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한 자연인' 구자경 LG 명예회장, 은퇴 후에도 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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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신 기자
입력 2019-12-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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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구자경 명예회장은 25년간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대기업 회장이었지만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허례·허식 없이 간소한 삶을 즐겼다.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대신 자연을 벗삼아 은퇴한 경영인으로서의 삶을 보내 재계에 귀감이 됐다. 형식상으로만 경영에서 물러난 게 아니라 실제 후진들의 영역을 확실히 지켜줬다. 선친인 고 구인회 창업주가 생전에 강조한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라는 말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고인은 은퇴 후 충남 천안시 성환에 위치한 연암대학교의 농장 내 사무실에 머물렀다. 이 사무실은 그룹의 명예회장이 사용하는 공간이라기보다 공사장이나 작은 상가의 사무실로 여겨질 만큼 수수하고 소박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구 명예회장은 버섯 연구를 비롯해 된장·청국장, 만두 등 전통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자연과 어우러진 취미 활동에 열성을 쏟으며 하루하루 바쁜 일정을 보냈다고 한다.
 

은퇴 후 버섯 재배를 연구 중인 구자경 명예회장. [사진=LG그룹 제공]

구 명예회장의 취미 생활은 교직 생활 때부터 손을 댄 나무가꾸기로 시작해 난초, 버섯연구까지 자연과 벗삼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의 연속이었다.

그는 퇴임 후 "내가 가업을 잇지 않았다면 교직에서 정년을 맞은 후 지금쯤 반듯한 농장주가 돼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할 만큼 자연에 대한 애착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남(上南)이라는 아호를 지은 것도 구 명예회장의 따스한 마음 씀씀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인이 문중에서 항렬이 낮지만 나이가 많아 다른 사람들이 고인을 부를 때 불편해할 수 있다고 판단, 스스로 아호를 지었다. 

모교 후배들도 살뜰하게 챙겼다.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지수초등학교 학생들이 서울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떠날 때는 사진을 같이 찍고 선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린 학생들이 장거리 여행에 지쳐 멀미할 것을 걱정해 직접 멀미약을 챙겨주기도 했다.

은퇴 후에도 고인은 현역 시절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왔다.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는 기술 개발에 매진했던 경영인의 모습 그대로였고, 자연인으로서 은퇴한 경영자의 모범 그 자체였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고인은 LG그룹에 들어와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닦았고, 은퇴 후에는 자연인 생활을 하다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 [연합뉴스]

구자경 명예회장은 시련 많은 현대사 속에서도 기업경영의 정도(正道)를 잃지 않았다. 언제나 남보다 앞선 생각, 과감한 결단으로 우리 경제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던 큰 기업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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