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어젠다]<2> 적(敵)과 협력해 21세기 선도국가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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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
입력 2020-07-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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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선도국가로 뛰어오르자 ​- 적과 협력하는 기술..변화 필요한 상황부터 합의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CNN,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MSNBC, NBC뉴스 같은 언론을 서슴없이 ‘국민의 적(enemy)' 또는 ‘가짜 뉴스’라고 공격한다. 그는 2018년 8월 5일 "국민을 분열시키고 불신을 조장하는 가짜 뉴스들이 내가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미워한다"고 트윗을 날렸다. 어차피 이들 미디어의 시청자들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을 테니 통째로 적으로 분류해 버리는 전술이다.
애덤 카헤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부가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고 협상을 벌이면서 남아공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만든 몽플레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갈등해결 전문가다. 카헤인은 트럼프처럼 세상을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가르는 정치적 전술과 태도를 ‘적화 증후군(enemyfying syndrome)'이라고 명명했다. 그가 저서 <적과의 협력>(collaborating with the enemy·번역서명 ‘협력의 역설’)에서 "적화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미디어에서도 두드러진다. 타인을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파멸시켜야 할 적으로 보는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적화가 넘쳐났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적화 전략을 동원해 2016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최근 지지율이 조 바이든에게 두 자릿수 이상 밀리는 것을 보면 유통기한이 다한 것 같다. 트럼프에게 가짜뉴스라고 조롱당하는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취임 후 3년 6개월 동안 하루 16차례꼴로 도합 2만55회의 거짓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발언이 팩트(fact)여서가 아니라 그들의 정서나 신념에 부합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메이저 미디어의 영향력이 감퇴하고 SNS에서 뉴스를 읽는 독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탈(脫)진실(post-truth)의 확증편향(確證偏向)이 두드러진다.
한국에서는 정권이 바뀌고 공영방송의 경영진이 진보로 넘어가면서 보수적인 독자들은 뉴스의 갈증을 유튜브에서 찾고 있다. 작년 8월 발표한 연세대 정보대학원 이상우 교수의 정치성향별 미디어 신뢰도에 따르면 보수집단이 가장 신뢰하는 미디어는 유튜브 개인뉴스 채널이었다.
총선 이후 강용석의 가로세로연구소 같은 유튜브 채널은 사전투표 부정설로 클릭 수를 올렸다. 당일 투표에서는 승리한 통합당 후보들이 이틀간 실시된 사전투표의 부정선거로 인해 패배했다는 추정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26.7%의 투표율을 기록한 사전투표가 전체의 4분의3에 해당하는 당일투표의 결과를 뒤집는 것은 분명히 이변이지만 선거 때마다 투표함 하나로 개표 결과가 뒤집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금이 자유당 때도 아닌데 치열하게 접전하는 선거구에서 야당 참관인이 지켜보고 봉인하는 사전 투표함을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명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사전조작 부정선거’ 프레임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할 수 없다.
진보 쪽에서 가장 건강하지 못한 흐름은 극단적인 ‘빠’ 현상이다. 진보 계열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6월 말 ‘한국정치연구’에 기고한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라는 논문에서 특정 정치인을 열정적으로 따르는 ‘빠’ 현상을 개탄했다. ‘빠’ 현상은 강고한 결속력과 공격성을 핵심으로 한 정치 운동이라며 “가상으로 조직된 다수가 인터넷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여론을 주도하고, 이견(異見)이나 비판을 공격하면서 사실상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이들이 정당 지도자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실제 공천과 선거과정에서 집단을 동원해 영향력을 발휘한다”며 민주정치에 미치는 부정적 역할을 비판했다.
