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둘러싼 만리장성-운길산 예봉산 축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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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
입력 2020-04-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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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운길산 예봉산 축령산 · 황호택(서울시립대) 이광표(서원대) 교수 공동집필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팔당 인근엔 듬직한 능선이 만리장성처럼 이어진다. 북서쪽으로 뻗은 예봉산의 능선. 팔당과 한강을 굽어보는 예봉산(禮峯山)은 운길산(雲吉山)으로 이어지고 그 운길산은 다시 북한강을 내려다 본다. 남양주시 와부읍과 조안면에 걸쳐 있는 예봉산과 운길산. 그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올라서면 한강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품에 들어온다.
예봉산은 예를 갖추는 산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영서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사람들은 삼각산(북한산)이 보이는 팔당에 멈춰 서서 임금에 대한 예를 갖췄다고 한다. 그래서 예봉이란 이름이 붙었다. 예봉산은 산세가 험하면서도 풍광이 빼어나다보니 용의 전설도 전해온다. 어느 용이 승천(昇天)하려 했으나 끝내 용이 되지 못하고 한강으로 떨어져 이무기가 되어 버렸다는 전설. 그 용을 위무하기 위해 조선시대부터 팔당 사람들은 예봉산에 당(堂)을 지어 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내려오는 풍습인지 지금도 예봉산 초입 팔당2리 주민들은 예봉산 산신각(山神閣)에서 매년 두 차례 산신제를 올린다.

  예봉산의 억새밭. 멀리 하남의 검단산이 보인다. [사진=경기도청]


경의중앙선 복선화로 등산객 부쩍 늘어

최근 예봉산과 운길산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경의중앙선 전철이 복선화하면서 서울에서 팔당역과 운길산역으로 접근이 한결 편리해지고 예봉산~운길산 종주를 하는 등산객들이 부쩍 늘었다. 팔당역~예봉산 정상~철문봉~적갑산 정상~고개사거리~운길산 정상~수종사~운길산역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가장 인기다. 대략 12㎞에 7시간 남짓 걸린다. 팔당역에서 예봉산으로 오르는 길이나, 운길산역에서 운길산으로 오르는 길 모두 매력적이다.
팔당역에서 예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 시종 가파르고 중간 중간 바위가 도사리고 있다. 초보자에게는 힘들지만 마니아들에게는 전체적으로 적당한 코스라는 평을 받는다. 중턱쯤부터 팔당 쪽 한강과 팔당대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끔 흑염소 몇 마리가 능선을 오르내린다. 주민이 방목하는 염소일 텐데, 산을 찾은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있다. 
예봉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운길산과 적갑산이 눈에 들어온다. 예봉산 정상에는 2019년 강우레이더관측소를 설치했다. 수도 서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강 유역의 강우량을 좀더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예봉산 정상에 2019년 설치한 강우레이더 관측소. 수도 서울로 흘러들어가는 한강의 강우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진=이광표]


정약전 약종 약용 형제 학문 논하던 철문봉

예봉산 정상에서 운길산 정상으로 가려면 철문봉과 적갑산 정상, 고개 사거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다소 힘들지만 생동감과 변화가 있는 길이다. 철문봉엔 흥미로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약전 약종 약용 형제가 조안면 능내리 생가 여유당(與猶堂)에서 예봉산 능선을 따라 철문봉까지 와서 학문과 세상을 논했다고 한다.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고 해서 철문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내용이다. 정약용 형제들이 여유당에서 철문봉까지 올랐다면, 여유당 뒤쪽 능선을 따라 지금의 예빈산을 넘어 율리봉과 예봉산 정상을 거쳐 철문봉에 이르렀을 것이다. 산꾼들은 그래서 이 능선을 ‘다산 능선’이라고 부른다.
철문봉 옆에는 억새밭이 있다. 비교적 험한 산세인데 억새밭은 지세가 매우 편안하다. 약간 분지처럼 낮아 바람마저 멈춰가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산을 찾은 이들이 이곳에서 많이 쉬어간다. 아예 누워서 잠을 자는 이도 종종 보인다. 정약용도 이곳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아 목민(牧民)과 경세(經世)를 생각했을 것이다. 철문봉 안내판엔 이 길을 ‘목민심도(牧民心道)’라 명명해 놓았다. 흥미롭고 적절한 조어(造語)다. 예봉산에서도 정약용을 만나다니, 남양주와 정약용은 동의어가 아닐 수 없다.
2019년엔 철문봉 인근 능선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이 있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60여 년 전 선배 전우들이 목숨을 걸고 오르내린 전투의 현장입니다-국방부, 수도기계화 보병사단”이라는 문구의 안내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정약용의 흔적부터 6·25 비극의 상흔까지, 예봉산에서 운길산 가는 길은 참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유해 발굴에 관한 내용의 안내판이라도 세워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운길산은 정상 봉우리에 구름이 걸려 멈춰 선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구름이 걸리는 곳 바로 아래 7분 능선쯤에 유명한 사찰 수종사(水鐘寺)가 걸쳐 있다. 

