임 허용과 함께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메가톤급이 될 전망이다. 과연 한국에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인이 있을까 우려될 정도다.

외국에서 경영권 보호를 위해 도입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포이즌빌, 황금주제도는 한국에서는 언급도 안 되고 있다. 구글·페이스북이 7~9%의 지분만 가지고도 과반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고,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0.05%의 지분으로 84%가 넘는 절대적인 의결권을 행사하는 황금주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등 미국·영국 등 서구선진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차등의결권이나 황금주제도를 통해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알리바바의 마윈은 8.9%의 지분으로 75%의 의결권을 지배하고 있고, 바이두·앤트파이낸셜 등도 모두 차등의결권으로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데, 기업의 지속성 유지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차등의결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어, 지배구조는 취약한데 이를 더 흔들려고 하면 기업을 어떻게 확장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인가.

소비자 관계도 만만치 않다. 공정거래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강화에다 새로 추진되고 있는 집단소송법 제정이 추진될 경우 기업들은 각종 소송에 시달릴 전망이다. 현재 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 개혁, 노사관계정책, 소비자보호정책 등 기업을 둘러싼 정책들이 과도하게 반기업·친노조 이념에 편향된 나머지 균형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그 결과는 기업투자를 위축시켜 일자리를 파괴하게 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동서고금의 경제사는 기업이 흥한 나라들은 경제강국이 되고 기업이 쇠락한 나라들은 빈국으로 추락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 정부의 반기업 일변도의 경제정책은 반등과 추락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경제를 추락과 빈곤의 길로 들어서게 할 것으로 우려된다. 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면 바로 모두 빈국빈민의 늪으로 추락한다. 소비자도 보호되고 노사관계도 협력적으로 개선되고 소수주주의 권리도 보장되어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하되 기업투자 위축과 일자리 파괴가 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정책추진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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