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나이테 짙은 도시 순천, 청춘의 활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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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은 기자
입력 2019-09-1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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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도시재생한마당 행사가 열리는 전남 순천을 찾았다. 순천은 본래 생태공원 '순천만습지'로 이름난 곳이지만, 몇 해 전부터는 정부의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더 많이 알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이 추구하는 주거복지 실현, 도시 경쟁력 회복, 사회 통합, 일자리 창출 등 정책 목표가 적합하게 실현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토교통부의 '지속가능한 도시 대상'을 한 지자체에서 세 번 받은 건 순천이 유일하다.

순천은 순천만을 보존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지난 2013년 정원박람회를 기획해 6개월간 운영했다. 순천만의 브랜드 가치를 형성했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하천(동천)으로 나뉜 원도심, 신도시간 불균형은 여전했다. 이에 도시재생이 절실하단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도시재생은 동네를 완전히 철거하지 않고 기존 모습을 유지하면서 도심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을 말한다. 집주인, 세입자 할 것 없이 실거주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순천의 도시재생은 생태, 문화, 역사, 사람, 이른바 '천가지로'(天街地路)라 불리는 네 가지 테마의 마중물 사업이 지탱하고 있었다. 마중물 사업은 지난해 5년차를 맞아 마무리됐다. 하지만 순천 도시재생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게 마을 주민들의 생각이다.

김이탁 국토부 도시재생기획단장은 "13개 도시재생 선도지역을 선정했지만 순천시는 다른 지자체 대비 배울 점이 많은 도시"라며 "빈집,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 일자리, 문화에 관한 여러 가지 요소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자랑은 말뿐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순천은 지난 2014년 187동에 달했던 빈집이 지난해 7동으로 줄었다. 40개에 달하는 사회적 경제기업도 육성됐다. 빈집을 활용한 청년창업 챌린지숍 43개소로 80개의 일자리가 파생됐고 청년창업 및 골목상점 25개소 개점으로는 76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유동인구(관광객)은 지난 2015년 26만명에서 2018년 43만명으로 뛰었고 일평균 매출액은 2014년 25만원에서 이듬해 27만8000원, 지난해엔 40만5000원까지 올랐다. 가장 중요한 주민 만족도는 2015년 72%에서 재작년 91%까지 올랐다.

순천이 도시재생 분야에서 타 지역 대비 앞서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탄탄한 주민역량이 있었다는 평가다. 모세환 순천 도시재생센터 센터장은 "순천은 2014년 도시재생 선도사업지로 선정되기 전부터 주민 자치를 통해 커나가는 역량이 어느정도 마련돼 있었다"며 "시민들의 수준이 이미 시청 계장급이라 우리끼린 주민 주도가 아닌 계장 주도라고 우스갯소리도 한다"고 말했다.

청수정[사진 = 윤지은 기자]

◆ 나이 많은 도시 순천, 청춘의 활력으로

순천이 어떤 식으로 일자리 창출 도시가 됐는지 보려면, 우선 새뜰마을 청수골에 위치한 '청수정'을 둘러볼 만하다. 청수정은 마을공방과 경로당이 있는 청수정 쉼터, 청수정 카페로 이뤄져 있는데 청수정 카페는 방치된 한옥 주택을 재생해 만든 한옥 카페에서 가정식 백반과 차, 오란다 과자 등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순천시가 매입, 리모델링한 공간을 재작년 1월 출범한 '청수정 협동조합'이 임차해 운영하고 있다. "장사가 잘 되느냐"란 기자의 물음에 모 센터장은 "출입문에 붙은 종이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으냐"며 웃었다. 출입문에는 '대기표는 카운터에 있습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새뜰마을은 순천에서도 노후도가 높은 지역으로 대부분의 일손은 노인들이다. 모 센터장은 "음식을 만드는 게 힘에 부치는 분들은 과자를 만들면 된다. 그마저 어려운 어르신들은 안내하는 일을 도우면 된다"며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니 다들 즐거워 한다. 일을 갖게 만드는 것 자체가 복지란 걸 체감하는 요즘"이라고 전했다.

청수정카페는 대지면적이 21평에 불과하다. 이 작은 카페에서 발생하는 공식 매출은 연간 1억2000만원에 달한다. 직원들은 월 100만원 내외의 임금을 가져간다. 그들은 "먹고 살 만큼은 번다"고 표현한다.

매출은 주로 어디서 발생할까. 모 센터장은 "청수정은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라며 "순천시내 다른 종류 사회적기업이 애정을 갖고 이곳을 찾는다. 상부상조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페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조합에 적립하거나 인건비로 소요한다는 설명이다.

청수정카페의 비전은 일자리 창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자리를 얻고 수익이 나면, 이를 다시 공동체에 돌려줘야 한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확고한 생각이다. 모 센터장은 "이 지역에는 조손가정 등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도 있다"며 "여기서 번 수익으로 그분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백반 한 상에 7000원 정도인데 이보다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을 두루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회적경제는 하루아침에 태동한 것이 아니다. 양효정 순천시 도시재생과장은 "주민들이 스스로 낸 아이디어를 실행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자 했다"며 "이를 통해 주민들이 역량을 기르고 마음 맞는 분들끼리 조직을 꾸려 사회적경제가 실현됐다"고 설명했다.

