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2) '사회주의 완성' 꿈꾸는 베트남의 '도이머이'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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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서강대 교수
입력 2020-02-1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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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홍강 강변에서 이한우 교수]


 
*아주경제는 베트남 개혁·개방을 연구하는 최고 전문가 서강대 이한우 교수의 칼럼을 연재한다. '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는 베트남의 개혁 과정을 톺아보고 분석하며 날로 확대되고 있는 한·베트남 관계에 대한 현황을 살피고 전망을 내놓을 것이다. 이한우 교수는 서강대에서 베트남 개혁정책을 주제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로 있다. 베트남 국민경제대학 객원연구원으로도 있었다. 그는 베트남 정치경제 개혁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개혁으로 인한 사회문화 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개혁의 정치경제>, <한국-베트남 관계 20년> 등 책과 베트남 개혁에 관한 연구 논문을 여러 편 냈다. <편집자 주>


 ‘도이머이’의 길을 내다

베트남이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전반에 극심한 경제적 침체와 사회주의 체제의 침식을 겪고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 경제성장의 성공 사례로 칭송받고 있는가? 결론을 먼저 말하면, 그 이유는 베트남인들의 유연한 사고와 지도자들의 실용주의 노선에서 찾을 수 있다. ‘도이머이’ 정책을 채택한 과정을 통해 이를 이해해 보자.

정치지도자들은 1979년 9월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개혁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중국이 1978년 12월 제11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을 선포하고 본격적으로 개혁에 나섰고, 동아시아 주변국, 특히 한국을 포함한 네 마리 용들이 이미 고성장의 성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에 반해 베트남은 심각한 경제침체에 빠져있었으니,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베트남은 1980년대 초 ‘신경제정책’이라고 일컫는 부분적 경제개혁을 시작했다. 1981년 공산당 비서국 100호 지시로 농업부문에서 생산물계약제를 도입한다. 이는 ‘합작사’라는 이름의 집단농장이 농가에 토지를 단기간 배분하면서 농산물 의무수매량을 계약한 후, 농민이 수확 후 그 계약량을 납부하고 잔여분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1970년대 말부터 북부 하이퐁을 비롯한 여러 지방에서 탈법적으로 시행돼 오던 것이다. 이는 중국의 ‘포산도호’(包産到戶)에 해당한다. 공업부문에서는 정부가 공정가격으로 제공한 원재료 이외에 각 기업이 자체 조달한 원재료로 생산한 제품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기업에게 자율권을 일부 인정해줬다. ‘신경제정책’은 1980년대 전반 긍정적 성과를 나타냈다. 하나 공산당 지도부가 탈사회주의 경향을 우려하여 1983년 무렵부터 조정정책을 폈고, 그 결과 베트남은 다시 경제적 침체에 처하게 된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1985년 가격·임금·화폐개혁 조치를 채택했다. 물품 가격을 현실화하고, 그간 현금과 물품구매표(배급 쿠폰)를 통해 지급하던 임금을 현금으로 일원화하여 지급하는 것이었다. 이 제도가 시행되자 1986년 물가가 연간 600%에 이를 정도로 상승했다. 주요 원인은 물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화폐개혁을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고 평가된다. 당시 보수적 지도자들이 축장된 부를 끌어내야 한다며 화폐개혁을 함께 했다. 물가상승은 특히 공산당 및 정부 관료, 국영기업 종사자 등 봉급생활자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정부는 1985년 조치로 배급제를 폐기하려 했으나, 경제적 혼란이 오자 이를 부분적으로 복구하였고 1989년에도 일부 품목을 배급제로 공급했다.
 

 

[개혁 이전 양곡구매기록부와 물품구매표(배급 쿠폰). 사진@이한우 2007]
 


한편 지방정부는 경제 침체에 대응하여 탈사회주의적 조치들을 도입하고 있었다. 1980년 남부 메콩델타의 롱안(Long An) 성 지도자들은 정부 공정가격 외에 합의가격, 경영가격 등으로 불리는 ‘시장적’ 가격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쌀의 암시장 가격이 공정가격의 열배에 달했는데, 시장가격에 조금 못 미치는 합의가격을 도입해 시장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호찌민시는 양곡 수매가 곤란해지자 양곡수매단을 메콩델타 농촌에 파견했다. 양곡 수매의 공을 세웠던 사람으로 바티(Ba Thi) 여사가 베트남 개혁 역사에 기록돼 있다. 당시 호찌민시 당위원회 비서였던 보반끼엣(Vo Van Kiet)은 1980년부터 호찌민시 식량경영공사 감독 바티를 단장으로 하는 수매단을 파견했다. 수매단은 농민들과 협상하여 양곡을 확보해 호찌민시에 공급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유통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었다. 보반끼엣은 1986년 제6차 공산당대회에서 총비서(총서기)로 선출된 응우옌반린(Nguyen Van Linh)과 함께 개혁의 기수였다. 그는 1991-97년간 수상(총리)을 역임했는데, 그 기간은 베트남에서 고성장 시기였다. 이렇게 지방의 탈사회주의적 “담장 허물기” 실험들은 나중에 공산당의 공인을 받고 개혁정책으로 됐다.

