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왜 해외언론이 한국 법원과 판사에 주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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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경 기자
입력 2019-12-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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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이팝, 삼성 재판 등에 해외언론 관심 급증

  • "같은 사건에서도 지나치게 형 낮아"…판사의 진행 문제도 지적

최근 한국 법원과 한국법원의 판사들이 잇따라 외신을 장식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관대한 판결이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있다. 외신들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사실상 디지털 성범죄를 방조하는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가 서울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강혜련 씨가 쓴 ‘한 K팝 스타의 죽음은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여성을 어떻게 좌절시키는지를 보여준다(A K-pop star’s death is the latest reminder of how Korea’s justice system fails women)’라는 글을 게재했다.

11월 28일 워싱턴 포스트에 게재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강혜련 씨의 글 A K-pop star’s death is the latest reminder of how Korea’s justice system fails women. [사진 =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강씨는 “한국에서 구하라의 죽음으로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분노가 일고 있고, 사법시스템이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또 "구씨가 죽은 뒤 두 명의 이름이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최종범과 오덕식( Choi Jong-bum and Oh Duk-shik)'이라고 밝혔다. 구씨의 전 남자친구인 최씨와, 최씨의 불법촬영 여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0단독 오 부장판사의 이름이다.

특히 오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뒤는 최씨에 대해 폭행 등의 혐의는 유죄를 선고했지만, 8월 (불법 촬영 혐의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남성 판사“라고 소개했다.

또 "비평가들은 (이처럼) 가벼운 형량이 남성들이 불법촬영을 또 저지르도록 만든다고 비판하고 있다(critics have decried the light sentencing, believing that it motivates men to repeat the offenses)"며 “경찰 추산에 따르면 불법촬영 관련 입건 수가 2013년~2017년에 약 6000건씩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오 부장판사는 8월 최씨의 1심 재판에서 상해·강요·협박·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핵심 쟁점이었던 동의가 없는 촬영 여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또 재판 과정에서 “영상의 내용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촬영물을 본 것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도 2차 가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 "형량 지나치게 낮아"

현행 한국의 성폭력처벌법에서는 상대의 동의 없이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찍거나 퍼뜨릴 경우 징역 5년 이하 또는 3000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명확한 양형기준이 부재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처벌이 국제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일 ‘글로벌 아동 음란물 수사가 한국의 사법 강화를 압박하다(Global Child-Porn Sting Puts Pressure on South Korea to Toughen Laws, By SEOUL Andrew Jeong and Na-Young Kim)'라는 기사를 통해 '아동 음란물 20만 건을 유통시킨 불법 다크웹 운영자가 고작 1년6월형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 아동성범죄나 아동 등장 음란물은 종신형까지 선고하는 서구에 비하면 턱도 없는 처벌이라는 반응이다.

앞서 10월 16일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2017년 9월부터 미국·영국 등 총 32개국 수사기관이 다크웹 관련 국제공조 수사를 했고, 32개국에서 불법 음란물 이용자 310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한국인은 223명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논란이 됐던 것은 해당 사이트 운영자가 한국인이라는 점이었다.

지난해 한국 경찰에 검거된 음란물 사이트 운영자 손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2심에서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5년 7월부터 약 20만 건의 아동 성착취물을 제공하고 비트코인 약 4억 원어치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 법무부가 손씨의 강제 송환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WSJ는 손씨가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은 것을 두고 다른 나라에서는 사건 관련자들에게 중형 처벌이 이뤄졌지만, 연관이 가장 깊은 한국에서 처벌이 약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WSJ은 "(한국의) 아동 포르노의 생산과 판매에 대한 최대 형량은 국제적인 기준과 비슷하지만 실제 형량은 그렇게 내려지지 않는다(While the country’s maximum penalties for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child pornography are on a par with international standards, the penalties for possession of child porn aren’t)"고 했다.

실제 같은 사건에서 미국은 해당 사이트에서 영상을 1회 다운로드한 혐의를 받는 남성에서 징역 70개월을 선고하고 보호관찰 10년을 명령했고, 아동 성착취 영상을 입수해 소지한 남성에게도 징역 5년, 보호관찰 5년을 처분했다.

