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백선엽 장군 '한국군 최초 4성'...통합당 "서울현충원 모셔야"

김한상 기자입력 : 2020-07-13 08:20
미레통합당, "서울현충원에 그를 누이지 못하는 것은 시대의 오욕" 주한미군 사령관, 백장군 별세에 "진심으로 그러워질 영웅"
6·25 한국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 등의 공로를 인정받은 백선엽 장군이 10일 오후 11시 4분께 향년 100세 나이에 별세했다.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에서 한 어린이 추모객이 헌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백 장군은 1920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났다.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에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국군에 입대했는데 국군 제5연대장과 육군본부 정보국장을 거쳐 6·25 전쟁 때 1사단장을 지냈다. 1960년 예편 전까지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합참의장 등을 지냈다.

1960년 5월 대장 전역 뒤 주중 한국대사와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교통부 장관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맡았다.

백 장관은 6·25전쟁 중 낙동강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낙동강 다부동 전투는 백 장군이 꼽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다. 1950년 여름 1사단장으로 당시 전투를 이끈 그는 당시 도망치는 장병들을 모아놓고 "내가 앞장서 싸우겠다. 만약 내가 후퇴하면 나를 먼저 쏘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두 달 가까이 부하 장병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고, 전투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1951년에는 동부 전선을 지키는 등 주요 전투를 지휘했다. 이를 바탕으로 백 장군은 1953년 1월 한국군 최초로 4성 장군에 올랐다. 당시 나이 33세.

백 장군 친일 논란은 최근에도 이어졌다. 그가 청년 시절 일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이력 때문이다. 그는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도 이름이 오른 바 있다.

현충원 안치 공방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5월 당시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일파 군인의 죄상은 전공만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는데, 이에 원희룡 제주지사는 "백 장군은 6·25의 이순신"이라며 반박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별세한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에 대해 “진심으로 그리워질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고 애도했다.

한편 해럴드경제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래통합당은 백선엽 장군의 국립 서울현충원 안장을 12일 재차 요구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정부가 백 장군을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영웅의 마지막 쉴 자리조차 정쟁으로 몰아내고 있다"고 비판하며 "12만 6·25 전우가 있는 서울현충원에 그를 누이지 못하는 것은 시대의 오욕"이라며 "백 장군의 영결식이 오는 15일로 예정돼 시간이 많지 않다. 그를 전우들 곁에 쉬게 해달라"며 정부의 판단을 촉구했다.
컴패션_미리메리크리스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