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K방역 이끌 '질병관리청'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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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0-09-1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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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질병관리청장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초대 질병관리청장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내정했다. 




 

[곽재원의 Now&Future] 정치와 과학의 랑데부…. 질병관리본부에서 청(廳)으로 격상해 12일 발족하는 질병관리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조직에서 본부로부터 청으로의 변신은 단순한 승격이 아니라 ‘퀀텀점프(Quantum Jump)’다. 이 같은 변신은 정치적 결단과 과학이 뒷받침한 것이다.

우리는 질병관리청 발족에서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결단’을 목격했다. 즉 전례없는 ‘과학적인 정치’를 본 것이다. 이로써 코로나19 확산을 잘 막아 글로벌 브랜드가 된 소위 ‘K-방역’이 행정 체제 안에서 자리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질병관리청은 이제부터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아니라 중앙행정기관으로 독립 승격한 청으로서 국민을 대하게 된다. 본부 아래 있었던 국립보건연구원과 감염병연구센터를 그대로 유지하되 감염병연구센터를 국립감염병연구소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가장 주목되는 감염병 의사결정 구조도 크게 바뀐다. 지금까지는 보건복지부가 정책, 질병관리본부는 집행기능을 수행했으나 질병관리청으로 정책·집행도 일원화된다. 지역체계는 별도 조직이 없었으나 자치단체 방역을 지원하는 권역별 ‘질병대응센터’(가칭)를 신설한다. 감염병에 관한 연구개발(R&D)은 확대 개편되는 국립감염연구소가 총괄한다.

질병관리청은 인사권과 예산편성권을 갖는다. 보건복지부로부터의 완연한 독립이다. 새로 시작하는 청인 만큼 첫발을 잘 내디뎌야 한다. 처음부터 스텝이 엉키면 앞날이 불투명하다. 그 성패는 기관장 역량에 달려있다. 국민들은 초대 청장의 역량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초대청장에 내정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56)은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국민들에게 ‘편안하다’, ‘성실하다’ 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센터장에서 국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본부장(차관급)으로 3단계 건너뛰어 승진한 실력파다. 이에 앞서 2015년 5월 그는 우리나라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첫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 담당 센터장을 제치고 책임을 맡기도 했다. 국가 고위직 인사의 경우 지역안배나 성평등이 주요 고려 사항이 되지만 특수 전문직의 경우엔 실력이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파다.

그러나 그의 진짜 실력은 이제부터 평가받게 된다. 보건복지부라는 슈퍼 관료집단의 지휘 감독 아래서 직책을 수행할 때와는 사정이 달라졌다. 침착한 모범생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조직을 끌고 가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기존 907명에서 569명이 늘어나 1476명 규모로 출발한다. 재배치를 제외한 순수 증원 인력이 384명이나 된다. 예산은 올해 7000억원 안팎(이 중 3000억원은 예방접종사업) 으로 청 승격 이후엔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인력증원, 코로나19 대책과 함께 향후 다른 질병에 대한 백신·치료제의 연구개발이 강화되고, 전국 방역시스템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예산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국회와 기재부를 부단히 설득하는 외교력과 정치력이 청장에게는 필수적이다.

내부적으로는 조직정비와 신규인력 채용이 시급한 과제다.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해 부서별 목표(미션, 비전, 추진전략 등)를 정해야 한다. 신규 채용은 민간개방형으로 우수인재를 뽑아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스포츠팀 운영하듯 능력에 따라 배치·선발하는 순발력 있는 운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은경 신임 청장은 내부의 눈, 정부의 눈, 국민의 눈에 둘러싸인 ‘역(逆) 팬옵티콘’의 독방에 들어간 형국이다. 이것은 본인에게는 상상해 보지 못한 부담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부담을 이겨내고, 국가를 끌고 가는 리더가 될 기회도 된다. 정은경의 진짜 위기대응능력이 시험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은 정은경과 그가 구사할 시스템 운영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국가적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최대 글로벌 이슈는 ‘국민 안전·안심 국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집중된다. 질병관리청은 감염병의 최후 방어벽이다. 이곳이 뚫리면 안전·안심은 사라진다. 물론 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등을 관리하는 식약청도 중대한 몫을 지키고 있지만 전 국민과 세계를 도탄에 빠뜨리는 팬데믹에서 국민을 보호해주는 곳은 질병관리청이다. 정치(국회)가 보호해야 하고, 예산(기재부)이 배려해야 하며, 범부처 차원의 관심을 기울이는 ‘국민 안전·안심 협업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지난 8일은 행정안전부가 국무회의에서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고 보건복지부에 복수차관을 도입하는 내용의 직제 제정·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던 날이다. 이날 오전10시(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선 ‘전국 신형코로나바이러스 대책 표창식’이 인민대회당에서 성대히 열렸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 국가주석 (중공중앙총서기·중앙군사위원회주석)은 국가훈장과 국가명예칭호의 수상식을 갖고 중요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신형 코로나와의 싸움은 중국의 힘과 책임감을 마음껏 보여 주었다”고 선언하면서 “이 과정에서 중국은 감염증 예방·억제와 경제·사회 발전 운영을 계획적으로 추진해 생산과 생활 질서의 회복을 확실히 일으키며 현저한 성과를 올렸다“고 강조했다. 수상자는 총 4명으로(1명 훈장, 3명 국가명예칭호) 호흡기 질환분야 리더로서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와 코로나19의 예방·억제에 공헌한 의사,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접목시켜 중국의 치료 플랜을 만든 한의학자, 본인이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 환자이면서 우한 등의 의료 최일선에서 활약한 의사, 기초연구와 백신, 방호약물연구개발에서 성과를 올린 인민해방군의 여성 의료인이다. 지난달 26일 중국의 세계적 자랑거리인 선전(深川) 경제개발특구 지정 40주년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4명의 유공자를 위해 대대적인 표창식을 가진 것이다. 중국 경제를 선도하는 첨단지역 선전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 없지만, 시 주석이 여기를 가지 않은 채 중국이 안전· 안심국가임을 국내외에 과시하는 모습도 일회 행사로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중국이 과학자와 현장 의료인에 대한 국가적 예우를 어떻게 하는지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과학이 정치화하면 안되지만 과학은 정치적 지원이 없으면 못 큰다. 과학이 정치로부터 지원을 받으려면 명확한 증거 기반으로 설득해야 한다. 과학을 이해한 정치는 ‘과학적인 정치’를 하게 되며,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정책결정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2003년 국립보건원 개편으로 만들어진 질병관리본부는 17년 만에 보건복지부에서 독립하기까지 우수한 인력들을 바탕으로 질병 예방·관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정은경 신임청장의 지휘 아래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도약을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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