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25주기] 탐욕과 무지로 쌓은 죽음의 5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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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재 기자
입력 2020-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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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초4동 1685-3번지, 건물 붕괴, 안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25년 전 여름 초입의 어느 날 저녁. 사고 신고를 접수한 관할 소방대가 급히 현장으로 출동했다. 여느 때처럼 붐비던 한 백화점은 다가오는 여름 휴가철을 대비해 바캉스 용품을 사러 온 이들로 가득했다. 502명의 사망자, 937명의 부상자를 기록한 전대미문의 붕괴 사건. 오늘로부터 25년 전인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피크타임 영업 중이던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이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중간 부분이 푹 꺼져버린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사진=연합뉴스]


"왜 무너졌나?"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 하지만 예견된 사고이기도 했다. 붕괴의 원인은 표면적으론 '부실 공사'였으나, 그 내막엔 '소수의 탐욕'이 있었다. 뇌물로 이뤄낸 불법 용도 변경과 부실시공, 안전을 무시한 무리한 구조 변경으로 인해 사고 전날부터 천장이 내려앉고 바닥이 기울어지는 등 붕괴의 조짐이 보였지만, 경영진은 이를 알고도 영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각종 비리와 안전 불감증, 그리고 이익만 생각한 근시안적 판단이 결국 최악의 참사를 만들었다. 개점한지 약 6년을 갓 넘긴 백화점은 불과 5분 만에 지도에서 사라졌다.
 

[삼풍백화점은 당시 단일매장으로는 전국 2위를 자랑하는 거대한 복합 상업 시설이었다. (제공=KBS뉴스)]

"어떻게 지었길래?"

삼풍백화점의 규모는 대지면적 2만2700㎡, 연면적 7만3877㎡로, 당시 단일매장으로는 전국 2위를 자랑하는 큰 백화점이었다. 당시 ‘백화점 건물은 흰색’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외관을 분홍색으로 도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래 4층으로 설계한 건물이었지만 운영법인인 삼풍건설산업이 매장 규모를 늘리겠다며 그 위에 1개 층을 더 얹은 5층으로 불법 증축 시공을 강행한다. 삼풍백화점 시공을 맡았던 우성건설이 붕괴 위험성을 이유로 증축을 거부하자, 삼풍건설산업이 우성건설과의 계약을 중도 파기하고 직접 시공에 나선 것은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다. 절차상의 불법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도무지 안전에 대한 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설계였다. 삼풍건설산업은 건축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 지름을 25% 이상 줄이거나, 몇몇 기둥은 아예 없애버렸다고 한다.
 

1995년 6월 30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틀째 합동구조반이 대형 기중기를 동원, 잔해 철거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붕괴의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백화점 옥상에 위치해 있던 에어컨 냉각탑이었다. 삼풍백화점의 비상식적인 냉각탑 운용은 가뜩이나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에 훨씬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삼풍백화점 옥상에 있던 에어컨 냉각탑의 무게는 무려 36톤에 달했으며, 여기에 냉각수까지 채우면 무려 87톤에 달해 옥상이 견뎌낼 수 있는 하중의 4배를 훌쩍 넘기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개장 초기부터 미세한 진동과 물이 새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고 이후 전문가들은 “삼풍백화점이 5년 넘게 버틴 게 기적인 수준”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삼풍백화점은 무너졌고, 붕괴 사고로 종업원과 고객 502명이 사망, 6명이 실종, 937명이 부상을 당했다. 실종자 가족은 실종자의 인적사항을 적은 종이를 사고 현장 주변에 게시하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했다. 실제로 최명석씨, 유지환씨, 박승현씨는 각각 사고 발생 11일, 13일, 17일 만에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기적적으로 구조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고, 심지어 6명은 마지막까지 '실종' 상태로 남아 유족의 가슴에 묻혔다. 
 

