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업 꿈꾸던 청년의 세 번째 도전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스타트업이 세상에 등장했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2의 배달의민족을 꿈꾸며 열정을 불태우는 젊은 창업가부터,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 조용히 퇴장하는 기업까지. 법인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시간은 그들 ‘인생’의 전부지만, 대부분 시간은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조용히 흘러갑니다. ‘스타트人’에서는 숫자가 아닌 속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소리소문없이 창업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스타트업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편집자 주]


새해가 밝았다. 새해엔 항상 새로운 목표가 따라붙는다. 새 기분, 새 마음가짐으로 저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도전이 시작된다.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 힘도 필요하다. 한국인의 힘은 밥에서 나온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쌀밥을 숟가락에 가득 담으면 새로운 길을 나설 힘이 생긴다.

‘그랜마찬’은 2020년 경자년을 여는 ‘스타트, 人’ 주인공이다. 사내식 정기 배송 스타트업으로, 매일 직장인들에게 밥을 전달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에게 알차게 차린 밥 한끼로 힘을 불어 넣는다.

구교일 그랜마찬 대표를 만난 건 지난해 12월 초였다. 사무실은 식자재의 ‘성지’ 가락시장 옆 먹거리창업센터에 위치했다. 오전 9시 30분에 도착하니 구 대표와 디자이너가 업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개발자 팀원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도시락을 만드는 주방은 성수동에서 분리해 운영했다. 위생 문제로 성수동 주방은 취재하지 못했다. 대신 구 대표와 인터뷰를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
 

 


구 대표는 2016년 5월 반찬가게 플랫폼을 운영하다 사업을 접었고, 같은 해 12월 반찬 택배 배송 서비스에 도전했다가 이듬해 사업을 정리했다.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사내식 정기 배송을 들고 다시 창업했다. 3년 동안 두 번의 실패를 맛보고, 세 번째 도전을 나선 셈이다. 그가 창업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대학생 때부터 창업을 하고 싶었어요. 사실 30살이 되기 전에는 한번 해보고 싶었죠. 인생을 길게 사는데 언젠가는 창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왕 경험할 거면 부담 없이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과거 실패했던 사업은 수요 자체가 적었던 것 같아요. 홍보도 어려웠고요. 서비스를 접었을 당시를 돌이켜 보면 냉정하게 생각해서 조금 더 빨리 정리해야 했다는 아쉬움도 있어요. 두 달간은 아무 일도 안 한 시기가 있었거든요. 모든 걸 버리고 나오는 게 쉽지 않아요.“

현재 그랜마찬 오피스를 통해 제공하는 사내식 정기 배송도 시장 내 유일한 서비스는 아니다. 한때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IT업체에 사내식을 공급하기도 했지만, 유사 업체가 많아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자연스레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렸다. 한식의 특성상 생산 효율화가 쉽지 않고, 식단을 다양화하거나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어려울수록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구 대표는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제공하고 싶었던 서비스에 주력하기로 했다. 그는 최근 넥스트드림엔젤클럽 패밀리데이에 참석해 “영업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인 무인판매기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제품 데이터를 쌓아서 자체 자체상표(PB) 상품을 만들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도 맡겨서 생산하는 방향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구교일 그랜마찬 대표가 지난해 말 진행된 넥스트드림엔젤클럽 패밀리데이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넥스트드림엔젤클럽]


점심시간이 됐다. 직장인들에게 도시락을 배송하는 업체이니 점심 메뉴도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자장면 집 아들이 자장면 안 먹잖아요. 초창기 메뉴 개발할 때는 점심에도 도시락을 먹었는데, 지금은 팀원 각자가 알아서 해결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점심 메뉴를 자장면으로 정했다. 탕수육도 시켰다. 밥을 먹으면서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택한 창업, 뒤따른 실패, 그리고 재도전.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 대표는 “부모님이 사업을 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네 갈 길은 네가 가라’ 이런 주의여서 간섭이 없었고요. 단, 언제까지 사업할지 시간을 정하고, 얼마만큼 할 것인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팀원들에게 직접) 안 들어봐서 모르겠지만, (불안감은) 있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3초가 흐른 뒤 같이 밥을 먹던 두 팀원이 동시에 대답했다.

“(불안감) 있죠. 매일매일.”

곧이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업이 망한다고 해서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니까, (언제든지) 재취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있어요. 열심히 해보자, (사업이) 안 되도 죽는 건 아니니까. 그런 자신감이 있어요.”
 

[그랜마찬이 배송하는 한끼 식사. 돼지짜글이(왼쪽)와 돈LA갈비구이도시락.(사진=그랜마찬 홈페이지 캡처)]


그랜마찬은 최근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3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를 활용해 무인신선식품냉장고 연구개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향후 30~40대의 무인판매기를 설치해 이를 사용하는 소비자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주방이 위치한 성수동으로 사무실 이전을 준비 중이다. 아직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그랜마찬의 잘 차려진 밥상은 지금 이 순간도 배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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