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구자경 회장 17일 영면…영결식 없이 마지막 길도 간소하게(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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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입력 2019-12-1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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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발인이 17일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간소하게 엄수됐다.

이날 오전 8시 상주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손자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유가족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고인에 대한 마지막 추모 시간을 가졌다. 발인 전 행하는 영결식은 생략됐다.

비공개 발인식에는 LS 구자열 회장, GS 허창수 명예회장 등 범LG가 주요 기업인들도 함께했다. 구 명예회장의 아들 내외, 딸 내외, 직계 손주, 구씨·허씨 친척들 순으로 자리해서 묵념과 추도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추도사를 맡은 이문호 LG공익재단 이사장은 "LG의 20만 임직원이 가슴에 새기고 있는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와 '인간 존중의 경영'이 바로 회장님의 경영사상이었다"며 "회장님은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큰 별이셨다"고 말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99년 LG화학 여수공장을 방문해 시설 현황을 살피고 있다.[사진=LG그룹 제공]

지난 14일 94세를 일기로 타계한 구 명예회장은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50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그는 화학과 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경쟁력 강화에 힘썼다.

생전 수시로 공장을 직접 찾을 만큼 현장에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별세 이후 재계 관계자들이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위대한 기업가"라고 조의를 표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다.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할 정도로 파격적인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의 열정에 힘입어 8개 계열사에 연간 매출이 270억원이었던 LG는 재계 4위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구 명예회장이 회장에서 퇴임하던 무렵 LG의 계열사는 30여개에 매출액 또한 38조원에 육박했다. 임직원 또한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불어났다.

열정적으로 혁신에 주력한 경영인으로서의 측면과 달리 '자연인 구자경'은 누구보다 소탈하고 따뜻했다. 구 명예회장은 1995년 재계에서 처음으로 회장직을 스스로 후진에게 물려주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은퇴 후에는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한 농장에 머물면서 버섯 연구에 몰두하는 등 소박한 삶을 영위했다.

사치나 허세를 위해 낭비하는 것을 큰 잘못으로 여긴 구 명예회장의 생활신조는 마지막까지 지켜졌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가족장 형태의 비공개 4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례기간 중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친인척을 제외한 조문객만 200명가량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이 고인을 추모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도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전한 한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빈소를 찾았다.

이날 운구 차량은 고인의 발자취를 되짚어 주요 장소에 들르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곧바로 장지로 이동했다. 구 명예회장은 화장 후 안치되며, 장지 역시 비공개다. 경기도 모처에서 잠들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오전 8시경 구자경 LG 명예회장 발인식이 비공개로 치러진 가운데 유가족과 참석자들이 구 명예회장의 마지막 모습을 배웅하고 있다.[사진=LG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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