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 칼럼] '잃어버린 10년 앞두고 흘러간 노래나 부를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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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입력 2020-06-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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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교수]


요즘 신문과 방송 등 언론 보도를 보면 정치 또는 사회 기사가 앞단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정의기억연대 의혹과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 파묘 등 과거사 재조사 논란이 도배를 하는 식이다.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전시에 준하는 재정을 편성해서라도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면서 한국판 뉴딜과 역대 최대규모의 추경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쪽이라고 할 수 있는 여당은 새로 열리는 국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자리 차지하기에 바쁜 것 같다. 대통령이 하겠다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우리는 우리대로 챙겨야 할 것 챙기겠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대패한 야당은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조차 찾을 수 없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국회와 정치권, 기업과 온 국민이 힘을 모아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말까한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가 맞는가 싶을 정도이다.

미국의 야당인 민주당은 지난 4월 추가 현금 지급과 주정부 재정 지원을 골자로 하는 무려 3조 달러(약 36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 법안을 발의했다. 선수를 빼앗겨서인지 트럼프 대통령과 여당인 공화당은 앞서 집행한 재정(3조 달러)의 효과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면서 돈을 더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행정부와 여야 어느 쪽이든 코로나19사태로 망가지고 있는 경제를 최대한 신속하게 방어하고 회복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여당인 기민∙기사당 연합이 ‘독일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제안서를 내놓았다. 코로나19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 방어와 빠른 회복을 위해 최저임금을 동결 또는 인하하고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1일 최대 근로시간 제한 폐지 등 코로나19로 매출이 급락하고 있는 기업들의 인건비와 세금 부담은 덜어주면서 근로시간은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재정을 어떻게 풀 것인가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니 맡겨 놓고 우리는 우리대로 미시적으로 손을 봐야 할 부분은 없는가를 찾아낸 것이다. 기업들은 반색을 할지 모르지만 근로자와 노동조합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들이다. 표를 얻는 게 아니라 깎아먹을 정책을 독일 여당에서 내놓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정부나 여당으로부터 말이다.

잠시 2000년대 중후반의 세계 경제로 돌아가 보자. 2005년 유튜브가 창업하자 그 가치를 알아본 구글이 2006년 당시 16억5000만 달러(약 2조원)에 인수했다. 지금 유튜브의 가치는 인수금액의 100배에 달하는 200조원이 넘는다. 2007년에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고, 2008년에는 테슬라가 로드스터라는 최초의 전기차 시판에 나섰다. 2009년에는 구글이 자율주행차 개발을 선언했고 2010년에는 차량공유회사 우버가 영업을 개시했다. 이어서 2010년대 들어서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3D프린팅, 웨어러블 등 4차 산업혁명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과 이를 실용화한 제품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같은 시기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신기술의 연구개발(R&D)에는 관심이 없고 2008년부터 전국이 4대강 사업이라는 땅파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연히 같은 ‘4’자로 시작하지만 국가 경제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다를 수밖에 없는 사업이었다. 수질 개선과 가뭄∙홍수 예방 등을 내걸고 22조2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됐다. 땅을 팔 때는 그나마 국내총생산(GDP)을 증가시켰겠지만 땅을 파는 그때뿐이었다. 만약 22조원을 신기술 개발 등 4차 산업혁명에 쏟았더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더 가관인 것은 4대강 사업 이후 감사원 감사만 4번을 했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1년부터 현 정부가 들어선 후인 2018년까지 무려 4번에 걸친 감사 끝에 국민들이 받아든 결과는 원위치였다. 팠던 땅을 도로 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일반 병사들이 딴 생각하지 못하도록 한다면서 여기저기 땅을 팠다가 덮게 하는 것도 비생산적∙비상식적이지만 4대강 사업 또한 시작부터 감사까지 국가 경제의 미래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후에도 우리 정치와 사회는 대통령 탄핵, 적폐청산, 한∙일 무역분쟁, 과거사 재조사 등으로 국력을 낭비해왔다. 한마디로 ‘과거지향적(backward looking)’ 시대를 자그마치 10년 이상 계속하고 있다. 지난 10여년이 ‘잃어버린 10년’이었다면 지금은 ‘잃어버릴 10년’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이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은 4차 산업혁명이 미래의 먹거리라면서 민∙관∙연이 힘을 합하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관련 규제의 개선∙완화를 통해 돈이 자국의 신기술로 흘러가도록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미∙중 갈등도 결국 이 과정에서 발생한 기술패권, 즉 ‘미래지향적(forward looking)’ 국가간의 선두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의 와중에 유인우주선을, 그것도 민간의 기술로 쏘아 올렸다고 박수를 치면서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우주관련 기술이야말로 신기술의 총합체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미래지향적 나라의 미래가 밝을까, 과거지향적 나라의 미래가 밝을까. 물어보나마나 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하나. 미래지향만이 우리 경제의 미래와 후세대를 위하는 길이다. 이제 미련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어두운 과거를 접고 밝은 미래를 향해 가자. 과거지향적이던 2010년대를 털어버리고 미래지향적 2020년대를 만들자. 보다 자랑스러운 보다 밝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자.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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