한국의 처벌이 지나치게 낮다는 것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백광균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판사가 '디지털 성범죄와 양형' 심포지엄에서 밝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가해자는 1111명이다. 이중 실형 처분을 받은 것은 8%인 89명에 불과했다. 집행유예가 457명(41.1%), 벌금형이 539명(48.5%)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다. '아동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한 손모씨와 사이트 이용자들의 합당한 처벌을 원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금세 20만 건의 동의를 얻어냈다. 게시자는 “미국에서는 영상을 한 번 내려받은 사람이 1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한국에서는 사이트 운영자가 고작 18개월형을 선고받았다”며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학대하며 이윤을 만들었다는 반인륜적 범죄가 어째서 한국에서는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며 범죄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인가”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11월 30일 Global Child-Porn Sting Puts Pressure on South Korea to Toughen Laws 기사.[사진 = 월스트리트저널 홈페이지 캡처]


프랑스 보도전문 채널인 프랑스24(FRANCE24)도 6월 20일 ‘한국인 10만 명이 아동 강간 사건 판사의 파면을 요청했다(100,000 South Koreans call for judge to be sacked over child rape case)’는 보도를 통해 성범죄 형량 문제를 짚었다.

서울고법 형사9부 한규현 부장판사가 1심보다 아동 강간범의 형을 줄인 것을 두고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24는 “우리나라 사법부는 가해자들에게 너무나도 관대합니다(Our judiciary is extremely lenient towards the sex offenders)”라는 청원에 있는 문구와 함께 한국의 여성 운동가들과 대중이 항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부장판사는 6월 13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간)등 혐의로 기소된 전 보습학원장 이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프랑스24의 6월 25일자 100,000 South Koreans call for judge to be sacked over child rape case 기사. [사진= 프랑스24 홈페이지 캡처]

◆ 재판 진행과정도 의문

한국 판사의 재판 진행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미국 블룸버그(Bloomberg)통신은 10월 25일 자로 '억만장자인 삼성의 상속자가 재판에서 판사의 강의를 견디다(Billionaire Samsung Heir Endures Lecture From Judge in Bribery Trial, By Sohee Kim)'라는 제목의 보도를 냈다.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가 진행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공여 혐의 사건 파기환송심의 첫 공판 기일을 다룬 기사다.

해당 재판에서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1993년 독일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며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냐"며 비전 제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판과 무관한 질문'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삼성전자 상속자인 이 회장이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뇌물 혐의에 대해 소명하려고 법정에 왔지만, 앉아서 어떻게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을 잘 운영하는지에 대한 강의만 들었다(Samsung Electronics Co. heir Jay Y. Lee returned to court Friday to answer bribery charges that could land him in jail, only to sit through a lecture about how he can better run Korea’s largest company)고 표현했다.
 

블룸버그통신의 10월 25일 Billionaire Samsung Heir Endures Lecture From Judge in Bribery Trial 기사. [사진= 블룸버그 홈페이지 캡처]


법조계 관계자들은 재판과정에서 판사의 재량권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과도한 점도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소송을 주로 하는 한 변호사는 “미국에서도 판사들 재량이 다 있는 편”이라며 "당부를 하거나 형량을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허윤 대한변협 수석대변인은 “법조계에서도 재판 진행 과정에서 판사의 재량권이 과도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며 “특히 판사가 재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보정을 명령하거나 할 수 있도록 법에서 명시하고 있지만 정확한 기준이나 한계가 없어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형량을 판단하는 시스템에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기태 미국 뉴욕주 변호사는 "선진국이냐 아니냐는 얼마나 시스템이 잘 갖춰있는가를 두고 판단하는데 한국의 사법시스템은 조금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미국에서는 재판과정에서 법과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 형량을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은 재판장에 따라 재판진행·형량이 많이 달라지곤 하는데 이를 막을 제도적인 장치가 부족하다"며 "이런 행태는 법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한 재판을 받을 수 없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 마약 수사를 봐도 보통 구속수사를 많이 하는데 재벌가 사건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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