삼풍백화점 신문 광고 [사진=광고정보센터)]
 

"막을 수 없는 사고였나"

붕괴로부터 약 3시간 전인 오후 3시에 구조기술사와 백화점 임원진이 모여 안전진단을 실시했다. 여기서 건물의 붕괴 조짐을 사전에 파악했다. 이후 오후 4시에 이준 삼풍건설산업 회장의 주재로 긴급대책회의가 열렸다. 임원진들은 긴급보수, 고객 대피, 영업 중단을 거론했으나 이 회장은 오히려 경제적 손실을 들먹이며 노발대발했다. 결국 대책회의는 영업 중단 없이 일부 시설을 보수하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결론이 났고,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할 마지막 골든 타임은 그렇게 떠나버리고 말았다. 붕괴로부터 불과 2시간 전에 내려진 어리석은 결정만 아니었다면 건물과 기자재만 약간 손해를 보고 인명피해는 거의 없는 선에서 끝났을 것이다.

책임자는 어떤 벌을 받았나?

죄상과 책임 소재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처벌에는 꼬박 1년이 넘게 걸렸다. 지리한 법정 공방 끝에 1996년 8월 23일, 대법원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삼풍백화점 회장 이준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징역 7년 6개월, 삼풍백화점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설계 변경 등을 승인해 준 전 공무원은 징역 10월에 추징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수백명의 목숨과 감히 저울질을 해본다면 실로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 아닐 수 없었다. 7년을 복역한 이 회장은 감옥에서 얻은 신장병이 악화되어 출소하자마자 병원에 입원했고, 불과 6개월 만에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재산은 진작에 압류당했고 더이상 내세울 명예조차 없던 그의 빈소에는 가족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1995년 7월 31일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에서 삼풍의 이준 회장(왼쪽)과 이학수 ‘한 건축구조연구소' 대표가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건 뒷이야기

△사고 이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이준 회장은 "건물이 무너진게 손님들에게도 피해지만, 내 손해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사진을 찍는 기자들에게 도리어 역정을 냈다고도 한다. 아들인 이한상 사장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두고 '영적 전쟁'이라는 발언을 하며 공분을 사기도 했다. "영적 전쟁에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순종'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삼풍백화점이 사라진 자리엔 주상복합 '아크로비스타'가 들어섰다. [사진=네이버 거리뷰]


△삼풍백화점이 사라진 자리에는 현재 고급 주상복합 ‘아크로비스타’가 세워져 있다. 서울시가 약 1년 동안 붕괴된 건물을 정리하고 1996년 부지를 공개입찰했고, 대상그룹이 낙찰받았다. 하지만 대상그룹은 이 부지를 5년여간 방치했다. 당시 ‘삼풍백화점 액운이 가시지 않은 것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 했으나, 실상은 대상그룹이 IMF 여파로 부지 낙찰금 약 2052억원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대상그룹은 1999년 8월 대금을 완납하고 2001년 ‘아크로비스타’ 착공에 들어갔다. 시공은 대림산업이 맡았다.
 

서울 양재동 삼풍참사위령탑. [사진=연합뉴스]
 

△사고 이후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졌다. 하지만 장소는 서초동 삼풍백화점 부지가 아닌 '양재시민의 숲'이다. 본래 사고가 일어났던 위치에 세우려 했으나, 참사가 일어난 장소임이 알려지면 땅값이 떨어진다며 한 지방자치단체가 반발해 결국 무산되었다고 한다. 추모의 공간으로 쓰기엔 너무나 금쪽 같은 땅이었던걸까.

△1999년 10월에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40대 남성이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이 위령비 옆에 있는 나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생존자 중 한명인 최명석씨는 군 입대를 앞두고 삼풍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벌이를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사고 이후 건강을 되찾은 최씨는 훗날 GS건설(당시 LG건설)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건축 설비를 전공한 그는 건설현장에 투입돼 열정적으로 일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건망증이 심해지는 등 후유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붕괴 현장에 매몰된 지 230시간 만에 구조된 최명석씨는 이후 건설 회사에 취직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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