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2020년대 대한민국 콘텐츠 경쟁력 높일려면 1990년대적 역동성을 소환하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실장
입력 2020-01-27 15:45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노창희 실장]



2019년 내내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었던 문화적 현상은 BTS 열풍과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의 연이은 수상소식이었다. 2월 달에 정규 4집을 발표할 예정인 BTS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고, 작품상을 포함하여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기생충>에 대한 관심도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BTS와 <기생충>을 둘러싼 반응이 글로벌한 차원의 관심으로 인해 더욱 고조된 것이라면 국지적인 차원에서 2019년 하반기에 가장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던 것은 양준일이었을 것이다.

시대를 잘못 만나 아쉽게 잊혀 버린 전위적인 아티스트로 평가하건 지드래곤과 닮았다는 이유로 과대포장 되었다고 비판하던 간에 <슈가맨3>에 출연한 이후 양준일이 불러일으킨 반향이 크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양준일이 2019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리베카>를 싱글 앨범으로 발표한 시점이 1991년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90년대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은 세대이고 여전히 내 취향은 그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90년대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대중문화가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한 시기였을 것이다. 1987년 형식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과거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한 많은 스타들이 쏟아져 나왔다. <쉬리>와 같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등장하며 80년대 외화 위주였던 영화시장에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가 힘을 얻기 시작했던 것도 90년대 부터였다.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와 같이 아직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데뷔했던 것도 90년대였다. 최초의 한류 드라마라고 불리는 <사랑이 뭐길래>가 제작되고 중국에서 인기를 얻었던 것도 90년대였다. 한류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시대적 사조로 보건, 대중문화 패러다임에 관한 논쟁으로 보건 포스트모던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시기이기도 했다(나는 근대이던 모던이던 포스터모던이건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혹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후 30여년이 흘렀다. 문화적 활력이 넘쳤던 90년대는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사회가 재편되어 가는 과정에서 겪은 변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90년대 이후 그만큼의 문화적 활력을 보여준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21세기를 전후하여 계급적 격차가 벌어지고 사회적 불안도 급증하였다. 이동진과 신형철이 지적한 것처럼 <기생충>은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상징하는 중간계급과 문광의 가족(이정은 분)이 상징하는 최하층계급의 ‘불안’이 불러일으킨 갈등에 관한 서사로 볼 수도 있다(이동진, 「기생충」,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신형철, 「정치적 수치심의 발명: 감정의 윤리학을 위한 서설2」, 『문학동네』, 2019년 가을호).

문화적 활력이 90년대에 비해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분야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으로 부상하였고, K-pop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기생충>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대한민국 영상콘텐츠 수준은 글로벌한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성과들에는 90년대적인 것이 남긴 긍정적인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다. 국내외에서 2020년대에 미디어 분야는 더욱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OTT 스트리밍 시장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고, 5G와 같은 네트워크 고도화가 가져다 줄 변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적 발전으로 인해 미디어 분야는 다른 분야와 연관성이 높아져 외연이 계속 더 확대될 것이다.

2020년대 대한민국에서 미디어 분야가 기대에 부응하는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의미 있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편리하고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기대하는 이용자들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이용자에게 제공해야 할 복지의 수준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혁신할 수 있는 정책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글로벌 사업자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우리 사업자들이 그들과 경쟁하기에는 여전히 규모와 경쟁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

90년대적인 것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이고 90년대가 발산하는 에너지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제 2020년대로 접어들었다.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기술적으로 현재의 환경에 효율적으로 적응하면서 대한민국만의 고유한 특장점을 만들어 나가며 혁신해야 한다. 콘텐츠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대한민국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극대화면서 글로벌화 경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효율적인 투자방식에 대한 고민과 글로벌한 수준의 콘텐츠 제작을 위한 투자 규모 확대가 수반되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과 콘텐츠 및 서비스의 시너지 창출은 2020년대의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1990년대적인 것은 끊임없이 소환될 것이다. 2020년은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미래의 30년을 준비하는 해가 될 것이다. 지나온 30여년 간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에너지는 무엇인지, 극복해야 할 것은 또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2020년에 1990년대적인 것과 2020년대적인 것의 역동적인 조우가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