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탈지구화 시대 한국에서 자라나는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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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19-09-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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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입으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와 세계화 거부해선 안된다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지난 100년간 급변한 국제 관계로 인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피해와 혜택을 동시에 입은 나라일 것이다. 20세기 전반 한국은 최대 피해국 중의 하나였다. 열강의 각축 속에 나라를 잃었고 어렵게 독립을 쟁취하자마자 국가가 반 동강이 나서 비극적인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한국은 미국이 주도한 유엔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켰고 자유민주주의를 견지했다. 역시 미국이 주도한 세계은행 등의 차관으로 산업을 일으켰고 브레튼우즈 협약에 따른 국제 자유무역체제에 편승해서 수출 강국이 되었다. 이에 힘입어 짧은 시간에 민주주의도 이뤄냈다. 격동하는 국제 관계 속에 한국의 운명은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간 대표적인 국가이다.

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변화가 일어났을까? 20세기 초반 한국인들은 무지몽매하고 게을러서 나라를 빼앗기고 반도가 갈라지는 비극을 당했을까? 20세기 후반 한국인들은 심기일전하여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을까? 물론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지난 세기 국제 관계의 근본 질서가 변한 것이 더 큰 이유였다. 20세기 초반 약육강식의 현실주의 국제관계가 20세기 후반 보다 문명화된 자유주의로 바뀌면서 한국에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20세기 초 현실주의 국제관계 속에서 약소국의 운명은 가혹할 뿐이었다. 먹고 먹히는 처절한 제로섬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국력을 키우거나 강대국의 우산 속에 들어가 힘의 균형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한국은 국력 키우기에도 실패했고 강대국 힘의 균형을 파악하는 데도 실패했다. 쇠락하는 대륙의 힘에 기대면서 부상하는 해양의 힘을 좌시했다. 그 결과는 참혹한 식민 지배였다. 또한 강대국 편의 위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국토는 두 동강 나고 말았다.

반면 20세기 후반 국제사회는 한국에 상당히 관대했다. 마치 20세기 초 한국에 준 고통을 보상해 주려는 듯 한국을 도왔다. 한국전쟁 시 미국을 비롯한 15개 우방국 병사들은 듣도 보도 못한 아시아 작은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를 흘렸다. 당시 일본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은 19, 20세의 꽃다운 젊은이들로 한밤중에 영문도 모르고 바다 건너 공수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

한국이 받은 혜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쟁 후 폐허가 된 국토를 복구하고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한국은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었고 여기서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은행은 아낌없이 차관을 제공했다. 이 자금은 길을 닦고 항만과 공장,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쓰였다.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한국에게 이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일본과 수교 당시 받았던 배상금, 심지어는 베트남전쟁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자금까지 경제 발전에 쓰였다.

한국이 무역 대국으로 성장한 것도 국제 자유무역의 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기업들은 정부의 특혜적인 지원과 보조금, 환율 정책에 힘입어 해외 시장을 개척했고 때로는 덤핑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넓혔다. 지금이라면 허용될 수 없는 불공정 사례가 많았지만 1970, 80년대 국제사회는 관대하게 눈감아 주었다. 지금 중국에 가해지는 감시와 견제가 그 당시 있었다면, 한국의 비약적인 수출 증대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한국이 국제사회에 무조건 고마워할 수는 없다. 강대국들이 임의로 그어놓은 남북 분단선 때문에 아직도 한반도는 고통 받고 있다. 과거 관대하던 미국이 이제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많은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한국 경제 역시 외부의 충격에 취약하다. 1990년대 말 외환 위기가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현재의 포용적이고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한국에 피해보다는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를 증명하는 좋은 사례가 있다. 바로 휴전선 건너 북한이다. 전쟁 후 북한의 국력은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우월했다. 공장과 산업이 있었고 풍부한 전력이 있었다. 1960년대만 해도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한국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고 해외 공관 수도 훨씬 많았다. 그러나 주체라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고집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채로 수십년간 지내온 북한은 지금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다. 똑같은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는 두 체제가 이렇게 극명하게 달라진 것은 결국 대외 정책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한국에 많은 혜택을 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안타깝게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영국의 브렉시트에서 보듯이 민족주의적 보호주의, 고립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지속돼온 세계화 및 지구화가 이제는 탈세계화·탈지구화로 바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유엔이나 유럽연합(EU), 나토 등 자유주의의 근간이 되었던 국제 기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에 있어서도 세계무역기구(WTO)나 세계은행 등의 영향력이 전과 같지 않다.

이런 와중에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미국에 보다 리버럴하고 다자주의적인 행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대하는 정도일 것이다. 영국 등 유럽에서 대중 영합적인 민족주의가 쇠퇴하기를 바라는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한국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자신의 입으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와 세계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어쨌든 한국은 이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처에서 국제 협력을 부정하고 우방을 의심하며 우리끼리를 고집하는 민족주의가 자라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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