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수 靑비서실장’ 김정렴 별세…“차지철·김재규도 함부로 못한 실세” 일화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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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기자
입력 2020-04-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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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무·상공장관 거쳐 9년 3개월간 재임…박정희 정부 고도성장 기틀 마련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이 25일 향년 9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재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지낸 뒤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역대 최장수인 ‘9년 3개월’ 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다. 재임기간 동안 박 전 대통령을 도와 고도성장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육성 등 산업 고도화 정책을 주도하고 산림녹화, 새마을운동, 고속도로 건설, 의료보장제도 도입 등에도 관여했다.

1924년생인 고인은 1944년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강제징집돼 일본군에 배속됐다가 히로시마에서 일제 패망을 맞았다. 당시 미군이 투하한 원자폭탄의 영향으로 후유증을 앓았다.

6·25 전쟁에 참전한 뒤 1952년 예편한 고인은 한국은행으로 돌아와 1차 화폐개혁에 참여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59년 재무부로 옮긴 뒤 정통 경제관료의 길을 걸었다.

그는 상공부 장관이던 1969년 이른바 ‘3선 개헌안’이 통과된 직후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후임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고인은 회고록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에서 청와대로 불려간 자신이 “각하, 저는 경제나 좀 알지 정치는 모릅니다. 비서실장만은 적임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러자박 전 대통령이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 아니오.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등이 따뜻해야 정치가 안정되고 국방도 튼튼히 할 수 있지 않소”라고 답했다고 적었다.

고인은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차지철(경호실장)과 김재규(정보부장)가 비서실장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2015년 8월 7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중앙일보 연재)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 회장은 78년 12월 당시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야당인 신민당보다 득표율이 1.1%포인트 낮게 나온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청와대를 나온 후 주일 대사에 임명됐다.

그가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물러나고 10개월 뒤인 79년 10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 전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살해하는 10·26 사태가 일어났다.

고인이 비서실장직을 지켰더라면 이 같은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후일담이 박정희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유족은 희경·두경(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승경(전 새마을금고연합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준경(전 한국개발원 원장)씨와 사위 김중웅(전 현대증권 회장, 현대그룹 연구원 회장)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은 28일 오전이다.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사진=연합뉴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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