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뽕짝 르네상스 한국 뜻밖의 '문화뉴딜'?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입력 : 2020-09-08 17:04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교수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꼰대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방탄소년단(BTS)이 ‘다이너마이트’라는 노래로 대망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을 때 나는 김호중(29)을 생각했다. 김호중도 트로트로 전환하지 말고 계속 성악을 했더라면…. 그가 ‘미스터 트롯’ 오디션(결승)에서 불렀던 ‘고맙소’의 한 구절을 가만히 읊조려보았다.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 팬이라는 게 이렇게 해서 생기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힙합 시대에 뽕짝이라니? 나이와 세대는 속일 수 없는 것일까.

BTS와 김호중을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장르도 성격도 다르고 인지도나 팬덤에서도 워낙 차이가 난다. 예컨대 다이나마이트의 유튜브 조회수는 나흘이 채 안 돼 2억을 넘었다. 2억 돌파만 이번으로 16번째다. 김호중은? 지난 6월 팬 카페가 결성되면서 회원수가 8만을 넘어섰고, 애창곡 ‘고맙소’의 유튜브 조회는 160만을 기록했다. 종목을 바꾼 지 3개월 만에 거둔 성적으로는 놀라운 일이나 그렇다고 BTS에 견주랴.

한국을 휩쓴 트로트 열풍

그럼에도 나는 김호중에게 더 끌린다. 그건 순전히 꼰대 세대의 정서와 취향 탓이다. 김호중을 낳은 ‘미스터 트롯’을 보면서 내가 마음을 뺏긴 것은 세 가지다. 출연자들의 큰절, 가요계 선배들에 대한 깍듯한 자세, 시도 때도 없이 흘리는 눈물이다. 출연자들이 무대 위에서 큰절을 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짠하다. 거기엔 무명시절 그들이 겪었던 고초와 서러움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들도 울고 시청자도 운다. 지난 3일 후속 프로격인 ‘사랑의 콜 센터’에선 과거 무명시절 임영웅과 함께 버스킹을 했으나 가수의 길을 포기했던 그의 절친이 출연했다. 그의 노래실력에 놀랐고, 사연에 가슴이 뭉클해 임영웅도 울고, 시청자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배들에 대해선 또 얼마나 공손한가. 진성, 강진, 조항조 같은 선배들을 무대에서 만나면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힘든 세월에도 트로트를 지켜준 선배들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절절이 드러난다. 6‧25로 풍비박산이 난 집안에서 그래도 살아남아, 20년 30년 열심히 일해 집안 대사(大事)에 다시 모이는 바로 내 가족의 모습이다. 이런저런 이산(離散)의 한(恨)을 극복해온 게 우리의 보편적 삶의 행로이고, 그걸 노래한 게 트로트가 아닌가. 이별의 정한(情恨)도 그렇고.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칼군무의 아이돌스타들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김호중도 자주 눈물을 보였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랐고, 고교시절 한때 방황했던 기억이 되살아난 탓인지, ‘고맙소’를 부르며 눈물을 비쳤다.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내 성악의 길로 인도한 은사 서수용(김천예고) 선생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했다. 그의 음악적 자질에 대해 한 전문가는 이렇게 평가했다. “풍부한 성량으로 마치 CD를 틀어놓은 것처럼 김호중만의 단단한 발성, 안정적인 호흡, 딕션(언어적 표현), 장르에 구애 없는 창법, 게다가 가사의 전달이 가사 한줄 한줄마다 감정을 진정성 있게 잘 담아낸다.” (‘크로스오버로서의 실력’, 오수향 심리소통전문가, 나무위키 2020년 9월 2일)

김호중의 자서전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성악하던 사람이 트로트라니, 주변의 반대가 없었느냐는 질문도 받는데, 그런 일 없었다. 내가 대중과 좀 더 호흡하고 싶다는 갈망을 갖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기 때문일 것이다.” (『트바로티 김호중』 2020년) 그는 ‘콘서트 가수’라는 표현을 썼다. 클래식이냐, 트로트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중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김호중 팬인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의 말이다. “자신 안에 외로움도 있고, 분노도 있고, 그 모든 것을 녹여줄 사랑도 있는 그를 성악 속에 가둘 수는 없다. 아마 트로트 속에도 갇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 노래하는 영혼일 것이다. 우리 곁에서 생을 노래하는 영혼, 그가 참 소중하다.”(일요신문 2020년 3월20일)

BTS와 김호중은 앞으로 어떻게 만나야할까. 트롯 열풍을 몰아온 주역 중의 한 사람인 김민배 TV조선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두 가지의 폭발을 경험 중이다. 밖에서는 BTS가 폭발하고, 안에서는 트로트가 폭발하고 있다. 이 둘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지금으로선 투 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다.…트로트를 외국인들이 이해하려면 단어 하나하나에 실린 오묘한 뉘앙스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열화와 같은 해외동포들의 트로트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그 외연을 비(非)한국인 국가로 차츰 넓혀가야 한다.”

