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공범인 텔레그램 규제 못하는 'n번방 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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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용 기자
입력 2020-05-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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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성 착취물 제작·유통)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추진 중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른바 n번방 방지법)'을 두고 졸속 입법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회가 텔레그램을 규제하기 위해 n번방 방지법에 추가했다는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와 '역외적용 규정'으론 텔레그램을 실질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없다. 국내에 사업법인이 없는 텔레그램에 실제로 행정·사법적 제약을 가할 집행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n번방 방지법에 효용성을 묻는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질문에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해외 사업자를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현재로선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고,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역외적용 규정과 (정부의) 집행력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당장 텔레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음을 정부가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정부에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뺏긴 인터넷 기업가 파벨 두로프가 개인 재산으로 운영 중인 암호화 메신저다. 타인(텔레그램 포함)이 이용자의 대화를 들여다볼 수 없고, 외부 광고 기업에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전 세계 3억명이 넘는 이용자를 확보했다.

텔레그램은 특정 국가에 사업법인을 두고 영업을 하는 일반 인터넷 사업자와 달리 사업 법인의 위치와 운영 방식 등이 베일에 싸여 있다. 서비스 관련 데이터는 전 세계 여러 곳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나눠서 보관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미국 정부의 협력 요청을 일관되게 거부하는 이런 비밀스러운 기업에 한국 정부가 효과적으로 규제를 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유일하게 해외 인터넷 사업자를 효과적으로 규제할 방안인 '국내 서버 설치 의무화법(정보통신망법 일부 개정안)'은 한·미 FTA 위반 소지가 있어 20대 국회가 끝나면 폐기된다.

결국 사고는 해외 인터넷 사업자인 텔레그램이 치고 정작 n번방 방지법에 따른 짐은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사업자가 짊어지게 생겼다.

n번방 방지법에는 인터넷 사업자가 성 착취물·불법 촬영물(몰카)을 포함한 성범죄물 유통방지를 위해 관련 책임자를 두고, 디지털 성범죄 투명성 보고서를 방통위에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그나마 이용자들에게 다행인 점은 '성범죄물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가 통신 감청 논란으로 인해 삭제된 것이다.

이런 과도한 규제가 없던 과거에도 국내 인터넷 사업자는 정부의 요청에 재빨리 대응했다. 성범죄물 유통 흔적이 감지되면 그 누구보다 빨리 정부에 신고하는 곳이 국내 인터넷 사업자다. 인터넷기업협회는 n번방 방지 법안을 두고 "당초 목적과 달리 국내 사업자 규제라는 부메랑만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공은 다음 주 열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로 넘어갔다. 둘을 통과하면 n번방 방지법은 국내 인터넷 기업을 얽매는 새로운 족쇄로 작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20대 국회의 현명한 판단을 요청한다.
 

[사진=강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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