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기침체 초읽기] "악재, 또 악재"...'R'의 문 앞에 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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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조아라 기자
입력 2020-03-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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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DP 성장률, 연 -7.1%" 벼랑 끝 탈출구 없는 아베 정권

  • 연이은 악재, 미·중 무역전쟁·소비세 증세·코로나 사태

  • 올림픽 포기·증시 약세·엔고 3중 압박 속 묘수 찾을까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일본이 'R(Recession·경기침체)'의 문턱을 밟고 서 있다. 이번에도 일본이 R의 문턱을 넘는다면 이미 한 차례 10년을 연장했던 '잃어버린 20년'은 '잃어버린 30년'으로 또 늘어날 공산이 크다.

지난해 4분기 일본 경제는 5개 분기 만에 역성장을 기록하며 이미 한발을 R의 문턱에 걸쳐놓았다. 올 1분기도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면, 일본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는 경기침체 상태에 공식적으로 진입한다. 

문제는 걸쳐있는 발을 다시 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아베 신조 정권의 '회심의 카드'였던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일과 2020 도쿄올림픽이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에 갈수록 꼬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연 -7.1%", R 신호탄에도 보이지 않는 돌파구
 

[그래픽=최지현 기자]


지난 9일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1.8% 감소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0.9% 하락을 크게 밑돌았다. 이로써 일본 GDP 성장률은 5개 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연율로 환산할 경우 7.1% 하락했는데, 이는 2014년 2분기 7.4% 하락에 이어 가장 큰 폭의 감소이다. 일본 경제가 6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하락한 것이다.

이렇게 일본 경제가 빠르게 위축한 이유로 우선 대외적 원인을 꼽을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우리나라와의 무역 갈등 등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여파다. 글로벌 무역 규모 감소로 수출은 0.1% 줄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6% 감소한 수입도 3개 분기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기업설비투자도 3개 분기 만에 역성장해 전분기 대비 3.7% 감소했다.

대내적으로는 소비 부진이 꼽힌다. 일본 정부는 소비세 증세에 글로벌 소비 둔화, 태풍 하기비스 등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경제성장률에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소비세율을 8%에서 10%로 전격 인상하면서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전 분기보다 2.9%나 줄었다. 당초 예상치가 -2.0%였던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소비세 부담 증가가 예상보다 크게 가계소비를 압박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말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는 전망을 더 어렵게 한다. 중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공장 가동을 멈추면서 제조업 생산성은 크게 하락했고, 국가 간 인적 교류가 줄면서 관광·항공 산업도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올해 중국인 관광과 올림픽을 중심으로 방일 관광객 4000만명을 유치한다는 일본 정부의 관광산업 활성화 전략도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을 비롯한 관광객 급감 상황이 장기화하면 일본 열도의 '마이너스 성장'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말 일본 다이와증권그룹의 싱크탱크인 다이와종합연구소는 코로나19가 3개월간 지속할 경우 100만명, 1년 동안 이어진다면 400만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아울러 100만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할 때 일본에는 총 2500억엔(약 2조7494억원)의 경제 손실을 예상했다.

SMBC닛코증권 역시 중국인 단체여행 중단이 6개월간 이어질 경우 일본 내 관광 지출이 2950억엔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봤으며, 민간연구소인 노무라소켄은 코로나19가 올해 일본의 명목 GDP의 0.45%를 줄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조4750억엔 규모다.

이에 더해 중국과의 경제교류 확장을 위해 그간 아베 정권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시 주석의 방일이 코로나 사태로 지난 5일 취소를 확정하며 아베 정부의 눈앞을 더욱 캄캄하게 만들었다.

유키 마스지마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경제가 코로나19의 공격을 받으면서 올 1분기에도 연속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며 "침체가 목전에 왔다는 건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책을 가동해야 한다는 큰 압박 아래 놓여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10일(현지시간) 오후 12시 기준 일본 코로나19 확진 현황.[그래픽=도요게이자이]


◆올림픽, 아베 정권의 피날레?
 

[그래픽=최지현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공포가 연일 커지면서 올 7월 개최 예정인 도쿄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는 대내외의 압박도 거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연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취소는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도쿄올림픽까지 개최를 취소하면 일본 경제는 도미노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SMBC닛코증권은 도쿄올림픽을 취소할 경우 일본 GDP 성장률이 1.4%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7조8000억엔 규모다. 개최 취소 여파에 일본 내 기업매출은 24.4% 하락하고 올림픽 특수로 예상했던 소비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SMBC닛코증권은 올림픽 직접 경제효과를 6700억엔으로 추정했다.

