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누더기 선거법을 심판하는 4.15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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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20-03-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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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은 희한한 선거가 될 전망이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우려스러운 선거다. 먼저 원내 1당과 2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는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포기한 결정이다. 원내 1, 2당이 비례대표를 내지 않기는 처음이다. 또 양당 정치를 타파하겠다며 나선 신생 정당은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는다. 역시 처음이다. 원내 1,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그리고 신생 국민의당 이야기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위성 정당을 만들어 비례의석 확보에 나선 것은 꼼수다. 위법은 아니지만 선거법 맹점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둘 다 같다. 서로 손가락질할 형편이 못 된다.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을 창당해 선수 쳤다. 여기에 그동안 비례 위성정당을 비난하고 조롱했던 민주당도 슬그머니 가담했다. 둘 다 염치를 내던진 부끄러운 행태다. 오죽하면 민주당 이낙연 선대위원장은 “여야 모두 이상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로 싸잡아 비판했을까 싶다.

유권자들은 처음 대하는 선거법 때문에 혼란스럽다. 위성 정당도 생소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정강과 정책 또한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희한한 풍경은 원내 1, 2당 후보가 빠진 TV토론회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선관위가 주관하는 TV토론회에 참여할 수 없다. 중앙선관위가 비례 후보를 내지 않는 정당은 TV토론을 참여할 수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두 눈을 가린 채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사상 최악의 ‘깜깜이 선거’에 직면했다.

이 모든 문제는 누더기 선거법에 원인이 있다. 지난해 정치적 이해에 담합한 정치권은 ‘1회용 선거법’을 강행 처리했다. 준연동형 비례제도가 가져올 부작용과 맹점을 꼼꼼히 따지지 않은 채다. 부작용은 위성 정당으로 나타났다. 공수처법 처리에 급급한 민주당과 의석수 늘리기에 혈안 된 군소 정당이 손잡은 결과다. 누더기 선거법과 위성 정당은 합작품인 셈이다. 민주당 무소신, 통합당(한국당) 반칙, 정의당 아집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정의당은 당시 앞뒤 따져보지 않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제1당인 민주당은 부작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동조했다. 한국당은 허점을 틈타 꼼수를 두었다. 이 때문에 개정 선거법은 비례성 강화는커녕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극단적인 대립만 심화시켰다는 비판에 놓였다. 위성 정당 창당과 비례 후보 선정 과정에서는 불협화음마저 터져 나오고 있다. 총선에 눈 먼 정치권이 키운 정치 혐오의 그늘은 이처럼 짙다.

▲민주당의 무소신
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이란 위성 정당을 통해 비례의석 확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진보진영은 갈라섰다. 정의당은 불참을 선언했고, 함께하기로 했던 ‘정치개혁연합’과도 멀어졌다. 대신 조국 지지 세력이 주축인 ‘시민을 위하여’와 손을 잡았다. 정의당은 꼼수에 꼼수로 대응한다며 민주당을 비난했고, 정치개혁연합도 민주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하승수 정치개혁연합 사무총장은 “치졸한 정치 공작극이며 그 주체는 양정철 민주원장이다. 결국 위성 정당으로 가려는 명분을 쌓기 위해 정치개혁연합을 이용했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졸속 창당에다 졸속 심사라는 우려도 상존해 있다. ‘더불어시민당’은 군소 정당들에게 20일까지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제출하도록 요구한 상태다. 선관위 등록 마감 이전인 25일까지 후보 등록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제대로 된 후보 검증이 가능할지 우려된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명분도 실리도 잃는 최악”이라는 비판이 비등하다. 면밀하게 헤아리지 못한 채 선거법 개정에 동조하고, 위성 정당 설립, 진보진영 분열까지 초래한 민주당의 무소신이 이번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통합당의 반칙
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1년여 동안 가동된 정치개혁특위에 참여하지 않은 채 겉돌았다. 자체 안을 제시하고 협상에 응해야 했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았다. 대의기관으로서 역할을 포기한 채 장외 집회, 삭발, 단식 등 선거법 저지에만 골몰했다. 막상 1+4체제에 의해 본회의에 오르자 물리력을 행사했다. 국회 선진화 법 이후 자취를 감췄던 몸싸움과 최악의 20대 국회라는 오점을 남겼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은 기다렸다는 듯 미래한국당을 세웠다. 비례 전용 정당인 미래한국당은 한선교 대표가 이끌었다. 통합당은 자당 의원을 한국당에 파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비례대표 명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충돌했다. 한국당 공관위가 결정한 비례 후보 명단을 통합당에서 수용할 수 없다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명단은 부결됐고, 한국당 지도부가 전원 사퇴함으로써 공천 갈등은 정점에 달했다. 미래통합당의 반칙을 유권자들은 어떻게 심판할지 관심이다.

▲정의당의 아집
정의당은 21대 총선에서 교섭단체 지위 확보에 명운을 걸었다. 진보정당으로서 지위를 점해 왔기에 명실상부한 진보정치를 위해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좋은 수단이다.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수를 나누는 제도가 정착된다면 가장 실리를 챙기는 정당으로서 정의당이 거론된다. 정의당은 교섭단체 기준인 20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양한 목소리 확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50% 준연동형에다 그나마 비례의석 47석 중 30석만 한정하는 캡을 씌우면서 선거법은 누더기가 됐다. 애초 취지는 실종된 채 나눠먹기로 전락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선거법은 21대 국회에서 재개정을 해야 하는 ‘1회용’으로 전락했다. 의석 확보에 목을 맨 정의당 아집은 누더기 선거법에 일조했다. 19일 갤럽 여론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4%대다. 이대로라면 선거법 개정으로 인한 반사효과마저 기대하는 게 쉽지 않다.

4월 총선에서는 누더기 비례 정당 사태를 초래한 정치권에 대한 심판이다. 정당 투표를 방해하고 왜곡시킨 책임을 묻는 선거다. 민주당의 무소신, 통합당의 반칙, 정의당의 아집을 대하는 민심이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명분 없는 간접 창당에다 비례대표 공천 갈등까지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 표심이 어디를 향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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