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민주화? 글로벌 코리아? 수시로 변하는 한국 홍보의 핵심 키워드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입력 : 2019-10-17 18:06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필자는 최근 한국의 공공외교 역사라는 주제로 연구를 한 바가 있다. 공공외교란 타국의 국민들과 소통을 통하여 국익을 증진하는 것이니 다시 말하면 한국을 어떻게 해외에 알렸는가에 대한 역사 연구였다. 한국 정부의 해외 홍보 역사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 결과 재미있는 결과들이 나왔다. 한국 정부는 정부 수립 이후 70여년간 꾸준하게 세계를 향한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그 메시지는 한국의 변화 그리고 세계 정세의 변화에 따라 계속 변해왔고 진화해왔다. 이 지면을 빌려서 이러한 진화의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한국의 공공외교 역사를 크게 3개 시기로 나눴다. 48년 정부수립 후 72년 유신 선포까지가 첫 시기로 주로 안보에 관련된 공공외교 활동을 펼쳤다. 한국전과 전후 복구 사업, 그리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국제 사회의 지지와 지원을 호소하던 시절이었다. 주로 미국 등 우방을 겨냥한 소통 활동이었다. 두 번째 시기는 72년부터 98년 외환위기까지의 시절로 주로 경제 및 통상이 공공외교, 혹은 해외홍보의 주요 관심사였다.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홍보하고 교역을 확대하려는 시기였다. 대상은 중국을 포함한 교역 대상국이 주를 이뤘다. 다음 98년부터 평창올림픽이 있었던 2018년까지는 세 번째 시기로 주로 문화가 공공외교의 주 목표가 되었다. 한류가 확산되는 아시아와 그 이외 지역을 대상으로 성숙된 문화 국가의 모습을 알리기 위해 주력했다.

지난 수십년간 공공외교와 해외홍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사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서 필자는 위의 세 시기를 좀 더 세밀하게 여섯 개의 시기로 세분할 수 있었다. 첫 시기는 48년부터 60년까지로 이때 한국이 세계에 보낸 메시지는 국가 건설 (nation building)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고 그 후 전후 복구 과정에서 경제적 지원을 호소하는 것이 공공외교의 주 목적이었다. 현대적인 미디어나 소통 수단이 부재하던 시절이라 주로 인적 자산을 이용한 대인 소통이 주요 수단이었다.

두 번째는 60년부터 72년까지로 권위주의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국내외에 주창하는 것이 주 메시지였고 이 과정에서 북한과의 체제 경쟁, 정당성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시기였다. 이때는 북한이 남한보다 군사, 경제, 외교적으로 더욱 우위에 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유엔 등 국제 회의에서 남북한 표결 대결이 있을 경우 필사적으로 우리 체제의 승리를 위해 전방위 노력을 기울일 때였다. 아주 기본적인 소통 미디어인 출판물 등이 주로 이용되었다.

세 번째는 72년부터 88년까지로 세계에 보낸 핵심 메시지는 한국의 경제 발전이었다. 이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해외 언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뉴욕타임스나 뉴스위크 등 서방의 신문이나 잡지 등을 이용해 광고를 게재하고 호의적인 기사를 유도했다. 특히 88년 서울 올림픽은 전쟁의 참상을 극복하고 산업 강국으로 우뚝 선 한국의 모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계기였다.

네 번째는 88년부터 98년까지이고 이 시기에 외국에 보낸 메시지는 민주화였다. 직선 대통령이 취임하고 문민 정부의 출현으로 군사 정권을 종식하는 모습을 알리기 위해 해외 매체, 특히 국제적인 방송 매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CNN, BBC 등에 한국을 알리는 광고를 방영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민주화 후 일상화된 학생 데모나 노동 투쟁이 국제적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이는 결국 갈등의 과정을 거치며 민주화되는 한국의 모습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다섯 번째는 98년부터 2008년까지 시기로 이때는 날로 발전하는 한국의 문화가 핵심 메시지가 되었다. 케이팝을 필두로 한 한류의 바람이 아시아를 휩쓸기 시작했고 이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국가 홍보 슬로건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정부 차원에서 국가이미지위원회를 만들어 한국의 이미지 관리를 도모했다. 소통의 수단도 대중 매체의 단계를 넘어 인터넷, 홈페이지 등 디지털 매체로 진화해간 시절이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시기로 주 메시지는 글로벌 코리아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G20 서울 정상 회담 등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례가 늘기 시작했다. 과거 양자 외교에서 다자 외교로 한국 외교의 초점도 변해 갔고 이와 더불어 국제 사회에 공헌하는 한국의 모습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대외 원조, 평화 유지군 파견, 해외 봉사단 파견 등 국제 사회에서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주요 소통 수단도 SNS 등 쌍방향적인 디지털 미디어로 진화해서 세계인들과 보다 열린 소통과 관계 정립을 시도했다.

이러한 여섯 단계를 거치면서 한국의 공공외교는 점차 선진형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통의 메시지도 다양해졌고 소통의 수단도 점차 발전해 갔다. 그러나 한국만의 취약점도 많이 발견된다. 특히 정권이 변할 때마다 공공외교 및 해외 홍보의 기조가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점이다. 정책의 지속성 부재가 수없이 목격된다. 아울러 공공외교나 해외 홍보를 수행하는 정부 조직도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작은 정부, 큰 정부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조직이 해체되고, 부활되고, 합병되고, 분리되는 과정을 수없이 거듭한다. 이 과정에서 예산과 노력의 낭비가 되풀이되고 정책의 효율성은 심하게 저하된다. 세계가 주목하는 강력한 중견국으로 부상한 한국으로서는 필히 시정해야 할 과제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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