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풍전등화의 도쿄올림픽 성화 .. 코로나 강풍에도 타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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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0-03-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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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멈추지 않으면서 불안불안한 하루하루가 이젠 일상화되고 있다. 이럴 땐 프로야구 등 흥미진진한 경기가 시름을 한방에 날려보내는 데 딱이지만, 안타깝게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스포츠는 올스톱된 상태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도 집어삼킬 태세이다. 만약 오는 7월 24일 도쿄에서 개막 예정인 2020 하계 올림픽이 결국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된다면, 국가 에너지를 총집결하여 대회를 준비했던 개최국 일본이 느끼는 상실감과 허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주 그리스에서 채화된 올림픽 성화가 도쿄에 도착했지만 '중지론, 연기론'이 커지면서 日 아베 정부의 초조함과 당혹스러운 모습은 역력하다.

전염병이라는 불가항력적 이유 때문이라 할지라도 올림픽 무산은 일본의 국가 신인도에 대한 타격이다. 엄청난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욱이 이번 올림픽은 아베 총리의 정치적 생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은 1964년 10월 제 18회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패전국의 아픔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한 기적을 만방에 과시했다. 세계 최초로 올림픽 경기를 컬러TV 화면에 송출하며 일본의 기술력을 입증하고 전자제품을 수출하며 경제부국이 되었다. 64년 올림픽을 유치한 인물은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역대 최장수 재임 총리가 된 아베는 반세기 만에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을 통해 과거 일본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한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 경제의 재도약은 물론 극우 보수 세력의 결집과 평화 헌법의 개정까지 노리고 있다. 

아베 정부는 코로나19에 불투명하고 미온적인 대응으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리하여 그의 지지율도 급락하고 있다. 지난달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내린 확진자가 ‘일본 감염자 통계“에 잡히지 않거나, 자국민에게 적극적이고 투명한 확진 검사를 실시하지 않는 것은 당장 위험에 노출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에 앞서 올림픽이 무산되는 상황을 막아보겠다는 아베 내각의 집착 때문이었다. 갈수록 악화되는 경기침체도 그를 궁지에 몰리게 하고 있다. 오랫동안 저성장과 고령화, 내수 부진으로 허덕이는 가운데 GDP는 지난 4분기 -1.8%를 기록하며 5분기 만에 역(逆)성장했다. 각종 정치적 스캔들이 이어지며 2012년부터 지속된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이 더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로선 집권 여당이나 야권에서 아베를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점도 일본의 고민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그의 마지막 보루인 2020 도쿄 올림픽마저 취소 되거나 일본 경제의 침체가 깊어지면 아베 총리의 정치적 생명 연장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베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그리스에서 일본 도착한 도쿄올림픽 성화 (히가시마쓰시마 AP=연합뉴스)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노무라 다다히로(유도 남자)와 요시다 사오리(레슬링 여자)가 20일 일본 미야기(宮城) 현 히가시마쓰시마의 항공자위대 마쓰시마 기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성화 도착식 중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스에서 도착한 성화를 옮겨 받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주 발표한 성명에서 2020 도쿄 올림픽이 정상적으로 개최될 것이라며  "현 단계에서는 어떠한 극단적(drastic)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21일 독일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은 토요일(주말) 축구 경기처럼 연기할 수 없다"며 올해 도쿄올림픽이 개최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 올림픽 위원회와 경기 단체 등은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잇따라 내고 있다. 선수들의 감염 위험이 증가하면서 올림픽 예선과 훈련은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월드컵과 함께 축구 3대 메이저 이벤트로 꼽히는 유로 2020과 코파아메리카가 1년 연기된 것은 IOC에게 또 다른 부담이다. 회의론을 잠재우려는 아베 총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조차 '연기'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번 올림픽의 3개 종목 1만1천명의 참가 선수중, 약 60%는 이미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은 상태이다. 나머지 40%의 티켓에 도전하는 각국의 선수들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회의론 확산에도 불구하고 IOC는 일단 예선전 문제에 대한 논란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 일 것이다.  최근 일본을 방문했던 드니 마세글리아 프랑스 올림픽위원회(CNOSF) 위원장은 17일(한국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오는 5월 말 정점을 찍은 뒤 진정돼야만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올림픽이 열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IOC로서도 예산의 70% 이상이 올림픽 중계권료에서 나오는 실정을 감안하면 개최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형국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일본 정부의 입장이 올림픽을 예정대로 강행하는 것이고 취소 또는 연기는  최후의 선택 카드 이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르는 옵션은 경제적인 손실을 조금은 줄일 수 있겠지만 일본에게 별로 실익이 없다. 이미 일본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프로야구나 스모 레슬링, 도쿄 마라톤 등이 취소되거나 무관중 경기를 실시하고 있다. 각국 선수들의 감염 위험이 증가하면서 올림픽 예선과 훈련은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비용은 엄청나지만 대부분 적자이다.  그럼에도 나라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유치에 열을 올린다. 개최 후 국위 선양 등 파급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다.