빠들의 팬덤 현상이 지나쳐 자신들이 좋아하는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공격한 사람에 대해서는 온갖 것을 들춰내 인터넷에 까발린다. 사실상 언론자유를 제약한다는 말은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독재정권 시대에 김수환 추기경처럼 모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는 국가 원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수나 진보의 원로들이라도 나서 극단적인 세력을 나무라야 한다. 최 교수의 개탄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극보수와 극진보가 활개치는 현실에서 균형 잡힌 중도는 정치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가 비슷한 길을 가는 듯하다가 정치 미숙으로 실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 산업화 세력의 보수와 민주화 세력의 진보 간에 이전투구가 연중무휴로 벌어진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때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린 촛불과 태극기 집회는 이념대결의 진지전이었다. 최근에는 친여 언론들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처가 쪽 의혹을 들춰내기에 바쁘고, 보수 언론은 이를 공작성 보도라고 몰고가는 보도가 한창이다. 수사를 해보기 전에는 뭐가 진실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수사와 재판이 끝나더라도 편이 갈려서 깨끗한 승복이 없다. 정치적 색채를 띤 모든 사건이 다 이 모양이다.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언론의 양극화를 부르고 사회적 양극화로 확산된다. 신문사의 논조도 보수의 3대지와 진보의 2대지로 확연히 갈라진다. 정상적인 게이트 키퍼가 없는 인터넷 언론은 한쪽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전위대 역할을 한다.
보수와 진보가 일괄적으로 모든 문제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복지에서는 진보이고, 경제와 기업 분야에서는 자유시장 경제 중시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외교·안보·국방의 경우 국익 최우선의 현실주의가 대안일 수도 있다. 그 시점에서 어떤 가치가 더 현실타당성이 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보수와 진보 이념에 교조적으로 매달리면서 상대방을 적화할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교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적화는 복잡하고 미묘한 현실을 흑백으로 단순화해 에너지를 모아준다. 그렇지만 갈등을 증폭하고 문제해결과 창의성의 공간을 좁히는 치명적 결함을 지녔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는 민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적을 반역적인 자본주위자로 악마화했다. 상황을 바꿀 수도 없고 더 견디고 싶지 않을 때 사람들은 ‘퇴장’을 선택한다. 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에서 100만명이 체념하고 이민을 떠났다. 그러나 퇴장은 우리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적과의 협력>의 부제(副題)는 ‘생각이 다르고, 좋아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과 어떻게 일을 같이 할 수 있는가’이다.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이 흑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민권법(Civil Rights Act)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원들을 상대로 집요한 설득작업을 벌이는 과정이 이 책에 소개돼 있다. 존슨은 의원 중에 누가 술을 많이 마시는지, 어떤 의원을 찾으려면 언제는 집으로 연락하고 언제는 정부(情婦)의 집으로 연락해야 하는지, 어떤 의원이 대기업에 약하고, 어떤 의원이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했다고 한다.
300석 중에 176석을 확보한 거대여당은 린든 존슨 대통령 같은 수고가 필요 없을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좋아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집단과 머리를 맞대지 않고서도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의안이든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과 협의하지 않고도 국가와 시대가 필요로 하는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벼랑으로 밀어붙일 때 종국에는 힘과 힘이 부딪치는 역작용을 부를 수밖에 없다. 여권이 반대편을 몰아붙이고 대화와 타협의 기회를 차단해 버리면 국민에게 오만하게 비쳐지면서 중도층부터 이탈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금 그런 위기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카헤인은 뿌리 깊은 불신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처음부터 합의에 도달하려고 하지 말고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만 합의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고 말한다. 타협과 양보가 중요하더라도 모든 것을 타협과 양보에 맡겨서는 안 된다. 사실(fact)에 대한 원칙과 존중은 모든 타협의 전제가 돼야 할 것이다. 보수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세력이나 극단적인 유튜버에 쏠리는 집단의 눈치를 보아서는 미래를 찾을 수 없다.
세계대전의 결과로 식민지에서 독립해 세계가 찬탄을 보낼 정도로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이제는 산업화-민주화의 프레임을 뛰어넘는 어젠다를 수립하고 국력을 결집해 21세기의 선도국가로 나가야 한다.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인식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양극화의 진지전을 멈추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마주 앉아 대화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볼 때다.

황호택[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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