베트남은 공산당과 정부 차원에서 이미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과정을 연구하고 있었다. 발전모델을 벤치마킹하려는 것이었다. 한국은 공산당 최고위 회의에서도 언급됐다. 도쿄대학 후루타 모토 교수에 따르면, 1986년 4월 정치국 회의에서 당시 국가주석 쯔엉찐(Truong Chinh)은 한국이 베트남보다 외부의 자금 지원이 많지 않았는데도 발전한 공업국이 됐는데 베트남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과오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베트남은 한국의 경제성장, 새마을운동 등에 관심을 갖고 참고자료를 펴냈다. 그중 하나가 <남조선경제>다. 한국의 한국개발연구원 같은 기능을 하는 베트남의 중앙경제관리연구원이 1988년 내부 참고자료로 펴낸 것이다. 베트남이 한국만을 보지는 않았지만 한국은 베트남 개혁정책 채택과정에서 벤치마킹한 주요 국가였다.
 

[중앙경제관리연구원이 펴낸 <남조선경제>. 사진@이한우 2016]


 ‘도이머이’ 정책의 기본 논리

베트남공산당은 1986년 12월 제6차 공산당대회에서 ‘도이머이’를 선포한다. 당시 정치보고는 공산당 자신과 중앙집권적 관료주의의 폐해에 대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맹렬히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 문장을 인용해보면 이렇다. “경제적, 사회적 과오와 부족함은 공산당의 이념적, 조직적 활동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격적 개혁은 1988년 외국인투자법, 농가경영제 등을 집행하면서 전개된다. 현재 외국인투자액 누계를 계산할 때도 1988년부터 하는 건 바로 이 외국인투자법 때문이다. 공산당 정치국 10호 결의로 채택된 농가경영제는 농지를 농가에 장기간 배분하여 자유롭게 경작케 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포간도호’(包幹到戶)에 해당한다. 베트남 정부는 농지 사용기간을 처음에는 15년 정도로 잡았는데, 1993년 새 토지법을 시행하며 20년으로 했다. 국가가 토지소유권을 가지지만, 농민들은 토지사용권을 가지며 이전(판매), 임대, 상속, 저당 등의 권리를 부여받아 실제로는 소유권과 같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농업부문의 ‘실질적’ 사유화다. 공업부문의 개혁은 1990년대에 시작된다. 이후 베트남은 1994년 미국의 금수조치 해제와 1995년 국교정상화로 본격적 성장궤도에 오르게 되고 2007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며 날개를 달게 된다.

‘도이머이’ 정책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도이머이’ 정책은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목표를 두고 있다. 현재 베트남이 탈사회주의 과정에 있는데 무슨 얘기냐 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선진적 제도라고 믿기에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건설 목표를 견지하고 있다. 그 논리는 무엇인가?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성장을 통해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 베트남 등은 자본주의 사회를 거치며 경제를 충분히 성장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주의체제를 수립했다. 따라서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탈사회주의적 요소를 용인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한 후 사회주의 사회를 완성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서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탈사회주의적 요소가 함께 공존하는 현단계를 중국은 ‘사회주의 초급단계’라고 하는데, 베트남은 ‘사회주의로의 과도기’라고 한다. 두 내용은 크게 보아 한 가지다. 양국은 이 과도기에 경제발전을 이룬 후 사회주의 사회로 전진하겠다고 한다. 과도기의 특성은 다양한 소유제의 공존을 인정하는 것이다. 본래 사회주의 사회는 전인민소유(국유)와 집체소유를 포함하는 공유재산제에 기반한 사회인데, 과도기에는 여기에 개인 소유와 혼합 소유 등 다양한 소유형태의 공존을 인정한다. 따라서 이 시기 경제체제는 혼합경제이고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운용된다. 베트남은 현 체제를 “사회주의 지향 시장경제체제”라고 공식화했다. 과도기 기간은 얼마나 될까? 그것은 정해지지 않았고 영구히 지속될지도 모른다. 베트남이 사회주의로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이런 논리가 레토릭, 즉 수사로 느껴지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현실이 될지 레토릭에 불과할지는 장래에 판가름 날 것이다. <이한우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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