2000년도 시드니 올림픽에 들어간 비용은 66억 달러 정도였는데 4년 후 아테네 올림픽에선 150억 달러로 증가했다.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 안전 대책 비용이 대폭 늘어난 결과이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개최에 사상 최대인 440억 달러(약 54조원)를 투입했다. 일본은 지금까지 총 1조3500억엔(약15조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만약 올림픽이 취소된다면 어마어마한 재정적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올림픽이 취소된 경우는 전쟁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 1916년 베를린 올림픽은 1차대전 때문에, 1944년 런던 올림픽은 2차대전 때문에 열리지 못했다.

도쿄 올림픽의 최종 운명은 IOC를 비롯해 세계보건기구(WHO)와 일본 정부간의 협의에 달려있다.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행사를 개막을 몇 개월 남기고 다른 나라로 장소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고 전례도 없다. 올림픽을  올해 가을에 개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중계권을 가진 미국의 NBC는 이미 기업들에게 12억5000달러의 광고를 경기 시간에 맞추어 팔았는데. 가을로 연기한다면 미식축구나 메이저리그 야구 등 다른 주요 스포츠 일정과 겹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옵션이다.  남은 옵션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운을 뗀 1년 후 개최, 또는 2년 후 개최이다. 그러나 내년 7월에는 세계육상선수권과 세계수영선수권 대회가 예정되어 있고, 2년을 연기할 경우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하계 올림픽이 같은 해 열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축구대회도 버티고 있다. 1년여 넘게 연기된다면 3천명이 넘는 일본 올림픽 조직위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줄이기도 어려운 상태가 된다. 

올해 7월 개막을 염두에 두고 훈련에 몰두하고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할 선수들의 삶은 코로나19로 인해 완전 뒤죽박죽이다.  올림픽 영광을 위해 매일 땀을 흘리고 있을 우리 대한민국 선수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바로 이웃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특수를 노리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반가운 일은 전혀 아니다. 삼성전자는 이번 올림픽의 공식 후원자이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5G 스마트폰과 8K TV 시장을 키우려는 전략에 차질이 올 수 있다.   

현재 올림픽 개최 여부는 아베 정부의 강행 의지보다는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는 시기에  달려있다. 호텔이나 항공편 예약 그리고 미디어 센터 등록, 올림픽 빌리지, 티켓 판매, 선수단 경호 등 수많은 준비 사항들이 늦어도 5월 중에는 확정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늦어도 그때까지는 도쿄 올림픽이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확실한 판단이 나오는 것이 우선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코로나19로 2020 도쿄올림픽이 취소 되거나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다면 사면초가에 몰리는 아베 총리가 사임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정서적으로 우리에겐 너무 멀리 느껴지는 나라이다. 그러나 순수한 국제 스포츠 행사를 너무나 정치와 외교적 앵글에서 바라보거나 불필요하게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경계해야한다.  우리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동서의 화합'을 열었듯이 올림픽은 국가간의 오랜 갈등도 해소시키는 계기가 될  수있다. 일본의 한 언론은 최근 한국이 자국의 코로나 위기보다 도쿄 올림픽 취소에 관심을 더 보이고 있다는 기사를 내본낸 적도 있다. “일본이 당황하는 모습에 한국이 재미있어 한다”는 논조이다. “샤덴 프로이트(shadenfreude)라는 독일어는 남의 불행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일컫는다. 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불교에서 나오는 무디타(mudita)가 있다. 타인의 행복을 보고 느끼는 기쁨이라는 개념이다. 아테네에서 채화된 도쿄올림픽 성화가 지난 20일 도쿄에 도착했다. 오는 26일부터는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 피해지인 후쿠시마를 시작으로 일본내 성화봉송이 121일 동안 진행된다. 이 성화가 코로나 강풍에 꺼지질 않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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