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애자일 경영과 위대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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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관 기자
입력 2020-01-2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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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새해를 맞아 발표된 주요 대기업의 신년사를 보면 조직을 '애자일(agile)'하게 만들겠다는 언급이 많다. 애자일 경영은 가장 최근의 경영 트렌드로 보인다. '애자일'이란 영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민첩한', '기민한'이다. 애자일 경영은 '속도'를 강조한다. 급변하고 불확실하며 복잡하면서 모호한 시대에는 조직도 민첩하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적자생존은 과거의 생존전략이고 오늘날은 속자생존(速者生存), 즉 빠른 자가 살아남는다고 한다.

애자일 경영 이전에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위대한 기업' 연구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짐 콜린스와 모튼 한센은 '위대한 기업의 선택(2011)'에서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니까 결정도, 행동도 '빠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파멸을 자초하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이들은 무엇이든 빨리 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믿음이야말로 '뿌리 깊은 미신'일 뿐이라고 한다. 그보다는 "언제 빠르게 움직여야 할지, 언제 그러지 않아야 할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새해 벽두부터 글로벌 정치경제 상황은 한마디로 '오리무중'이다.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어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미국·이란 간의 분쟁,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 북한 핵문제와 같은 대외적인 문제에 더하여 국내도 4월 총선 등으로 어수선할 것이다. 이처럼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은 올해 11월 미국 대선 때까지도 지속될 것이다. 당면한 글로벌 정치경제적 사건의 결과는 사전에 예단하기 어렵다. 이런 때일수록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는 조직역량이 중요하다. 새해 벽두부터 수많은 기업이 애자일 경영을 하겠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다. 대신에 조직을 민첩하게 만들어서 상황 적응적으로 적절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애자일 경영은 속도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하는 방법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지식경영 책임자로 일했던 스티븐 데닝은 애자일 경영 패러다임을 작은 팀의 법칙, 고객의 법칙, 네트워크의 법칙으로 요약했다. 혁신을 위해서는 문제를 작은 단위로 세분화해서 소규모의 자율적인 기능혼합팀이 맡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작은 팀의 법칙이다. 고객의 법칙은 시장의 권력이 판매자에서 구매자(=고객)로 이동했기 때문에 고객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 조직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야 민첩하고 기민한 조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네트워크의 법칙이다. 애자일 경영은 이 세 가지 법칙으로 이루어지며, 이 세 가지 법칙이 애자일 조직의 근간이라고 한다.

'위대한 기업'의 특성과 '속도'를 강조하는 애자일 경영은 얼핏 보면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애자일 경영의 세 가지 법칙은 '위대한 기업'의 속성과도 다르지 않다. 만약 애자일 경영을 도입하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영어 단어의 사전적 의미인 '속도'를 중시할 것인지 작은 팀, 고객 우선, 네트워크와 같이 애자일 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세 가지 법칙을 중시할 것인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한다. 애자일 경영에서 말하는 '속도'는 세 가지 법칙이 조직에서 구현될 때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새해에는 애자일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한 건설기업도 꽤 있다. 건설기업은 관료제적 조직구조를 근간으로 고객보다는 내부를 우선시하면서, 네트워크보다 파편화된 조직 단위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 최근 들어서는 건설기업도 직급 파괴, 호칭 파괴 등을 추진하면서 애자일 조직을 만들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단순히 직급을 한두 단계 축소하고, 호칭을 부장이나 차장 대신에 '○○○프로' '○○○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애자일 조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의사결정과 실행의 속도만 빠르게 높이다가는 남보다 더 빨리 망할 수도 있다. 애자일 경영을 위해서는 조직운영 방법론에 내재된 사고방식과 철학을 조직구조와 문화에 체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만 애자일 경영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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