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권 후보가 된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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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 사회부 부장
입력 2020-02-0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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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해라지만 오해 부른 측면 있어···오해라면 절제와 품격으로 벗어야

“형님, 형님,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어요. 글쎄, 윤석열 지검장이요···.”
지난해 4월 무렵이었다. 어느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후배 녀석이 전해준 이야기는 좀 황당했다. 자신이 잘 가는 강남의 어느 식당 사장에서 들은 이야기라면서 “윤석열 총장이 대권의 꿈을 꾸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윤 총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후배 여러 명을 끌고 식당을 찾았는데 얼큰하게 취해서는 ‘흉중의 큰 포부’를 일행들에게 공표했다는 거다. 그런데, 목소리가 적잖이 커서 방 밖으로까지 들리고도 남았고 그걸 식당 주인하고 종업원들이 모두 들었다는 것이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어디서 ‘지라시’같은 소리를 듣고 와서는···.”
그 당시 기자는 후배의 ‘제보’에 단 1%의 신빙성도 두지 않았다. 신빙성은 고사하고 출처조차 모호하다며 "노래방 '삐끼'한테 주워들은 이야기냐"고 핀잔을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윤 총장이 정말 대권을 꿈꾸고 있다면 오가는 사람 천지인 그런 곳에서 남들이 다 듣도록 떠들고 다녔겠냐"면서 "말 같잖은 소리는 하지 마라"고 무안을 주었다. 당시 기자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후배 녀석은 연락을 끊어버렸고 한동안 전화조차 없었다.

“형님, 기사 봤죠? 거 봐요.”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그 후배가 연락을 해 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권 후보군 중에서 2위, 야권 후보 중에서는 1위를 했다는 모 신문사의 여론조사가 나온 직후였다. 처음에 1% 남짓 지지율이 잡혔다는 보도가 나온 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만만찮은 상승세가 예상된다.

그 기사가 보도된 직후 윤 총장 측에서는 “대선에 출마할 의향이 없다”면서 “앞으로는 여론조사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 특히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런 여론조사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반응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요청과는 달리 앞으로도 비슷한 유(類)의 여론조사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윤 총장이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점차 커져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 총장이 부인하면 할수록 오히려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윤 총장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이면 차기 대선을 딱 10개월 앞둔 시점이라는 점도 이런 의구심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입장이 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자는 윤 총장이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청와대를 향해 칼을 뽑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최근 검찰 수사가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윤 총장이 처음부터 대권에 욕심을 가지고 수사를 했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술에 취해 ‘대권 운운’했다는 윤 총장 이야기도 여전히 신빙성이 낮다고 본다.

하지만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니라고 항변이야 하겠지만 그럴수록 오해의 늪으로 빠져드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진행될 수사는 물론 이미 마무리된 수사도 동기에서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인사이동을 단 하루 앞두고 청와대 참모진을 포함한 13명을 전격 기소한 것이라든가 소환조차 없이 기소를 당한 사람이 여러 명에 달하는 점, 혐의 입증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꾸기’ 문자나 ‘강남 건물주’ 문자를 법정에서 내놓는 것 등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검찰권의 행사는 절제와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전직 검찰총장의 말이 있다. 칼을 찌르되 비틀지 말아야 한다는 금언도 있다. 피고인을 압박하는 가장 야비한 수법이 가족을 앞세우는 것이라는 비판도 높다.

절제와 품격을 갖춘 검찰, 칼을 찌르되 비틀지 않는 검찰. 지금은 검찰의 결단이 필요할 때다.

[사진 = 장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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