운길산 수종사로 오르는 돌계단.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연등을 달아놓았다. [사진=이광표]


운길산 정상에서 수종사로 내려가는 길, 먼발치로 수종사가 눈에 들어온다. 사찰 전각들의 지붕이 보이고 그 밑으로 멀리 북한강이 눈에 들어온다. 조감(鳥瞰) 혹은 부감(俯瞰)의 매력이 아닐까.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종사 해탈문으로 오르는 돌계단에 걸어놓은 부처님오신날 연등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운길산 구름을 걷고 새로운 세계가 우리를 맞이하는 것 같다.

하산 땐 세정사 계곡 따라 동네 정취 만끽

수종사에서 일주문을 빠져나가 하산하는 길은 좀 밋밋하다. 길을 모두 포장해놓았기 때문이다. 운길산에서 수종사로 내려가지 않고, 세정사 계곡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편안하면서도 나름대로의 깊은 매력이 있는 코스다. 하산길이 완만해지면서 전통적인 동네의 정취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마을에는 주필거미박물관이 있고 그 옆에 박물관이 운영하는 생태수목원이 있다. 조금 더 가면 동국대 연습림 800만평이 펼쳐진다. 고즈넉하고 넉넉한 마을 풍경에 산행의 피로가 풀린다. 흙먼지의 편안함에 익숙해질 무렵 운길산역이 나타난다. 이제 다시 분주해진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역에 드나드는 사람들, 관광객의 차량들.

예봉산 중턱에 방목하는 흑염소들. 먹이를 주는 등산객들의 친구가 되었다. [사진=이광표]


남양주시 수동면 깊은 곳에 있는 축령산(祝靈山)도 매력적이다. 예봉산, 운길산에 비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우직한 매력이 있다. 수동면 읍내를 거치면서 조금씩 높은 산세 속으로 빠져 들다보면 몽골문화촌 옆쪽으로 축령산 초입이 나온다. 이곳에는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나무와 숲은 무성하고 길은 호젓하다. 야영을 할 수 있도록 데크를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야영 데크만 보아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축령산은 이성계가 멧돼지 잡았던 곳

축령산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일화가 전해온다. 이성계가 고려 말에 이곳으로 사냥을 나왔다. 그런데 그날따라 짐승을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이성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몰이꾼이 이렇게 말했다.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산신제를 지내야 합니다.” 이성계는 곧바로 산 정상에 올라 산신령에게 제를 지냈고 잠시 뒤 멧돼지 다섯 마리를 잡았다는 얘기다. 이때부터 이 산을 축령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축령산은 남양주와 이성계의 깊은 인연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축령산엔 암반이 많다. 제1주차장을 지나 자연휴양림을 옆에 끼고 축령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엔 바위가 꽤 많이 나타난다. 바위에 걸어놓은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구간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짧은 순간이지만, 암벽 등반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바위산에 걸맞게 정상으로 향하는 길엔 수리바위와 남이바위가 있다. 수리바위는 주변에 독수리가 많이 서식하는 데다 바위 모습이 독수리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남이바위는 조선시대 남이 장군이 이곳에 올라 무예를 연마하고 호연지기를 키웠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축령산과 맞닿아 있는 서리산의 철쭉 군락지. [축령산 관리사무소 제공]


축령산 정상에서 반대편 쪽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다소 완만하다. 사철 푸른 잣나무들이 무성하다. 한여름이 되면 잣나무 산책로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축령산을 내려오는 길 중간에 이르면 서리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은 완만하고, 정상에 오르면 철쭉 군락지가 강렬한 색깔로 펼쳐진다. 약 1만3000㎡에 철쭉들이 터널처럼 조성되어 있고, 매년 5월이 되면 서리산 정상은 철쭉으로 장관을 이룬다.
축령산은 중부권의 대표적 자연휴양림으로 인기가 높다. 자연휴양림 주변 평탄지에는 특이 식물들이 군락을 이룬다. 바람꽃류, 복수초, 미치광이풀, 는쟁이냉이가 모여 있고 좀더 올라가면 물푸레나무, 당단풍, 고로쇠, 까치박달 등 870여 종이 서식한다. 남양주와 중부권의 귀중한 식생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축령산 정상을 오르내리려면 자연휴양림을 거쳐야 하는데 휴양림 주변엔 돌탑들이 많다. 오랜 세월 이곳을 오갔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을 올려 쌓은 돌탑. 수리바위 능선으로 오르는 초입에는 나무 기둥을 수십개 박아 놓고 그 위로 작은 돌을 쌓아 올렸다. 축령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그토록 기원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모습이 마치 설치미술 같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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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지원-남양주시(시장 조광한)
협찬-MDM 그룹(회장 문주현)
도움말-남양주시립바박물관 김형섭 학예사


<참고문헌>
1.답사여행의 길잡이-경기북부와 북한강,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돌베개
2. 경기도 축령산과 서리산 일대의 식물상, 이유미 외,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제16권 제1호
3. 전철 타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수도권 비박 명산, 손수원, 월간 산 201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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