일본의 고민은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올림픽을 취소한다면 4년간 쏟아부었던 준비금마저 날려버릴 가능성이 크다. 일본 올림픽조직위원회가 당초 제시한 경비는 국가 지출과 도쿄도 분담분, 조직위원회 분담분을 포함해 총 1조3500억엔이었지만, 실제 예상 지출은 최소 3조엔에 육박한다고 교도통신은 예상했다.

이는 최근 현지 매체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일본과 IOC 사이의 이면계약'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IOC가 올림픽을 취소한다면 일본에 보험금을 지급하지만, 일본 정부나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올림픽 취소 여부를 결정할 경우에는 발생하는 금전손실의 100%를 일본의 과실로 못 박았다는 것이다.

일본 매체 프레지던트는 지난 9일 다케나카 헤이조 도요대 교수를 인용해 코로나19 확산에도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로 '보험금'을 꼽았다. IOC가 일본에 먼저 올림픽 개최 중지를 권고해 보험금 청구가 가능해질 때까지 일본 정부가 버티고 있다는 해석이다.

외신은 올림픽 유치가 절실했던 아베 정권이 유치 과정에서 IOC에 결국 이와 같은 불공정한 조약까지도 허용했다고 봤다. 아베 정권은 취임 초기부터 이번 정권 '성공의 클라이맥스'로 올림픽을 올려놨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아베노믹스'로 부활한 경제·문화 강국 일본을 전 세계에 자랑한다는 계획을 2012년 취임과 동시에 공개했다. 이를 동력으로 각종 스캔들에도 전례 없는 연임 연장까지 성공하며 최장수 총리가 됐다.

그는 도쿄올림픽 개최 성공으로 2021년 화려한 퇴장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4연임 가능성을 엿보겠다는 셈법도 담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올림픽은 9년 아베 정권의 완전한 퇴장을 못 박을 '실패'의 클라이맥스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2016년 8월 2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폐회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게임 캐릭터 '슈퍼 마리오'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이날 아베 총리는 "마리오처럼 일본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사진=연합뉴스]


◆심각한 지표 후퇴...벼랑 끝 놓을 묘수 있나
 

[그래픽=최지현 기자]


코로나 사태 속 일본 경제는 국제 경제 충격에 예민하게 반응 중이다. 연이은 악재로 경제 기초체력인 '펀더멘털'이 그만큼 약해져 있다는 의미다.

일본 증시는 최근 글로벌 하락장 중 특히 급락세를 보였다.

미국 동부시각 기준 9일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지수가 2013.76포인트(7.79%)나 빠지는 대폭락을 보이자 다음날 일본 증시의 대표지수인 닛케이지수는 개장하자마자 1만8889.5까지 급락하며 1만9000선이 붕괴하기도 했다. 일본 증시가 1만9000선 아래로 밀린 것은 지난 2018년 12월 26일 이후 약 1년 3개월 만이다. 앞서 9일에도 닛케이지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조짐과 유가폭락이라는 겹악재에 5% 이상 폭락해 1만9632.5로 장을 마치기도 했다. 작년 1월 4일 이후 1년 2개월여 만에 2만선 아래서 장을 마친 것이다.

4일 글로벌 증시가 '코로나 패닉장'에 들어선 후 지난 10일까지 패닉장을 이끈 미국 다우지수는 평균 3.47% 하락했지만, 일본 닛케이지수는 평균 5.77% 떨어졌다. △한국 코스피지수 -2.65% △홍콩 항셍지수 -3.39%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0.13% △대만 가권지수 -2.86% 등 주변 아시아 국가 증시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이 와중에 일본 경제의 핵심 변수인 엔화조차 심상치 않다. 지난 9일 당시 달러·엔 환율도 3.77%까지 낙폭을 확대하면서 101.514엔까지 밀렸다. 101엔대로 떨어진 것은 2016년 11월 이후 처음이었다. 이제 일본 도쿄 외환시장은 달러·엔 환율이 본격적인 '엔고'에 진입하는 100엔대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일본 재무성은 이날 오후 금융청, 일본은행과 긴급회의를 열어 금융시장 불안을 논의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인다. 적절히 행동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같은 날 내각회의에서 "국가기관·일본은행과 제휴하고, 필요하다면 주요 7개국(G7)·20개국(G20)과의 합의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엔고 현상이 나타날 경우 일본 정부가 현재 기준 금리인 -0.1%에서 추가 인하 조치에 나설 것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 움직임에도 시장은 쉽사리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아베 정권이 '아베노믹스'란 명목으로 집권 내내 양적 완화 정책과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마이너스 상태인 일본의 기준 금리를 더 내린다고 해도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재정확장 정책 남발에 일본 경제가 이미 '슈퍼 내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픽=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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