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주의 지구본色] 쿠바, 코로나19 치료제 희망 틔울까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문은주 기자
입력 2020-04-04 00:05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쿠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8.2명...'의료 강국' 평가

  • 코로나19 치료제로 거론되는 인터페론 백신 개발도

  • 美금수조치에 이중고..."일시적 경제제재 필요" 목소리

골목에는 쓰레기와 개의 시체가 뒹굴었다. 스콜이 지나간 거리마다 흙탕물이 넘쳐 흘렀다. 3년 전 마주친 쿠바 수도 아바나의 첫인상이다. 신경쓰는 사람도, 거리를 정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쓰레기 더미 앞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까사(일종의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사회주의잖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많이 일하든 적게 일하든 소득 수준이 비슷한데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였다.

오히려 엄격한 국가 통제가 익숙하다고 했다. 특히 의료 체계에 큰 만족감을 보였다. 허리케인 어마(IRMA)가 쿠바를 강타했을 당시 상황도 무용담처럼 펼쳐놓았다. 말라콘(방파제, 유명 관광지 중 하나)으로 나무가 날아들 정도였지만 의료 체계만큼은 제대로 돌았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쿠바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8.2명이다. 러시아와 미국이 각각 4명과 2.6명, 중국이 1.8명인 데 비하면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 2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에서 두 여성이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채 길을 걷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쿠바 보건의료 부문은 고도로 발전해왔다.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쿠바혁명 내내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던 덕이다. 1959년 쿠바혁명을 기점으로 쿠바 정부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의사를 확보할 수 있는 보편적 무상 의료 시스템을 개발해왔다. 쿠바 외무부는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보건의료는 쿠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우리는 모든 인류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한다"고 전했다. 의료에 대한 쿠바의 자부심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가운데 더 높아지는 모양새다.

◆역사 깊은 의료 외교...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앞당길까

쿠바는 혁명이 한창이던 1959년 이미 의료 단체를 구성했다. 쿠바 의료 국제주의(Cuban medical internationalism)가 그 주인공이다. 쿠바 의료진을 해외, 특히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 파견하고 현지 의대생과 환자를 초빙하는 것이 골자다. '의료 외교'의 시초인 셈이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의료 위기를 겪고 있는 전 세계에 의료진을 파견해 왔다. 아이티에서 콜레라가,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유행할 때도 쿠바 의사들이 활약했다. 현재 세계 59개국에 쿠바 의료 전문가 2만9000여 명이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정신은 반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피해가 커지자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의료진 52명을 이탈리아로 파견했다. 빈민국 중 하나인 쿠바가 선진국인 이탈리아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셈이다. 이탈리아 외에도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벨리즈, 자메이카 등 주변국에도 의료진을 보냈다. 다른 나라의 관심을 받는 건 의료진뿐만 아니다.

뉴스위크는 최근 보도를 통해 대표적인 쿠바산 약품인 '인터페론 알파-2B 재조합체(IFNrec)'를 소개했다. 인터페론은 세포에서 생성되고 방출되는 '신호' 단백질로, 감염에 반응하면서 주변 세포의 항바이러스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쿠바는 앞서 지난 1976년 전역에 번진 수막염 유행으로 홍역을 치렀다. 1981년에는 풍토병인 뎅기열이 골칫거리로 부상했다. 쿠바 과학자들은 약과 백신을 개발하고 예방 위주의 의료 시스템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선진 인터페론 백신이 탄생했다. 
 

