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최진석은 왜 하필 '돈키호테'를 골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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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늘 인턴
입력 2020-07-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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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서 첫 북토크…개그맨 독서광 고명환과 함께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 함께하는 '책읽고 건너가기' 북토크]

영어 표현 중에 ‘킥소틱(quixotic)’이란 말이 있다. 돈키호테 같다는 뜻이다. (Don) Quixote라는 이름 뒷부분에다 형용어미 ic를 붙인 것이다. '돈키호테 같다'는 말은 우리도 자주 쓴다.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만 사로잡혀 마구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그런 형용사를 흔히 붙여준다. 소설 속 인물이 책을 찢고 나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참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하의 세르반테스야 흐뭇해할 만하다.

그런데 돈키호테가 맞고 세상이 틀렸다면? 제정신을 가진 정신이, 비정상적인 세상을 향해 돈키호테 짓을 한다면? 그래서 '돈키호테 같다'는 말을 섣불리 비웃는 말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의식이, 한국의 한 철학자의 생각에서 튀어나와 하나의 일을 벌이고 있다.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의 철학자 최진석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그가 벌이는 ‘최진석과 책 읽고 건너가기 - 한 달에 한 권 책읽기’ 운동이 무엇보다 ‘킥소틱’한데, 그가 맨 처음 고른 책(7월의 책)이 <돈키호테>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오는 30일 오후 7시, 서울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북토크가 열린다. 책읽기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최진석 교수와 개그맨 고명환씨가 대화 형식의 <돈키호테>를 풀어간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였던 최 교수는 2019년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을 꾸려 이사장을 지내며, 고향 전남 함평에 강의실 '호접몽가(蝴蝶夢家)'를 두고 있다. 개그맨이자 연기자인 고명환씨는 1000권의 책을 읽은 후 사업에 성공하고,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두 사람 다 ‘독서광’으로, 서로 만나는 순간 이 일을 벌이자는 데 번개교감을 했다고 한다.
 

['책 읽고 건너가기'에 참여한 광주 학생들이 돈키호테를 그림으로 담았다.]

['책 읽고 건너가기'에 참여한 광주 학생들이 돈키호테를 그림으로 담았다.]



‘새말새몸짓’ 홈페이지 참여 게시판은 돈키호테에 대한 의견들로 뜨겁다. 유경철씨는 화엄경을 인용하며 돈키호테를 “자신만의 경전을 쓰기 위해 쉰 살의 나이에 출가를 결심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40년 만에 <돈키호테>를 다시 읽었다는 노귀임씨는 “10대 때 돈키호테를 이상적이고 몽상적인 모험가로만 생각했는데, 2020년에는 그의 매력과 용기에 새롭게 빠져든다”며 달라진 소감을 밝혔다. 정병춘씨도 50년 만에 다시 읽었다면서 “꿈 많던 중학교 시절에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돌출행위를 절대 본받지 말자고 각오했는데 70세가 넘어 다시 읽으니, 30년 투병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7남매의 장남으로 꿈을 버리고 너무 착실히 살았다는 게 흠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경미씨는 “두려움을 용기로/ 무모함을 도전으로/ 패배를 불굴의 의지로/ 상처를 이기고 희망으로/ 끊임없이 찾아 떠났던/ 불사조 닮은 정의의 기사 돈키호테”라며 시를 통해 생각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시은 학생은 그림과 자작시로 독후 소감을 표현했다. 광주 학생들의 다양한 그림 작품도 올라왔다.

최진석 교수는 왜 첫 책으로 <돈키호테>를 선택했을까. ‘책 읽고 건너가기’는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질문의 시작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최 교수는 “이 세상의 주인은 대답하는 자가 아니라 질문하는 자”라며 “대답은 멈추는 일이고 질문은 건너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기’ 위해 지식과 내공이 필요하며, 이를 키우기 위해 ‘책읽기’만 한 것이 없다고 한다. 책읽기를, 보다 나은 삶으로 데려다줄 '마법 양탄자'에 비유한다. 첫 양탄자로 <돈키호테>를 고른 까닭은 “인간의 근본정신을 자극하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짜 인간은 한 곳에 멈춰 머무르지 않고 아무 소득 없어 보여도 어디론가 떠나 건너간다. 건너갈 곳은 익숙한 문법으로는 이해되지 않아 무섭고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무모한 도전과 모험이 등장한다. 대답하는 습관을 벗고, 질문하기 시작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고, 닿지 않는 별을 잡으려 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진짜 인간이다. 진짜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다.” 최 교수의 말이다.

과대망상에 빠진 신사와 그가 사랑하는 말 로시난테 그리고 수지타산에 빠른 소작인의 무사(武士)수업을 위한 모험 <돈키호테>. ‘인간의 서’라 불리는 <돈키호테>에서 이상에 빠진 주인공은 기상천외한 소동을 일삼는다. 그는 우스꽝스럽지만 매력적이고, 무모하지만 도전적인 모습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완성된 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세계 명작으로 꼽힌다. 2002년 세계 유명 작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노벨연구소의 ‘최고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작품’ 설문에서 ‘최고’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7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펼쳐들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러니까 ‘도전’이다.

세르반테스는 세상에게서, 혹은 운명에게서 지독한 비웃음과 냉대를 받고 살았다. 24세 때 전쟁에 참가한 그는 왼팔을 잃는다. 그 뒤 불구자의 몸으로 말레이의 포로가 되어 5년간 수용소 생활을 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네 번 탈주를 시도했다. 번번이 실패했다. 보석금을 쓰고서 겨우 풀려난다. 그 뒤 작가가 되지만 입에 풀칠을 할 형편도 못 되었다. 진짜 호구지책으로 세금징수원이 되었다가 영수증을 잘못 발행했다는 죄목으로 이번엔 감옥에 들어간다. 감옥에서 그는 끝없이 소설을 쓴다. <돈키호테>는 거기서 나온 작품이다.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과의 불화와 이견 그리고 불운과의 싸움에서는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앞지를지도 모른다. 돈키호테 정신은, 세상에 주눅들고 타협하여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불화에 직면하여 더 큰 정신으로 자가발전해 내는 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세르반테스의 영혼이기도 하다. 최 교수가 이 시대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무모하리만큼 도전적인 돈키호테’의 부활이 아닐까.

‘철학자 최진석과 책읽고 건너가기’는 굳게 닫혀 있던 책을 열어볼 좋은 기회다. <돈키호테>를 시작으로 매월 첫째날 ‘새말새몸짓’ 홈페이지에서 이달의 책을 알 수 있다. 참여자는 각자의 관점에서 책을 해석하고 ‘새말새몸짓’ 홈페이지 참여 게시판을 통해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다. 매달 마지막 주 북토크가 열리고, 이달의 책에 대한 최 교수의 글은 다음 달 첫째 주 지역 작가의 그림과 함께 광주일보 지면에 게재된다. 프로젝트와 관련한 모든 내용은 ‘새말새몸짓’ 홈페이지, 페이스북, 유튜브 채널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아주경제 논설실 박하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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