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지소미아와 방위비 분담, 對美외교의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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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19-11-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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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평택에 자리 잡고 있는 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하면 우선 그 엄청난 규모에 할 말을 잊게 된다. 서울부터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나오면 바로 맞게 되는 이 기지는 미국이 해외에서 운영하고 있는 군 기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안으로 들어 가면 초대형, 최신식 건물들이 줄을 서 있고 장병들을 위한 훈련장, 그리고 숙소가 늘어서 있으며 여가 생활을 위한 18홀 골프장, 위락 시설, 운동장도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한 작은 도시가 들어서 있는 느낌이다. 영내를 돌아보며 느끼는 점은 과연 이 시설이 단지 북한만을 겨냥하여 건설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평택에서 바다 건너면 바로 위치한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마련이다.

미군 27,000여명이 한국에 주둔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물론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장기적이고 보면 날로 부상하며 미국의 초강대국 위치를 위협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한 미군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미국 정부가 전방위로 요구하고 있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한국으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다. 더구나 현재 부담금의 대 여섯 배 인상을 요구한다 하니 납득할 수 없다. 한국으로서는 이를 반박할 충분한 논리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 따르면 왜 미국이 한국 방위를 위해 그만큼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미국민들 사이에서 커져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점은 주한 미군을 통해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보다 안정적인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미국식 패권주의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위주의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질서가 유지되고 이를 통해 미국 기업과 미국 정부는 천문학적 규모의 직간접적인 혜택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런 점을 강력하게 미국 측에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평택 미군 기지 건설 비용 100억 달러 중 92%를 한국이 부담했고 올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작년보다 8.2 퍼센트나 증가해서 최초로 1조원을 초과했다는 점도 목소리 높여 강조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 정부가 기본적으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정부에 대해 저자세를 유지해 온 것과 일맥상통한다. 현 정부 출범 후 안보 외교 정책의 최고 우선 순위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이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트럼프 행정부에게 바른 소리를 하기는커녕 심하면 아첨하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동맹의 관계가 아니라 갑을 관계가 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비난도 들린다.

한국 정부가 미국 앞에서 갈수록 수세적으로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한일간 군사정보 보호협정, 즉 지소미아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 문제로 인해 일본이 취한 무역 규제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지소미아 파기를 선언했다. 지소미아 파기가 실제로 일본에 피해를 주는지 아니면 오히려 북한의 위협에 가장 취약한 한국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 정부는 이 조치를 감행했다.

한미일 삼각 동맹 체제를 통해 북한, 중국, 러시아의 위협을 관리하려는 미국에게 있어 이는 결코 반가운 조치가 아니다. 미국 밖의 상황에 크게 관심을 쏟지 않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 때문에 초기에는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미국의 반대 목소리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지소미아 파기 종료 시점이 다가 오면서 미국 행정부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소미아가 “지역 안보에 필수적”이라며 노골적으로 한국 정부의 조치를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일단 지소미아 문제를 원상태로 돌려놓고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를 철회하면 대미 협상에서 한국의 입지는 좀 더 강화될 것이고 이를 이용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좀 더 우월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지소미아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둘 다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보 문제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상호 연관성은 대단히 크다.

지소미아 원상 회복은 한국 정부로서는 한 마디로 스타일 구기는 일이 될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는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에 맞서 한국의 의지와 자존심을 보여주는 호기 있는 조치였는데 이를 철회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체면은 심히 손상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세계 도처에서 확산되는 배타적 민족주의로 인해 국제 사회는 날로 냉혹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체면 보다는 실익을 찾는 실용주의가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미국에 대한 한국의 태도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트럼프 행정부에 무조건 수세적으로 저자세를 취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국이 미국의 도움에 편승하고 무임승차한다는 인식을 바꿔줄 필요도 있다. 주한미군이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다 많은 미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구입하는 엄청난 규모의 무기 체계에 대해서도 알려야 한다. 그리고 한국이 미국의 장기적인 동아시아 안보 전략을 위해 얼마나 크고 견고한 미군 기지를 평택에 건설해 주었는지도 알려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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