쿠바 정부가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고 외국인의 출입을 제한하자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의 유명 관광장소인 말레콘이 텅 비어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진보 매거진 카운터펀치에 실린 최근 기고문에 따르면 뎅기열 확산이 잦아들자 인터페론 백신은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인간유두종바이러스, B형 간염, C형 간염 등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도 사용됐다. 인터페론 자체가 세포 내 바이러스 증식을 방해하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암종 치료에 활용되기도 했다. 쿠바 생명 공학 전문가인 루이스 에레라 마르티네스는 "환자의 병세가 악화될 수 있는 단계에서 (인터페론이) 추가적인 악화와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백신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데 잠재적인 '특효약'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국 글라스고 대학의 남미 전문가이자 '우리는 쿠바다!(We Are Cuba!)'의 저자인 헬렌 야페(Helen Yaffe) 교수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최소 15개국이 쿠바 측에 이 약물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치료제로 승인되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바이러스에 대해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쿠바 의료는 돈벌이 수단"...뒷짐 진 미국에 쓴소리도

현재 코로나19에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가 약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인터페론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바이오테크 산업의 발전을 촉진했던 쿠바가 주목 받는 이유다. 실제로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IFNrec를 포함한 30종의 약물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선정했다. WHO도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페론 베타와 다른 세 가지 약물을 연구할 예정이다. 걸림돌은 미국이다. 바이러스와 기타 질병 퇴치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잇따라 나오는데도 미국의 금수조치로 인해 전 세계 유통이 어려운 탓이다.
 

3월 31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동부 코히마르 지역에서 한 여성이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 대신 속옷을 들어 마스크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미국의 쿠바 옥죄기는 역사가 깊다. 쿠바 정부는 쿠바혁명 이후 북한과 수교를 맺는 등 강경한 행보를 보였다. 1959년 10월에는 쿠바 내 미국의 이권을 폐기했다. 1960년에는 미국계 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했다. 이듬해인 1961년에는 급기야 양국 간 국교가 단절됐다. 미국도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내렸다. 미국인의 대쿠바 투자 경로를 막았다. 사실상 모든 분야의 경제 교류가 차단됐다.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노력으로 주미쿠바대사관이 폐쇄된 지 54년만에 다시 문을 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양국 관계는 다시 냉랭해졌다.

쿠바가 코로나19 치료를 목적으로 의료진을 잇따라 외국에 파견하자 미국 ​국무부는 경고문을 발표했다. 쿠바의 도움을 받는 국가들은 의료진의 계약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서 '노동 학대'를 멈추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쿠바의 의료진 파견 목적이 인도주의가 아닌 '돈벌이'에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쿠바가 해외 의료 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은 2018년에만 63억 달러(약 7조 7742억원)에 달한다. 무상 치료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미국의 눈을 피해 소정의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강력한 제재로 쿠바의 돈줄을 차단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선 경계할 만하다.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관계가 당장 회복되기는 어려울 터다. 다만 정치적 대립보다는 인도주의적인 부분을 판단을 먼저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정치주간지 더네이션에 따르면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쿠바, 이란, 베네수엘라와 같은 국가들에 대해 제재를 포기하라"고 권고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글로벌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한 국가의 의료 노력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위험을 높인다”며 "이 중요한 시기에 수백만의 사람들의 권리와 삶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부문별 제재가 완화되거나 중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에서 사람들이 식료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일부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다. [사진=AP·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가 번지기 전에도 쿠바는 생필품과 의약품 부족 등 만성적인 경제난을 겪고 있었다. 여기다 코로나19 사태로 이중고를 맞았다. 프랑스24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쿠바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200명을 훌쩍 넘겼다. 6명이 사망했다.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만 1500명을 넘어섰다. 확진자가 외국 여행자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모든 국경을 폐쇄하고 외국인 입국을 막기로 했다. 전체 경제에서 관광 의존도가 높은 점을 보면 추가적인 경제난이 불가피하다. 당장 급한 마스크나 검사키트도 구하기 힘든 형편이다. 일시적으로나마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경우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터페론 백신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쿠바와 미국 간 관계가 좋았던 시절이다. 인터페론 개념이 1957년 영국에서 발견됐음에도 쿠바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데는 미국과의 관계가 한 몫 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전 세계적인 공포 속에도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 카드를 들고 뒷짐지고 있는 미국 정부의 새로운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미국 내 쿠바계 미국인들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쿠바에 남아 있는 가족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미국 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일 기준 24만4230명이 넘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도 5883명에 이른다.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