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4.15총선, 당선보다 가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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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20-01-2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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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새해 첫날, '12시간의 밤'이라는 놀랍고 감동적인 영화를 봤다. 군부독재에 항거한 양심수를 그린 실존 영화다. 주인공은 호세 무히카(Jose Mujica) 전 우루과이 대통령(2010~2015). 그는 반 정부 단체 ‘투파 마로스(Tupa Maros)’에서 활동했다. 1973년 체포돼 군부독재가 막을 내린 1985년까지 12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무히카와 동료들이 감옥에서 대면한 문구다. 이 말처럼 그들은 가족, 사회와 격리된 채 12년이란 끔찍한 세월을 보냈다.

독방에서 보낸 4500여일은 일반인들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처절한 세월을 뒤로한 끝에 그들은 끝내 살아남았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임에도 공감대역은 넓다. 우리 현대사도 불과 얼마 전까지 비슷한 시간을 관통해 왔기 때문이다. 진짜 감동은 영화 밖에 있었다. 정치인 무히카가 보여준 행보는 깊은 울림을 선물한다. 그는 사면 복권 이후 하원·상원 의원을 거쳐 2010년 3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겸손하며 소탈하고, 검소한 삶은 그를 집약한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린다.

취임 당시 신고한 재산은 1987년산 폭스바겐 ‘비틀’이 전부였다. 당시 28년째 낡은 ‘비틀’을 타고 다녔다. 경호원은 2명. 대통령 관저는 노숙자들 쉼터로 내주었다. 그리고 20㎞ 떨어진 허름한 농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상수도조차 공급되지 않는 농장이다. 대통령 관저까지는 직접 차를 몰아 출퇴근했다. 업무가 끝나면 화초를 가꾸고 밭을 일궜다. 영상을 보면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4·15 총선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다.

또 무히카는 월급 가운데 90%를 빈민 주택기금으로 기부했다. “사람들은 나를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가난한 대통령이 아니다. 부자들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나머지 시간은 나를 위해 쓸 수 있기에 부자”라고 덧붙였다. 보여주는 삶이 아닌 실천하는 삶이다. 자식을 특혜 채용하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국회의원, 가짜 스펙을 만들어줘 중도 하차한 장관까지. 우리 정치권이 보여준 민낯과 대조되는 언행일치의 삶이다.

무히카는 2015년 3월 퇴임할 때까지 줄곧 진솔한 행보를 견지했다. 많은 이들은 그가 오랜 감옥 생활을 한 탓에 이념 편향적인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념과 증오를 내려놓았다. 대신 실용적인 정책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포용 정책을 균형 있게 추진했다. 특정한 이념에 매몰된 우리 정치권에 신랄한 반면교사다. 정쟁으로 날이 새고, 특권과 반칙을 일삼는 우리에게 무히카는 잘 닦인 거울이다. 그를 통해 우리도 이런 정치 지도자를 갖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덕분에 우루과이는 무히카 집권 당시 매년 5.5%대 높은 경제 성장을 이뤘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만8100 달러, 남미 최고 수준이다. 부정부패도 낮다. 2012년 국가 투명성은 세계 20위였다. 그해 한국은 45위였다. 무히카는 2013년, 2014년 연거푸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세계 최고의 대통령’에 이어 ‘2014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타임)’에도 선정됐다. 퇴임 당시 지지율은 무려 65%. 연임도 가능했지만 그는 농장으로 돌아갔다. 정치인 한 명의 일화로 지나치기엔 우리 정치권이 처한 현실은 비루하다.

우루과이 인구는 350만명에 불과하다. 결국 훌륭한 정치 지도자 한명은 경제력, 국방력을 뛰어넘는다. 무히카는 “우리가 틀렸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잘못된 정책을 인정하고 바꾸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말은 또 어떤가.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는 거리가 없어야 한다. 대통령을 지나치게 받드는 풍조를 없애야 한다.” 권위주의에 매몰된 우리에겐 죽비와 같다. 의전과 특권에 찌든 정치인들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무히카는 대화와 협치, 공정한 기회를 강조했다. 그는 “최악의 협상이 최선의 전쟁보다 낫다”며 대화와 타협을 중요시했다. 타협을 굴복으로, 다수결을 정의로 착각하는 한국 정치에 찬물과 같다. 또 그는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기회”라며 공정을 말했다. 우리사회는 지난해 진영으로 갈려 몸살을 앓았다. 특권과 반칙이 일상화된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분노였다. 공정한 기회는 최대 화두다.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 한 한국사회는 한 걸음도 나가기 어렵다.

많은 이들은 무히카 대통령이 보여주는 온화한 표정에 놀란다. 독방에서 12년을 보낸 얼굴이라고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표정을 얻으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4·15총선에 나선 정치인들이라면 호세 무히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우루과이 정치인을 통해 정치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당선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 국회의원이 되기보다 어떤 정치를 펼칠지 가다듬는 게 우선이다. 호세 무히카를 알고 난 뒤 우루과이에 가고 싶어졌다.

 

[호세 무히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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