BTS에 대해선 나이든 세대가 잘 모르고, 트로트에 대해선 젊은 세대가 잘 모른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BTS에 몇 마디 상찬의 말을 보태려했으나 포기했다. 상찬은 이미 넘치고 넘쳐서 낄 자리도 없었을뿐더러, 그럴만한 이해도 지식도 갖지 못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백컨대 ‘아재’ 세대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BTS의 팬덤 아미(ARMY)가 ‘사랑스러운 청춘의 대표 사회자’(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의 약자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디지털 시대의 비틀즈' BTS

BTS의 성공요인으로 흔히 SNS 활용을 꼽는다. 자신들의 소소한 일상까지도 SNS를 통해 팬들과 공유함으로써 강력한 팬덤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게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BTS현상을 쭉 지켜봐온 서병기(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는 SNS보다는 메시지와 콘텐츠의 유기적 결합에 비중을 더 두었다.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시선, 음악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 팬을 대하는 진실성이 담긴 메시지,…그리고 음악과 가사, 일상, 팬덤, 소속사와의 관계 등 가수를 구성하는 콘텐츠들이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게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서병기 『BTS-방탄소년단과 K팝』 2019년)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의 영화철학을 통해서 BTS현상을 보는 이지영 교수(세종대)는 “음악적 탁월성과 진정성, 그리고 방향”을 꼽았다. 어떤 방향인가. “방탄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억압, 불평등, 편견 등의 문제를 자기세대의 눈으로 읽어내고…음악으로 표현하면서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바꾸자고 외쳤다. 방탄의 메시지는…세계 청년들의 공감을 얻었다.” 방탄이 희구하는 사회변화의 방향이 보편성을 가졌다는 얘기다.(이지영 『BTS 예술혁명』 2018년) 이 교수는 BTS의 창조물들을 ‘네트워크-이미지’라는 새 범주로 분류하고, BTS에 의한 예술형식의 변화가 사회변화를 어떻게 추동하느냐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비틀스의 음악이 1960년대 철의 장막 안으로 흘러들어가 소련체제 종식에 기여했다는 일각의 분석을 상기했다. 일부 평론가들이 BTS를 ‘디지털시대의 비틀스’로 칭하는 것도 그래서일까.

15년만에 복귀하는 나훈아

다시 트로트로 가자. BTS의 쾌거 직전, ‘트로트의 황제’ 나훈아가 15년 만에 복귀한다고 해서 또 난리가 났다. KBS 2TV의 한가위 대축제 ‘대한민국 어게인’에 출연해, 자신이 엄선한 28곡을 부른다고 했다. 인터넷에선 벌써 ‘부모님을 위한 최고의 추석선물, 티켓(온라인) 구하는 법’이 나돌고 있다. ‘트로트 공연=효도선물’이란 등식은 조금 낡은 감이 있지만 어쨌든 이번 추석에 꼰대와 아재들은 트로트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됐다(안타깝게도 김호중은 10일 입대한다).

나훈아는 컴백에 맞춰 새 앨범도 발표했다. 그중 한곡인 ‘테스형!’은 벌써 화제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먼저 가본 저세상은 어떤가요 테스형/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트로트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형 말대로 내 자신을 알려고 노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는데도 달라진 건 없더라.’라는 자탄과 푸념의 노래다. BTS는 청춘의 아픔을, 나훈아는 꼰대들의 회한(悔恨)을 노래했다고나 할까. 웃다가 공연히 서글퍼진다. 슬픈 해학이다.

나훈아는 2002년 1월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엔 남성 보컬그룹 GOD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노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단 이것도 한 유(類)의 노래입니다. 이걸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유행가(流行歌)가 뭡니까. 흘러(流) 가는(行) 노래(歌)입니다. 흘러가는 노래 중에 이런 노래도 있는 것입니다.” 그는 랩에 대해서도 “그걸 한국문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후배들이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그 젊은이들도 나이 들게 되면 다시 내 노래, 곧 뽕짝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것이 “뽕짝의 힘”이라고 했다.

20여년 전 나훈아의 예측이 맞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트로트는 폭발 중이다. BTS도 폭발 중이다. 이 두 에너지가 한국가요, 한국문화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고 가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의 3대혁명을 거의 동시에, 그것도 반세기 만에 이뤄내 선진국대열에 진입한 한국은 이제 네 번째, 문화혁명을 통해 세계 선도국(leading country)으로 도약 중이다. 쫄 것 없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했다.
 

[BTS 타임즈 콜렉터 에디션]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leejaeho64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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