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코로나19는 왜 이토록 급속하게 세계로 번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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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20-03-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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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전통 안보위협'인 전염병의 국제공조를 거부한 '발병국'이 낳은 결과

[주재우 교수]


[주재우의 프리즘]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현재의 국제관계가 지닌 문제점을 되살펴보게 한다. 전염병 초기에 많은 나라들이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 등에서 오는 사람들을 입국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런 조치는 폐쇄적 민족주의가 출현하는 게 아니냐 하는 걱정을 낳았지만, 이후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자 각국이 저마다 국내외적으로 바이러스 차단 전쟁을 벌이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전 세계가 바이러스에 공동대응해야 하는 적극적인 공조가 필요하게 됐다. 그런데, 정치체제의 차이가 이런 공조를 어렵게 한 것이다. 바이러스 관련 정보와 대책이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공유되어야 하는데, 중국과 같은 공산체제는 체질적인 폐쇄성을 드러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국제정치의 ‘비전통 안보(Non-traditional security) 위협’에 속하는 문제다. 비전통 안보 문제는 군비경쟁과 군사위협과 같은 전통 안보 위협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나면서 전통 안보 위협은 줄었지만 그 밖의 안보 위협이 여전하다는 인식에서 생겨난 말이다. 비전통 안보의 이슈에는 경제, 식량, 에너지, 밀수, 마약, 인신매매, 불법이주, 민족 및 종교 갈등, 환경 및 생태계, 그리고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문제가 포함된다.

비전통 안보 개념이 등장한 까닭은 냉전시대가 끝난 뒤 세계화가 급진전하고 각국의 상호의존이 높아지면서 국제협력과 공조 없이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경 없는 세상’은 좋은 점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이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유엔에서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1994년 ‘인간안보(Human Security)’의 개념을 수립한다. 즉, 비전통 안보 이슈에 들어간 각종 문제들은 ‘인간 안보’를 위협하는 것들이다.

비전통 안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신속하고 다각적인 국제협력이다. 이런 협력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의 체제와 제도가 투명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국가뿐만 아니라 국제기구도 마찬가지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진원지인 중국이나 국제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는 어떠했는가. 사태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키우는 역할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염병의 진원지 국가가 국제협력을 제대로 하지 못한 까닭은 뭘까. 공산국가의 공산정권이, 코로나19문제가 자국 내 사태를 넘어선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함에 따라 적극적으로 국제적 공조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한 초기 대응 실패에 그 책임이 있다. ‘비전통 안보’ 문제에 대해 워낙 투명하지 못한 체제나 국가적 약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중국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1990년대의 탈북자 문제 때나 2002년 사스(SARS) 사태, 2003년 이라크전쟁으로 비롯된 유가 폭등 때에도 발빠르고 유연한 국제공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염병 사태에 대응하는 중국의 방식을 보면, 이 사태를 철저히 ‘정치화’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정치권력이 대응했던 방식과 상황에 대한 당위성과 정당성을 만들어낸다. 여론몰이나 보도통제 같은 것들을 수단으로 활용한다. 사태 대응 결과에 대한 합리화 또한 철저하다. 이 같은 정치화가 끝나면 이 문제를 ‘안보화’한다. 안보화는 세계나 국제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국 방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춰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일방적인 조치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다른 국가와 인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를 정당화하는 행위다.

지금의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정치화’와 ‘안보화’는 세계적으로 번진 바이러스에 대해 왜 글로벌한 공조가 초기에 이뤄지지 못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비전통 안보 이슈는 본질적으로 초국가(transnational)적이다. 따라서 전염병 발병국가는 위협 수준과 상황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공유할 의무가 있다. 이래야만 당사국과 국제사회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며 이성적 협력도 가능해진다. 중국은 오직 중국만을 위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노력을 집중했다. 그 결과가 지금 세계에 창궐한 바이러스이며, ‘비전통 안보’ 문제 해결의 참담한 실패다.

탈북자 문제는 비전통 안보분야의 불법 이주민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중국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 국제기구(유엔인권위원회)와의 공조를 거부한다. 이유는 탈북자를 불법 이주민보다 불법 월경자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북·중 양국 사이에 그간 흔히 발생하는 일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사스사태 때도 중국은 국내문제로 치부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그때는 중국인의 해외 이동이 지금과는 달리 많지 않았기에 사스의 세계적인 확산은 비교적 덜 심각했다. 그런데 당시에도 중국은 사태를 축소 은폐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WHO와의 협력을 지연시켰다.

2003년 이라크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할 때 원유수입국 간의 공조가 요구됐다. 특히 한·중·일 3국과 같이 원유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에는 당연히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국제공조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국제협의에서는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국의 이익을 향해 움직였다. 당시 중국은 일본에 대한 불신이 컸기에 공조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중국뿐 아니라 WHO 둘 다 바이러스의 세계적 확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중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은폐 및 축소하려 한 정치적 시도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이런 중국의 시도에 장단을 맞춘 것이 WHO다. 중국은 사태를 정치화·안보화하면서 국가적 명예를 수호하고 국제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노력으로 일관했다. WHO도 이런 중국의 노력을 찬양하면서 동조한 것이다. 국제기구로서 객관성과 중립성을 상실하면서 소임과 본분을 벗어났다. 이 기구가 국제사회의 지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이유다.

앞으로 세계는 '비전통 안보분야'의 다양한 이슈들 때문에 끊임없는 안보 위협을 받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이번에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준 ‘중국 방식’이다. 재난 앞에서 국익이나 자국 입장만을 고려하는 ‘단독플레이’는 초기에 진압할 수도 있는 문제를 세계적인 재앙으로 키울 수도 있다는 걸 웅변하는 사례다. 국가의 개별적 노력의 실패는 세계와 인류의 재앙으로 이어진다.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비전통 안보위협에 대한 대응태도의 기본을 지키지 못한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관련국들과 국제기구가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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