청수정은 어르신이 주축이 돼 꾸려가는 공간이라면, 이른바 '옥리단길'이라 불리는 핫플레이스는 청년이 중심이 돼 만들어가고 있다. 옥리단길은 '옥천'이라는 하천 주변을 일컫는데, 옥천변의 가게는 인테리어 센스나 음식의 맛이 이태원 경리단길 못지 않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가운데 '옥천'이라는 이름의 식당은 '귀뚜라미'라는 간판과 빈티지 인테리어가 주목받으며 젊은 인스타그래머들의 성지가 됐다. 옥천 외에도 △골목길 △고깃집 △암튼 △예쁘다 △호이테라면 △골목식당 △골목책방 △팡파르 △동네인포집 △심상 △랑께 △사화빈 등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시선을 모은다.

사회적 경제조직은 이 밖에도 다양한 형태로 구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양 과장은 "식당이나 집수리 사업 등을 많이 추천했는데, 요즘은 문화기획 쪽으로 권하는 편"이라며 "청년들이 청년 계층을 모아 여행을 돕는 유형의 사회적 경제조직이 늘고 있다. 순천에서도 도시여행협동조합이 외지인 대상 안내를 맡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안창작마당[사진 = 윤지은 기자]

◆ 커뮤니티 시설도 활기 한몫

어르신들이 청춘의 활력을 띠게 된 데는 커뮤니티 시설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향기나는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주민자치위원장 A씨는 "순천은 나이든 분들이 사는 곳이라 이런 공간(도서관)이 꼭 필요하다"며 "순천에는 작은 도서관이 많지만 이곳은 커뮤니티 공간이 결합돼 있어 도심 속 사랑방 역할을 한다. 경로당 가기는 어중간한 어르신들이 와서 조화롭게 사귀고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책도 읽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곳 주민들이 사랑하는 또 하나의 커뮤니티 공간은 다름아닌 '순천부읍성 서문안내소'다. 서문안내소는 외지인을 대상으로 지역 해설을 담당하는 역할을 주로 하지만 커뮤니티 공간도 겸하고 있다.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답게 서문안내소 입구는 주민들이 마당에서 주워온 성돌로 이뤄져 있다.

창작예술촌에 입지한 문화예술복합공간 '장안창작마당'도 마찬가지다. 장안창작마당은 순천 원도심 구역인 금곡동에서 지난 40여년간 삼겹살집으로 유명했던 장안식당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시민들이 음식을 나누며 각종 모임을 열 수 있는 장안부엌, 각종 목공체험을 위한 장안공방, 순천을 찾는 방문객들에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장안여인숙 등으로 이뤄져 있다. 2층은 작가 활동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장안창작마당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앨리스' 관계자는 "'순천 살아보기'라고 해서 숙박비를 받지 않고 무료 숙박을 제공하고 있다. 대신 관광객들이 순천에서 묵으며 체험한 걸 수기로 받고 있다"며 "10월에는 예술활동하는 작가들에 무료 숙소를 개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순천부읍성 서문안내소[사진 = 윤지은 기자]

◆ 부침 딛고 일어난 순천

처음부터 순천이 성공가도를 달린 건 아니었다. 양 과장은 "처음에는 주민들 서로 '우리동네 먼저 도시재생해야 한다'며 싸우기 시작했다"며 "3일간 60여명이 모여 논의하니 집단지성이 발휘되더라. 너나할 것 없이 향동, 중앙동을 우선 순위로 꼽았다"고 회고했다.

지금은 순천의 얼굴이 된 서문안내소도 건립 당시에는 갈등을 빚었다. 유명 건축사의 설계안이 결사 반대에 부딪힌 것. 지난 2016년 3월 시청사 앞에서는 반대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이유는 △과거 순천부읍성 성벽 안과 밖 정서적 차별 △건물 너무 높아 답답 △사생활 침해 △설명부족 등으로 다양했다. 서문안내소는 주민의견 수렴 후 전면 재설계됐다. 지역주민이 건물 디자인 및 기능을 결정한다는 초기 계획에서, 시설물 관리운영도 주민이 한다는 식으로 역할 분장도 바뀌었다.

옛 승주군청을 일부 리모델링한 생활문화센터 '영동1번지'도 마찬가지다. 상가 주민들로 구성된 중앙동에선 철거를, 문화예술인들로 이뤄진 향동에선 존치를 외쳤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존치에서 철거로, 철거에서 존치로 방침이 수차례 바뀌었다. 결국 절충안을 찾았다. 이 공간을 세대간(지역간) 교류·생활예술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열림식이 있었다.

양 과장은 "순천은 주민역량이 받쳐주는 곳이라 생각했지만, 주민끼리 이해관계는 굉장히 첨예하더라"며 "생활SOC 사업을 할 땐 초기부터 주민협의체를 구성해야겠구나란 깨달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 순천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없는 도시?...해결해야 할 과제도

모 센터장은 "순천시는 대한민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없는 유일한 도시일 것"이라며 이용원(이발소)과 세탁소가 같이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그는 "세탁소 아저씨가 건물주인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12만원이었다. 옆 가게는 월세가 60~70만원까지 치솟는데 이용원 아저씨가 월세를 더 내겠다 해도 건물주가 그냥 두라고 한다. 두 분이 승강이하다 오른 임대료가 고작 20만원"이라고 미담을 전했다.

이 같은 상생은 물론 주목할 만하지만, 전적으로 건물주의 배려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깨어 있는 건물주들이 여럿 등장하려면 그 만한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양 과장은 "지속적인 주민교육, 공동체교육이 필요하다. 선도사업이 끝났다고 손 떼고 다른 사업에만 집중하지 않을 것"이라며 "마을관리팀을 통해 사회적경제 육성 아카데미 등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것"이라 전했다.

정부가 도시재생사업에 기대하는 바가 점차 구체적이고 명확해지면서 자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따랐다. 양 과장은 "주민갈등이나 예산부족 문제는 노력과 스킬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이긴 하지만, 사업지에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이 너무 촘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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