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코로나19전(戰), 담대한 정책 '공론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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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3-0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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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 초유의 사태에 임시직·일용직 등 아우성, 절규

  • 11조7000억 추경, 과거 대책 되풀이

  • 재난기본소득, 15조~25조 규모 검토해야



“코로나19에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식당 주인, 학원 원장, 중소기업 사장 등 자영업-소상공인들이 절규하고 있다. 건설현장이 닫힌 일꾼, 일터와 일할 시간이 없어진 알바생, 순식간에 일감이 사라진 프리랜서, 문 닫은 학교·학원의 방과후 교사·강사, 대리기사 같은 (초)단시간 플랫폼 노동자들 역시 그렇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한 달 벌어 월세 내는 일용직, 임시직, 비정규직 모두가 생존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未曾有), 전대미문(前代未聞), 사상 초유의 사태··· 아비규환(阿鼻叫喚) 직전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은 두 가지 차원, 투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전쟁은 전염병을 상대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방역전(戰)이면서 동시에 국민들 먹고사는 생계가 걸린 경제전이다. 그 투 트랙의 전쟁은 또 다른 차원의 두 가지 전쟁 방식과 맞물려 돌아간다.

방역전-경제전 모두 제때에 바이러스와 경제위기라는 적의 타격점을 재빨리 찾아내 신속하게 공격하고, 위중한 피해자들을 긴급 구제하는 속도전이 필요하다. 이뿐 아니라 원인·시기·지역·업종·계층은 물론, 심지어 종교까지 씨줄-날줄로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 풀어야 하는 지구전(持久戰)도 병행돼야 한다.

방역-경제-속도-지구, 4가지 전쟁전술 시뮬레이션을 잘 조합해야 최종 승리를 거둔다. 궁극의 시점은 환자가 회복하고 일자리와 생계 걱정이 없어지는 때다.

4일 정부가 내놓은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은 바로 코로나19와의 전쟁 중 생계·생존 위기에 처한 이들을 위한 ‘경제전X속도전’에 투입할 전쟁물자, 실탄인 셈이다.

이번 추경안은 신속한 조치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지만, 그 규모와 내용이 과거에 발표된 대책과 별로 다르지 않다. 미증유, 전대미문의 사태 한가운데 있음에도 말이다.

정부는 11조7000억원이 2015년 메르스 추경보다 1000억원 많은 액수이며 감염병 관련 추경으로는 최대 규모라고 한다. 이를 위해 10조3000억원 규모로 적자국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 11조7000억원,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5조8000억원에 비해 오히려 더 적다.

이번 추경으로 나라의 곳간이 빌 수 있다는, 국가채무에 대한 걱정이 많다. 일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마지노선’인 40%를 넘어설 것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법 규정 어디에도 40%를 못 박지 않았고, 국가채무 상황도 상대적으로 괜찮다.
 

[그래프=김효곤 기자]


5일 현재 IMF 홈페이지 ‘2019년 10월 기준 세계경제 전망’에는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대한민국은 2018년 37.9%에서 2019년 40.1%로 이미 40%대를 넘어섰다. 또 2020년에는 43.4%로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반영되지 않은 수치임을 감안하면 조만간 40%대 중반으로 진입할 거라는 수정치가 나올 전망이다.

걱정과 달리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비율은 상대적으로 낫다. 비정상적 1위인 일본과 기축통화국인 미국을 빼고 보면 프랑스(99.2%), 영국(84.8%), 독일(55.7%) 등 선진 유럽국은 물론 인도(68.5%), 중국(60.9%), 베트남(53.3%)에 비해 나쁘지 않은 편이다. 35개 OECD 회원국 중 16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아직 재정확대 여력이 있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전쟁에 투입할 실탄을 더욱 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사상 초유의 위기는 사상 초유의 결단을 요구한다”는 말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추경안 중 ‘킬러 아이템’이라며 쿠폰지급 방안을 내놨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138만 가구에 지역사랑상품권 월 최대 22만원, 만 7세 미만 아동수당 대상자 263만명에게 4개월간 40만원 등 저소득층·노인·아동 500만명에게 2조300억원어치 소비쿠폰을 주는 방안이다. 단순계산하면 1인 평균 40만원 넘는 돈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고 전통시장, 주유소, 식당, 서점 등 지자체 가맹점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정부는 저소득층 생계를 안정시키고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골목상권도 살리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하지만, 상품권으로는 "죽겠다"는 절규를 해결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번 정부 추경안에서 긴급 민생 지원은 저소득층과 아동수당 지급대상 부모들에게 상품권을 추가로 지급하는 것을 포함, 금융 및 세제 지원 등 지금까지 반복돼 왔던 대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비상 상황’이라며 “정책적 상상력에 어떤 제한도 두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나. 공무원들의 정책적 상상력은 더 ‘담대’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추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디어를 검토해야 한다.

홍 부총리가 쿠폰 추경을 “재난기본소득 성격”이라고 말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기본소득은 아무런 조건 없이 전 국민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앞에 ‘재난’이 붙으면 재난 상황에만 한시적으로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금액을 말한다.

지금까지 재난기본소득을 채택한 곳은 홍콩뿐이다. 홍콩은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강력한 부양책’을 내놨다. 홍콩 정부는 18세 이상 영주권자를 대상으로 1만 홍콩달러(약 156만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소득세도 2만 홍콩달러 한도 내에서 100% 감면해준다. 이로 인한 예상 적자 규모 1391억 홍콩달러는 2004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당시보다 2배 이상 크다. 그럼에도 홍콩은 선제적 조치에 과감하게 나섰다.

경제 규모, 부채 비율 등에서 우리 상황은 홍콩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코로나19와의 전쟁 양상은 비교 불가할 정도로 우리가 심각하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차원에서 홍 부총리의 발언을 다시 확인해 본다. 그는 추경안 발표에 앞서 국회에서 “1단계 4조원, 2단계 16조원, 추경까지 합해 30조원 규모의 대책”을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추경을 1차로 치면, 나머지 정부의 모든 지원책을 재난기본소득으로 통합해 15조~25조원 규모 재정을 투입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 국민에게 30만~50만원 정도를 지급할 수 있는 셈이다.

2월 말 벤처 1세대인 이재웅 쏘카 대표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재난기본소득 50만원 지급’ 아이디어가 공론화에 불을 붙였다. 이 대표는 “재난기본소득을 50만원씩 1000만명에 주면 5조, 2000만명에 주면 10조원이다. 20조원의 추경을 준비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10조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대표)는 “지역의 자영업-소상공업체에만 쓸 수 있는 한시적인 재난기본소득을 전 국민에게 지역화폐 형태로 공급하는 게 시급하다. 5000만명에게 지역화폐 30만원을 주면 15조원, 50만원을 주면 25조원이다. 이를 지역별로 연 매출 10억원 또는 5억원 이하 가게에서만 쓸 수 있게 하면 지역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찬반이 팽팽하지만, 최근 정치권에선 긍정적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심장이 멎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혈압약을 처방해서야 되겠는가. 코로나19와의 전쟁, 사람 살리는 일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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