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지금의 북한,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게 통일의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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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입력 2020-01-17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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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어릴 적, 우리의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서슴없이 통일이라 답했던 시절이 있었다. 통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마치 영어로 HOW ARE YOU? 라고 누가 물으면, 습관처럼 I’M FINE, THANK YOU. AND YOU? 라 되묻던 것처럼 말이다. 그 당시 반공교육은 북한을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고, 빨갱이와 도깨비가 사는 곳으로 묘사하였기에 오히려 통일이 되면 빨갱이와 도깨비와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하였다. 본인에게 있어 유년시절의 통일은 그러한 느낌이었다.

어렸을 적 받았던 교육의 효과는 매우 놀라웠고, 입으로는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진정으로 통일을 꿈꿨던 적은 없었다. 북한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과 함께 텔레비전을 통해 평양의 모습을 보면서 북한이 책에서 배운 것처럼 머리에 뿔난 도깨비도 빨갱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북한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시대가 변하며 통일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 우리나라의 통일정책은 그동안 햇볕정책, 비핵·개방·3000정책 등 한반도 신뢰 강화를 위한 다방면의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전 정부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표현하고 현 정부에서는 남북 협력과 통일에 대한 희망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작년 평양에서 열린 북한과의 월드컵 예선 축구경기를 우리는 TV중계를 통해 볼 수 없었다. 선수단 역시 평양에서의 1박 2일간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지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21세기에 전세계에서 대표팀 축구경기를 TV중계로 볼 수 없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와 뜻 모를 폐쇄적 행보는 다시 남북간의 관계를 의심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분단이라는 현실은 오랜 시간 남북간의 적대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반공교육은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좋은 선전도구였으며, 간간이 미디어를 통해 제시되는 북한의 실상은 왜곡된 인식을 심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북한에 대한 제한된 정보는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오해를 키웠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 해도 어느 순간 우리 마음에서 나타나 의심하게 하였다.

그러던 내가 다시 통일을 염원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과거와 같은 반공교육에 의한 북한 체제전복의 통일이 아니다. 부끄럽게도 최근 인기리에 방송 중에 있는 모 드라마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재벌가 영애와 북한군 장교 간의 로맨스는 판타지에 가깝다 하더라도 현 북한의 실상에 대한 부분은 많은 고증과 자료 검토를 통해 가장 최근의 북한을 보여주고 있다는 기사는 새로운 설렘을 가져왔다. 비록 세트와 CG로 재현된 가상의 북한임에도 여느 평범한 우리네 마을과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이들 역시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다.

헨리여권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권은 무려 전세계 189개국을 무비자(무사증)로 갈 수 있다. 이처럼 전세계 어디나 통하는 여권으로도 갈 수 없는 나라 중 하나가 아주 가까운 곳, 바로 북한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드라마를 통한 작은 관심이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북한 사투리에 대한 내용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북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드라마 속 그들 역시 몰래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듣고, 한국의 드라마를 보며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을 사고 판다.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 이후 북한은 여전히 우리의 70년대 모습 같아 보이지만 북한 역시 2009년 이후 과학기술 보급사업의 강화로 인해 현대화되었다. 더 이상 이들이 사용하는 손전화(휴대폰)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과거 북한에 대한 접근방식은 개조가 필요하다. 이번 정부의 대북정책은 과거 60년 넘게 지속된 불안정한 정전체제의 변화를 꾀하며, 항구적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남북이 공존·공영하는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의심보다는 새로운 성장 동력의 창출과 더불어 함께 잘사는 남북 경제공동체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 반공의 프레임이 아닌 공동체로의 변화이다. 학습(學習)은 본능적인 변화인 성숙과는 달리, 직간접적 경험이나 훈련에 의해 지속적으로 지각하고, 인지하며, 변화시키는 행동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과거 그대로에 매몰되어 있다.

결혼을 위한 시작은 서로를 알고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통일의 시작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북한의 수요를 보면 4차산업혁명기술과 같은 미래지향적 기술이며 주변 개도국의 사례처럼 퀀텀점프(quantum jump) 할 수 있는 기술과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남북 교류협력은 국방력 증가라는 의심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으며, 우리의 기술과 서비스가 더 뛰어나고 이미 완성되었다는 전제하에 북한에 적용하고 개발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수립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북한의 변화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리 중심에서만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글로벌공급망(international supply chain)에 참여시키는 것도 좋은 접근방법이다. 이미 전세계 무역 거래의 절반 이상은 글로벌공급망이 차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수준을 인정받을 수 있는 품질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대외 무역에 참여할 수 없다. 이미 우리나라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개도국 및 저성장국가를 글로벌공급망에 참여시킨 경험이 있으며, 지금의 그들은 높은 성장률을 이루고 있다.

상대를 조금씩 알아가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자체가 접근방법의 새로운 시작이며, 최종 결과에 도달했을 때에 대한 기대로 설레게 한다. 우리의 소원은?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 멀지 않은 미래 드라마와 같이 판타지한 결과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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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여권지수 (The Henley Passport Index)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여권 소지자가 무비자 혹은 도착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목적지의 수를 반영하여 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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